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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대구 동학농민혁명

소걸음 2015. 10. 5. 17:41

동학총서004

경상도 대구 동학농민혁명

 

이 책은 각 지역의 동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기획된 동학총서 제4권으로, 대구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가치를 21세기 글로컬(Glocal) 시대의 시각으로 재조명하였다.

 

 

 

기 획 : 동학학회

저 자 : 이이화 최재목 임형진 신영우 박홍규 이병규 조극훈

분 야 : 역사

발행일 : 2015930

발행처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페이지 : 352

판 형 : 152mm 225mm

가 격 : 15,000

ISBN : 979-11-86502-18-1 94900  /   978-89-97472-72-7 94900(SET)

문 의 : 02)735-7173

 

 

 

출판사 서평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

영남지방은 동학이 발생하여 초기에 전파된 지역이요 전통 유림들이 처음 동학배척운동을 벌이기도 한 곳이며 동학교도가 영해지역을 중심으로 최초로 변혁운동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더욱이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호남 호서지방과 함께 가장 치열한 항쟁이 벌어진 지역이기도 하다. 갑오년 당시의 경상도는 충청도와 전라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교세의 규모가 작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필제 사건의 여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경상도 일대의 보수적인 양반층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이들 양반들은 자신들의 성리학 이외에는 허용치 않는 강고한 모습을 보여 동학의 전파도 어려웠을 뿐 아니라 혁명 당시에도 강력한 민보군을 형성해 동학을 탄압했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경상도지역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은 어느 지역 못지않게 치열했고 혁명의 열기는 가열 찼다. 때로는 경상도 포 단독으로 또 때로는 이웃한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과 연합해서 혁명을 전개하였다. 결국 경상도의 동학농민혁명은 다른 지역보다도 열악하고 나쁜 환경 속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부족한 조직과 동원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막강한 관군과 잘 훈련된 일본군, 더욱이 매우 보수적인 유림들의 방해까지 어느 것 하나도 유리한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경상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고 선양하는 이유는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동학이 추구하고자 했던 세상을 향한 외침에 그들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나서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중심에는 능동적이면서도 희생적인 동학군의 지도자들이 있었다.

 

경상도 북부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와 성격

경상도 북부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는 소모사실(召募事實), 소모일기(召募日記), 경상도소모영전곡입하실수성책(慶尙道召募營錢穀入下實數成冊), 교남수록(嶠南隨錄), 토비대략(討匪大略), (김산)소모사실(召募事實), 갑오척사록(甲午斥邪錄), 창계실기(蒼溪實記), 남헌유집(楠軒遺集), 세장년록(歲藏年錄), 나암수록(羅巖隨錄), 동요일기(東擾日記), 척동비문(斥東匪文), 여의흥쉬채후(與義興蔡侯), 학초전(鶴樵傳)등이 있다. 이들 자료들은 주로 토벌군이나 민보군 그리고 유생들이 기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군이 직접 기록한 자료는 학초전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은 결과적으로 토벌군 관련자들이 기록해 놓은 자료의 관점과 범위를 벗어날 수 없으며, 시기적으로 2차 봉기 이후의 동향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대부분이다. 즉 경상도 북부지역에서 2차 봉기 이후 동학농민군의 활동만을 파악할 수 있다.

 

동학문화의 글로컬라이제이션

글로컬 문화전략은 과학기술을 매개로 지역적인 것의 다양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보편성을 담지하고 있는 문화전략이다. 동학의 정신이 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살리되 그밖의 요소는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형하여 이를 문화콘텐츠로 제작, 디지털 플랫폼에 탑재하여 유통하는 방식을 고민할 때이다. 대구는 그런 점에서 이미 성공한 사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지역의 동학의 문화유산과 거기에 깃든 동학의 정신을 현대화하여 글로컬 전략으로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는 어느 지역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대구의 대표적인 쉼터인 달성공원에 세워진 최제우 선생의 동상이 상징하듯이 대구의 지역과 문화에는 동학의 정신이 깊이 배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차례

영남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한국 근대사회 /이이화

19세기 경상도의 유교전통과 민족종교 동학 /최재목

동학 초기 경상도 일대의 포조직과 혁명군 지도자 연구 /임형진

경상감사 조병호와 갑오년의 경상도 상황 /신영우

동학과 자유-자치-자연 /박홍규

경상도 북부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자료와 그 성격 /이병규

경상도 예천의 동학농민군과 민보군의 척왜 명분 논란 /신영우

동학문화의 현재와 미래 /조극훈

 

본문 속으로

동학농민혁명은 동아시아 국제질서만이 아니라 전통적 향촌질서향촌질서를 개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전통 사회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추구하였던 벽이숭정, 존왕양이, 척사위정 그리고 인수론의 이념이 새로운 질서와 가치에 충돌하면서 역사 유물로 전락하였다. 세도정치의 하수인이었던 수령과 향리들도 이해에 따라 새 질서인 일제에 협조하거나 부역배로 전락되었다.(본문 34)

교조 최제우로부터 북도중주인에 임명된 이후 해월 최시형의 포덕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그의 활동무대는 초기에는 자신이 살던 검곡지방을 중심으로 포덕이 이루어졌지만 이후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었다. 이는 수운으로부터 경주 북부지방에 대한 포덕을 전념하라는 특별한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도 해석된다. 즉 해월이 1862년 최초로 행했던 포교의 중심지인 영덕, 상주, 흥해, 예천, 청도, 울진은 경주 이북지역이었고, 북도중주인에 임명된 이후의 포교 역시 북방이었다는 점은 최제우가 검거된 이후 그를 옥바라지하였던 교인이 경주 이북 출신자들이었다는 사실과 연결해 볼 때 최시형의 북방포교가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본문 62)

1894년 동학농민군은 폐정개혁을 목적으로 무장봉기하였으나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범하는 위기를 맞아 반일전쟁에 들어가게 된다. 2차 봉기에 나선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은 자력만으로 일본군을 상대하기에 어렵다고 생각하고 지방관이나 양반 유생들이 결성한 민보군과 합세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이 시도는 실패하였다. 군현 단위에서 지방관과 민보군에게 합세를 요청했을 때도 거부를 당했고, 전봉준이 대규모로 동학농민군을 집결시킨 후 충청감영에 합세를 요청했을 때도 거부당하였다. 충청감영은 오히려 반격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본문 196)

  동학의 생명평화 사상은 생태주의적 관점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다. 그렇지만 평화의 기초가 왜 생명인지, 생명은 왜 평화가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근거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경천, 경인, 경물의 삼경 사상은 천지인의 유기체적인 통일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사람을 한울처럼 대하라거나, 물건마다 일마다 한울님이라는 동학의 기본 규범은 한울님과 매개될 때 생명이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다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평화를 낳는다. 죽음은 그러한 한울님 관계가 무너질 때 발생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한울님과 매개될 때 생명을 얻으며 생명을 얻음으로써 파괴되지 않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본문 218)

 

저자 소개

이이화 __ 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최재목 __ 영남대학교 교수

임형진 __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신영우 __ 충북대학교 사학과 교수

박홍규 __ 영남대학교 교수

이병규 __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조극훈 __ 경기대학교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