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타자의 텍스트를 읽다
이 책은 종교학자이며 신학자인 저자가 더욱 치열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하며 그곳에 이르는 길을 창조적으로 사유할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다. 특히 저자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기독교 이후 시대의 종교’로서의 새로운 기독교를 지향하는 한에, 기독교가 특별하게 관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저 자 : 이정배
■ 분 야 : 종교
■ 발행일 : 2015년 9월 15일
■ 페이지 : 448쪽
■ 판 형 : 152mm ✕ 225mm
■ 가 격 : 18,000원
■ ISBN : 979-11-86502-15-0 93230
■ 문 의 : 02-735-7173
■ 출판사 서평
하느님의 의로움이 가득한 제2의 종교개혁 이후의 세상을 상상하다
이 책은 신학 함에는 ‘믿음의 눈, 의심의 눈, 자기 발견의 눈’의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신학자가 더욱 치열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상하며 그곳에 이르는 길을 창조적으로 사유할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실이다. 오늘날, 국가는 물론 교회, 교권이란 제도가 정의, 곧 하느님의 의로움과 너무도 무관한 절망의 세상을 희망의 나라로 바꾸려는 한 신학자의 몸부림의 산물이기도 하다. 저자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며, 그 이후의 신학을 상상하는 힘을 비축하는 과정이며, 이 책에 이은 “개신교 3대 신앙 원리에 대한 메타비평” 작업과도 연결될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인 된 것을 감사하는 자(믿음의 눈)로서, 수천 년 기독 전통 속에서 정립되어 온 신학적 담론을 끊임없이 회의하며(의심의 눈), 마침내는 특정 세계관에 의존된 자기 종교의 태생적 한계를 인정하고 넘어서고자(자기 발견의 눈) 노력한다. 저자에게 이것은 종교개혁의 3대 원리인 ‘믿음’과 ‘은총’, 그리고 ‘성서’에 각각 상응하는 가치이며, 그에게 신학자의 길을 열어준 선생님이자 장인이기도 한 신학자 이신(1927-1981)의 ‘고독’, ‘저항’, ‘상상력’과 통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서는 여전히 상상력의 보고이며, 오늘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저자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자기 발견의 눈’이다. ‘믿음’과 ‘의심’의 담론은 이미 충분한 반면, 기성의 기독교 경계를 넘어서는 기독교의 지평 확대(두 번째 종교개혁)는 ‘자기 발견의 눈’을 가짐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서에 입각하되, 타자의 텍스트를 통해 자신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을 때 신학이 시대를 구원하는 담론이 될 수 있으며, 이런 눈을 통해 하느님의 살아 있는 활동을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으며, ‘기독교 이후 시대의 종교’로서의 새로운 기독교를 지향하는 한에, 기독교가 특별하게 관심해야 할 부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론격인 “타자의 텍스트, 자기 발견적 눈 그리고 신학의 재구성”은 ‘두 번째 종교개혁을 향한 여정’이라는 부제를 달고, 진리의 보편성 시대에, 타자의 텍스트 읽기의 필요성이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제1부는 “기독교 속의 다른 텍스트”라는 대주제 하에, (1) 자본주의에게 먹혀 버린 기독교 복음을 구출하기 위하여 ‘탈자본주의적 영성’을 말했고, (2) 교회의 복음화를 세상 복음화를 위한 선결 과제로 인식한 프란치스코 교종의 생각을 배웠으며, (3) 토착화신학자로서 민중 신학의 텍스트를 읽음으로서 기독교 안에서 다른 기독교를 상상한다.
제2부는 “타자의 텍스트 속의 기독교”라는 대주제하에 이질적이며 적대적이기까지 한 (1) 오늘날의 이슬람과 기독교 관점을 넘어서는 초기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의 영향사를 살펴봄으로써 기독교를 낯설게 바라보기, (2) 지젝의 관점-침묵하는 신을 통해 오늘날 기독교가 걷고 있는 이데올로기화를 성찰하는 ‘무신론적인 기독교’, (3) 한류라는 것인 한국적인 것이 세계인들의 기호 속으로 녹아들면서 정착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것으로서의 기독교가 한국 속에 어떻게 정착되어야 하는지를 보았다. (4) 끝으로 한국 전통의 음식문화와 24절기 문화를 기독교 관점으로 재해석하여 이 땅에 생명문화가 꽃피는 시대를 향한 기독교의 역할을 생각하였다.
제3부는 “신학 텍스트로서의 이 땅의 현실”이라는 대주제하에 (1) 첫째, 한 보수 신학자와의 종교다원주의 논쟁을 벌인 담론들을 담아냈다. 입으로는 다원주의를 말하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기독교의 절대성을 지키려는 입장을 공유하면서도 서구 중심의 신학과 토착화 신학 사이의 긴장을 엿볼 수 있다. (2) 둘째, 세월호 사건 이후의 신학함의 자세를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의 행로’와 대비해 가면서 한국 기독교의 죽음과 부활의 문제를 다룬다. 이것은 이 땅(한국)의 신학적, 생태적, 사회정치적 현실을 성찰한 결과로서 ‘다른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열망을 담고 있다.
■ 책 속에서
본래 기독교는 물론 불교, 유교 역시도 우리들 토양에서 자생한 종교는 아니었다. 이 땅에 뿌리 내리면서 그곳의 자양분을 흡수하고 새로운 역사경험을 통해 발생지의 종교와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으니 이를 토착화 내지 문화이입과정이라 부른다. 외래 종교일지라도 이 땅에 들어오면 이 땅의 방식으로 이해되고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이 경우 발생지의 종교가 씨앗이라면 수용지의 마음 밭을 풍토(토양)라 비유할 수 있겠다. 씨앗이 중요하나 풍토가 다르면 맺는 열매의 향과 크기 그리고 맛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단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씨를 받는 우리들 풍토를 바르게 가꾸고 지키는 일이다. 풍토라 하여 다 좋고 바른 것만 있는 것이 아닌 탓이다. 그럼에도 종교를 수용하여 토착화시키는 주체적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 우리의 유교와 불교가 훌륭한 것은 발생지 중국의 그것이상으로 이 땅에 토착화되었던 까닭이다. 원효의 회통(回通)불교, 퇴계·율곡의 성리학, 수운의 시천주 동학사상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래종교들을 토착화시킨 결과물들이다. <본문 33쪽>
오늘의 교회 또한 작은교회 운동을 통해 인습화된 이념을 뒤집는 대역전의 삶을 준비해야 옳다. 하지만 이는 본래 평등적 질서로 세상을 위협했던 예수운동이 어느덧 위계질서를 지닌 폐쇄적 조직, 신조를 강조하는 율법 공동체, 혹은 값싼 은총 공동체로 변질되어 세상(제국)에 길들여져 있는 것에 먼저 소스라치게 놀라야 가능한 일이다. 지금 교회는 겨자씨 비유가 말하듯 세상을 불편하게 하기는커녕 이/저 세상을 두루 누리겠다는 종교적 탐욕을 전하는 값싼 복음 전령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혹자는 종교개혁의 원리 중 하나인 ‘오직 은총으로만’이 중세의 면죄부보다 기독교의 현실적 타락을 더욱 방조하고 있다는 무서운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런 모습으로 2017년 종교개혁 50주년을 맞을 생각을 하니 하늘이 두렵고 무서울 뿐이다. 오늘 우리가 꿈꾸는 ‘다른’ 기독교 혹은 영성목회는 바로 자본주의적 가치체계에 깊게 물든 기존의 종교적 틀과 판을 달리하려는 치열한 현실인식에서 비롯해야 한다. 그럴수록 작은교회가 정말 희망일 수 있는지, 희망이라 생각하는지를 스스로 정직하게 되물어 볼일이다.<본문 57쪽>
마르크스는 지젝과 가장 복잡스런 관계를 맺은 인물이다. 누구보다 그를 중히 여겼으되 그를 추종하지 않았고, 그의 이념을 확장시키려 했던 포스트 마르크시스트들과도 논쟁하면서 정작 그는 마르크스의 내적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마르크스는 지젝에게 이론을 넘어 정치적 실천 계기를 부여한 결정적 존재임에 틀림없다. 주지하듯 지젝은 마르크스의 중요성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에서 깊게 다루었다. 특별히 상품에 대한 물신숭배를 강요하는 자본주의 비판이 지젝 사유의 근간이 된 것이다. 소수에게 부를 몰아주는 생산 체제로서 자본주의가 불평등의 존속을 위해 소위 상부구조(문화, 정치, 법 그리고 종교)를 이데올로기로 활용하는 사회인 것을 상호 공유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지젝은 세계 이해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했던 마르크스를 따라 이데올로기 비판에 전념하였다. <본문 172쪽>
필자가 풍류의 근원을 삼재에서 찾고자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우선 삼재의 핵심이 무엇보다 인간에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삼재론은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이란 말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고 결국 사람을 통해 하늘의 가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본래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일체 구별 없이 사는 것이 역시 ‘인중천지일’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렇듯 현실에 대한 긍정은 인간의 구체적 역할 없이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견성(見性)이 고행을 통하지 않을 수 없듯, 그리고 신(神)이 십자가를 져야만 했듯이, 이 땅의 샤머니즘 역시도 하늘의 지고함(Deus Opiosus)을 앞세우기보다 지상에서의 능동성을 강조했던 것인데, 이 또한 궁극적으로 인간의 역할을 말할 작정이었다. 이것이 여타의 보편적 샤머니즘과 다른 이 땅의 풍류적 샤머니즘의 특징이라 하겠다.<본문 237쪽>
■ 차례
[ 서론 ] 타자의 텍스트, 자기 발견적 눈 그리고 신학의 재구성
1부-기독교 속의 ‘다른’ 텍스트
01 기독교 속의 ‘다른’ 기독교
02 가톨릭 속의 개신교적 에토스
03 토착화 신학자가 본 정치(민중) 신학 속의 범재신론
2부-신학, 타자의 텍스트를 읽다
01 이슬람 종교의 기독교적 재발견
02 유물론의 기독교적 이해
03 한류와 K-Christianity
04 24절기 문화 담론의 생명 신학적 성찰
3부-이 땅의 현실로서의 신학 텍스트
01 종교 다원주의와 보수신학
02 한국신학에 대한 논쟁
03 세월호 이후 신학과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
[ 결론 ] 동양사상과 만난 기독교
■ 저자 소개__ 이정배
대광(大光) 중고등학교에서 기독교 정신을 배웠으며 영락교회와 평동교회에서 행복한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다. 이후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입학했고 토착화 신학 전통을 배웠으며 동대학원에 진학하여 一雅 변선환 선생을 사사했다.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 5년 남짓 유학했고 그곳에서 유교와 기독교 간의 만남을 주제로 긴 논문을 썼다. 1986년 모교 교수로 부름 받아 후학들과 20년 이상을 함께 지냈다. 그간 한국 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동시에 素琴 유동식 선생님을 모시고 한국문화신학회를 창립하여 10여 년 이상을 이끌어 왔다. 1990년 서울에서 열렸던 JPIC 대회의 자극으로 생태신학에 눈을 떴고 토착화 신학과 생태(환경)신학을 한국적 생명신학이란 이름하에 연결 짓고자 애써 왔다. 이 선상에서 종교와 과학 간 대화의 중요성을 숙지했고 이 주제에 관한 책을 번역하고 쓰기도 했다. 강원도 횡성에서 독서와 기도 그리고 노동이 아우러지는 ‘顯藏 아카데미’를 꾸미는 일도 삶의 몫으로 알고 준비 중이다. 우리 시대 대안교회인 겨자씨 공동체와의 만남을 소중한 인연으로 알고 열심히 설교하고 있으며, 에큐메니칼 모임인 기독교 생명평화 연대 공동대표로 있다. 최근 <나눔문화> 이사장 직도 맡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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