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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해야 알죠!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6. 11. 15:20

이야기를 해야 알죠!

37인이 말하는 종교문화

■ 이 책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속의 연구자들이 지난 30년 동안 매주 한 편씩 발표해 온 500여 편의 에세이 가운데 53편을 엄선하여 엮었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그리고 특정 종교에 귀속되지 않는 ‘종교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놓고 씨름하는 지식인들의 지적 탐험의 지혜와 연륜이 녹아든 글들을 모아낸 책이다.



  • 엮은이 : 한국종교문화연구소
  • 발행일 :    2018년 6월 10일
  • 가  격 :    12,000원
  • 페이지 :   256쪽(두께 13mm)
  • 제  책 :    무선
  • 판  형 :    140mm ✕ 210mm
  • ISBN : 979-11-88765-18-8 (03200)

■ 출판사 서평

종교 쇠퇴기인 오늘날, ‘종교에 관한 물음’은 여전히 중요하다
종교에의 의존에서 놓여난 사람들은, 다시 무엇에 의지하는가?
‘종교’ 자체로부터 ‘종교적인 것’으로, 그 지혜와 경험은 유효하다

오늘날 종교는 한편으로 그 권력과 부유함이 하늘을 찌를 듯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위상이 바닥을 모르고 타락하여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되는 극단적인 모순을 보여준다. 그러나 권력과 부유함이 종교 본연과 거리가 먼, 오히려 반(反) 종교적 행태라는 점에서 보면, 결국 오늘날 종교를 설명하는 ‘쇠락’이라는 키워드는 하나로 집약된다. 종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은 비판을 넘어, 안쓰러움을 거쳐, 이제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여 가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종교가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때는 대개 왕조 말기이거나 한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문명의 쇠멸기(衰滅期)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쩌면 인류와 그 역사를 같이하는 종교는 오늘날 그 탄생 이래로 처음으로 맞이하는 근본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에서 종교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가 아닌 핵심적인 요소를 차지하여 왔기에, 종교의 위기는 결코 종교의 위기로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우리의 과제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호모데우스(신적인 인간)’라는 말이 암시하듯이 이미 인간이 신(神)의 지위에 이르렀으며, 나아가 사물까지도 신과 같은 영명(靈明)함을 갖추고[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신의 자리를 몰아내고 있다. 또한 교회당의 설교단(說敎壇) 위의 영적 지도자(성직자)로 집중되던 종교적 열정은 ‘아이돌 스타’나 가상현실 속의 게임 캐릭터 등으로 옮겨 가고 있다. 다시 말하면, ‘탈(脫)종교화’와 ‘재(再)종교화’라는 이중의 역사가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종교의 위기란 결국 기성 종교 관행 내지 제도종교의 위기에 다름 아니며, 인류는 결코 종교로부터 멀어지거나 이탈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한편에서는 분명해진다. 다시 말해 ‘하나의 종교 신앙’ 또는 ‘우리 교단’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종교는 쇠퇴하는 듯하지만, 본원적인 의미에서 종교는 인간이 자신들의 꿈을 이상화해 놓은 대상이고 보면, 인류 역사에서 ‘종교적인 것’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말이다.

‘종교학’이라는 학문은 종교(제도종교)가 최전성기를 누릴 때에도 춥고, 배고프고, 소외된 자리를 크게 벗어나보지 못한 학문 영역인 듯하다. 특정 교단에 소속된, 혹은 예속된 신학(자), 유학(자), 불교학(자)은 그마나 그 교단으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필연적으로 그들과 ‘학문적 거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종교학은 때로 그들로부터 적대감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는 현실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종교학’은 몇몇 대학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으며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는 것이 학문적 현실이다. 이런 형편에, 종교학을 그것도 유일한 보호막이라고 할 대학의 울타리를 벗어난 제3지대에서 30년 동안 꾸준히 밀고 나온 사람들이 ‘종교문화연구소’의 연구자들이다. 물론 그들 개개인으로 보면 특정 대학에 적을 두고 있거나, 출강하는 강사들이기도 하지만, 학문 공동체로서의 연구소를 30년 동안 꾸려 나오는 데에, 남다른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이 책 『이야기를 해야 알죠!』는 그 30년 동안의 학문적 이력을 쌓아 오는 동안에 안으로부터 참을 수 없게 치밀어 오르는 지적인 담론들을 ‘자유로운 문체’로 풀어 나간 글들을 모은 책이다. 때로는 넋두리로, 때로는 놓쳐서는 안 될 찰라의 ‘돈오(頓悟)’를 붙잡아 두기 위하여, 때로는 학문적 글쓰기(논문)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지혜의 전달을 위한 돌파구로 써 나갔던 글들 가운데 30주년 기념에 맞춰 출간하였다. 올해와 내년에 걸쳐 매년 2, 3권씩 계속해서 발행해 나갈 예정이다.

특정 종교의 교리나 제도, 특정 교단 종교인들의 종교적 행태(行態) 나아가 한 사회의 종교현상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종교학자들이지만, 이 책은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종교학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기본적인 물음에서부터, 우리는 왜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와 같은 본원적인 물음에 이르기까지 종교인들의 종교 행위만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인 속성과 심성, 그리고 종교적 지혜와 지성을 융합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특정 대학에 소속되지 않기에 많은 것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하지만, 그렇기에 ‘학적 전통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움, 그리고 한 대학만이 아니라, 여러 대학의 종교학 전통과 기꺼이 유대하고 연대하며 교류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십분 활용하여, 종교학과 연계학문의 학제적 연구와 비평을 수행하고, 인문학의 고갱이로서의 종교학의 전통을 심화하고 확장해 나가는 학자들의 깊은 내면의 지혜 속에서 많은 생각들을 길어 올려, 내 삶의 순선한 자양분으로 삼을 일이다.

■ 책 속으로


천주교에서 개신교를 부르는 이름
당시(해방 이전) 천주교는 개신교를 어떻게 지칭했는가? 가장 많이 사용한 명칭은 ‘열교(裂敎)’다. 이 용어는 유일하게 참된 교회인 천주교를 ‘찢어 놓은 교회’ 혹은 ‘찢겨 나간 교회’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천주교로부터의 분파 이후에도 그 안에서 다시 무수한 세포분열을 일삼는 교회, 즉 분열을 ‘본성’으로 하는 분파적 집단이라는 냉소적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다. <41쪽>

개신교는 왜 스스로를 ‘예수교’라고 불렀나?
동아시아의 개신교 교파들은 왜 ‘예수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가톨릭 선교사들보다 한자문화권에 뒤늦게 진출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천주교와의 차별화를 위해 ‘예수교’라는 명칭을 선택하였다. 그들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에서 파생한 ‘갱정교’라는 용어보다 ‘예수교’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서구 기독교 역사에 대한 전이해가 부족한 동아시아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저항’이나 ‘반항’의 의미가 들어 있는 ‘프로테스탄트’보다는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예수교’가 선교전략상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42쪽>

연호에 깃든 이야기
BC가 ‘Before Christ’, 그리고 AD가 ‘anno Domini(in the year of ourLord)’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우리말로 BC는 (서력)기원전, 그리고 AD는 (서력)기원후로 번역한다. 사실 뜻 그대로라면 BC와 AD는 각각 주전(主前)과 주후(主後)로 번역되어야 한다. 불교는 불기(佛紀), 원불교는 원기(圓紀)를 사용한다. 대순진리회, 천도교, 대종교, 통일교 등 다른 종교들도 물론 나름의 연호(年號)가 있다. 기독교에는 ‘기기(基紀)’라는 용어가 적절할지 모르겠다. 대체로 기독교문화권인 서구에서는 ‘기기’를 사용한다. 사실은 ‘기기’인데 우리는 ‘기기’를 ‘서기(西紀)’로 번역해서 사용해 왔다. 이제는 서기라는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서력기원전과 서력기원후 대신에 그저 기원전, 기원후로 표기한다. 재미있다. 그러나 그래도 심각한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58쪽>

인간과 종교
저명한 자연과학 학술지인 『네이처』(Nature )에 <인간되기Being Human>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여덟 개의 에세이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에 걸쳐 실렸다. 이 시리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에세이들은 과학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간주되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중 첫 번째가 바로 종교다. 특히 언어보다도 종교가 더 먼저 선택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61쪽>

한국사회와 종교 1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긍정적인 의미에서든 부정적인 의미에서든 하나의 성역으로 대우받고 있다. 늘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것이 종교이지만, 그것에 대한 논의는 지극히 제한되거나 폐쇄되어 있다. ... 종교는 종교 밖의 다른 주체에 의해서 논의되거나 재단될 수 없는, 사회와 동떨어진 독립된 영역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종교는 늘 개방적인 논의와 대화가 차단됨으로써 잘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기괴한 음모와 비리들이 발생하고 수구적인 종교권력도 생긴다. <65쪽>

한국사회와 종교 2
한국사회는 동서양의 고전적인 전통종교와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전통적인 자생종교, 그리고 다양한 외래 종교를 포함하여 50여 개 종교, 500여 교파가 존재하는 다종교 사회이다. 이러한 다종교 상황이 앞으로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켜 새로운 문화창조의 기틀이 될지, 아니면 한국사회의 대립과 분열의 원인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사회 전체의 관심과 아울러 객관적이고 공적인 논의가 더욱 더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만이 우리의 삶과 문화가 더욱더 건강해지고 풍요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68쪽>

종교와 정치
종교인은 오로지 종교에만 전념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오로지 종교적 실천에만 전념하는 훌륭한 종교인들도 많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도 국가나 사회의 한 구성 요소로서 종교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종교인이 정치인에 의존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정치인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종교인을 이용하는 식으로 종교와 정치가 결탁하는 모습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종교가 궁극적인 영역에 관계되는 것이라면 종교는 그런 자리에 서서 정치에 발언을 하여야 할 것이고, 정치는 종교의 영역을 지켜주되 엄정하고 중립적으로 법을 집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종교와 정치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77~78쪽>

새로운 종교적 인간의 출현
나의 행위가 경제적 효율성에 입각한 것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사물과 인간의 본성과 다른 생명체들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해 보는 관계적 가치는 종교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오래된 지혜이다. 여기서 방점은 종교의 ‘오래된 지혜’에 있지 종교에 참여하는 데 있지 않다. 그 오래된 지혜는 오늘날의 종교에서도 뿌연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있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자기 스스로 오래된 지혜를 발견하고 실천하는 새로운 종교적 인간의 출현을 목도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105쪽>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교의 연등
한편 서울시청 앞 광장이나 일부 관공서에도 트리가 장식되어 사람들에게 연말연시를 알린다.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이 찾아오고 역시 서울시청 앞 광장, 구미시청, 순천시청, 여수시청 등을 비롯한 일부 관공서에 트리가 세워졌다. 서울시청 앞의 트리 점등식에는 개신교계를 주축으로 서울시장과 주한미국대사 등이 참석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도 역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맞물려 생각나는 것이 사월초파일의 연등행사이다. 연등을 설치하는 것은 사월초파일을 맞은 불교계의 주요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연등행사의 유래는 불교 초기부터 시작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도 연등회는 국가의 주요한 연례행사의 하나였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이러한 국가적 연등행사는 사라졌지만, 불교계의 주요 행사의 하나임은 분명하다. 현대에 와서도 초파일을 맞아 연등행사를 하는 것이 불교계의 주요 연례행사이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마찬가지로 이 무렵이 되면 서울시청을 비롯한 여러 공공기관에 연등이 설치된다. <141쪽>

종교적 문맹(文盲)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종교에 대해 모르면 ‘종교적 문맹’이라 한다. 이 말은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 AAR)가 2010년 4월에 발간한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종교에 대한 교육을 위한 지침서’에서 사용한 것이다. (158쪽) ... 더 큰 문제는 기성세대에게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아예 종교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다. 말하자면 기성세대에 ‘종교적 문맹자’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종교를 믿는 사람도 그러하다. 그러한 ‘문맹’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다른 종교들을 폄훼하거나 곡해하고, 심지어 왜곡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그러한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서구의 교육 당국과 종교인들, 그리고 종교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견해를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다. <158-162쪽>

종교란 무엇인가
어쩌면 종교란 기존에 인식할 수 없었던 대상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아니었을까? 기존의 인식 범위를 벗어난 새로운 인식체계를 강요받을 때, 이 양자 간의 불일치를 메우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었다.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기존과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종교는 상상력을 통해 불일치한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또한 비현실의 세계를 상상력으로 접근하여 현실화하고 그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종교는 일상적인 삶의 방식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볼 때, 종교는 인간과 세계의 불일치를 메우는 인식임과 동시에 그런 세계를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80쪽>

종교 편향에 관하여
나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종교 편향이라는 문제가 한국의 정치와 언론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 학술 연구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 단지 자기의 입장과 답을 가지고 그 도출 과정을 임의로 재단할 수 있는 거짓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답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그래서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고 생각하고 토론하지 않을 수 없는 참된 문제이기를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이는 참되기만 하지는 않은 심정이 빚어낸 문제라고 할지라도, 거짓 문제가 아닌 참된 문제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188~189쪽>

이야기를 해야 알죠!
“이야기를 해야 알죠!”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이 짧은 문장에 인간과 이야기의 불가분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다. 인간은 마치 파편과 같은 자기 경험을 이야기로 엮음으로써 비로소 삶을 인식한다. 우리의 삶 자체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이 있는 곳에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가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삶은 이야기를 하고 또 이야기를 듣는 행위를 통하여 의미를 잉태한다. 이야기가 없는 삶은 생물학적 생존의 연속일 뿐이다. 이야기는 삶의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혼돈의 요소를 질서의 구조 속에 위치하게 한다. 따라서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인간의 삶을 빚는 셈이다. <190쪽>

세계종교라는 패러다임
세계종교의 패러다임을 묻는 작업은 세계종교의 구성원인 각 종교 전통이 19세기와 20세기 (혹은 그 이전 시기인 17-18세기도 포함하여)의 격변기에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구획되는지 그리고 이전 시대와의 연속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그것은 바로 각 종교 전통의 아이덴티티 형성 작업을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각 종교 전통은 어떤 경로로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여기게 되었고, 어떤 측면을 강조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주체성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非)종교의 영역과 어떤 상호 관계를 구축해 가는가, 특히 민족주의 및 제국주의와의 관계가 핵심적으로 부각되는 과정과 메카니즘을 분석하게 될 것이다. <201~202쪽>

종교란 무엇인가 2
여전히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religion(종교)’은 근원적으로 서양의 경험을 개념화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끊임없이 그 함축의 변용을 겪어 왔지만, 그 용어는 기본적으로 ‘신에 대한 예배(cultus deorum)’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의 어떤 경험을 묘사하고 담기 위한 개념어로 사용되었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religion(종교)’이라는 개념어를 통해 우리의 종교를 서술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결국 religion이 한국의 종교가 어떤 것인가를 결정하는 판단 준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religion이 한국의 종교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좋을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205쪽>

종교란 무엇인가 3
그렇다면 우리의 물음은 ‘도대체 우리는 종교에 대한 발언을, 또는 인식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착하게 된다. 그런데 그러한 정황에서도 여전히 물음을 묻는다면 그때 등장하는 종교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객체가 된다. ... ‘종교’란 학자의 상상력, 즉 비교 및 일반화의 작업에 의하여 빚어낸 것이며 학문과 분리해서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 아니라고 한 언급은 그러한 사정을 잘 기술하고 있다. 우리는 이 발언을 진지하게 반추할 필요가 있다. <206쪽>

종교와 과학
그래서 인지종교학은 종교적 교리, 실천, 조직 등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폭넓은 과학적 지식을 검토할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연구는 연구자들에게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다. 부담스럽긴 해도 이러한 연구의 흐름에 대해 언제까지나 눈감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인간의 종교적 삶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단지 곧 지나가 버릴 지적 유행이라고 간주하기에는 그것의 적합성이 너무도 크고 광범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26쪽>

무신론자가 다수를 점하는 사회
한국의 경우,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종교 없음’으로 답한 사람들이 전체인구의 56.1%로 처음으로--2005년: 47.1%--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일련의 한국 종교사회학자들이 이들 ‘무종교인’에 주목하여 조사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고무적이며, 한국종교사회학회에서는 한-미 공동협력연구를 진행하여 이들 ‘무종교인’의 ‘종교성’을 비교 연구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무신론자’ 내지 ‘반(反)종교인’에 대한 조사연구는 여전히 부재하다. <248쪽>

종교, 종교인, 종교문화
우리는 자신이 종교인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종교문화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경험하는 종교문화는 결코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와 관련된 일들이 일상에서 늘 경험하는 일들과는 뭔가 현격한 차이가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종교인들이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이념적인 지향도 뭔가 ‘다른 삶’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나 종교가 누군가의 삶을 언제나 극적인 것으로 빚어내지는 않는다. 일상에서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의 생각과 행동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도 기대와 상상만큼 대단하지 않다. 심지어 사람들은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지 않아도 가끔씩 종교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있으며, 종교적 가르침을 몰라도 도덕적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다. 종교문화는 이러한 일상과 더불어 경험된다. <252쪽>

■ 차례

1부 문화비평

전철 안에서│정진홍
파란색과 분홍색│최화선
만화 한 편으로 본 종교문화│방원일  
도깨비의 노린내│유기쁨
음악의 자리, 종교의 자리│최화선  
닭 치고 모스를 생각함│박상언  
로마교, 런던교, 이교, 열교│이진구
조상숭배와 종교학, 그리고 피에타스│임현수
고양이, 봄, 그리고 ‘성스러운 생태학’│유기쁨
조선시대의 부정청탁│이욱  
BC와 AD│강돈구  
과학자들이 새로운 흥미를 발견한 것, 종교│박상준  
비밀스러움과 성스러움│윤승용

2부 시평

우리는 어떤 티벳을 말하고 있는가│이민용
다종교사회와 정치│최유진 
타고 남은 재│전인철 
대재난과 ‘일본교’│박규태 
해외봉사와 종교│김윤성 
“나는 샤를리”│김대열 
성소수자의 인권과 종교폭력│차옥숭     
삶에서 뿌연 먼지 같은 불안을 걷어내려면│박상언
밥과 무기와 믿음│김호덕 
통계청의 ‘2015년 종교인구 조사’│윤승용
국가가 개인에게 종교를 물을 수 있는가│이진구 
‘갈라파고스 증후군’│신재식
불교와 폭력│이민용

3부 단상

3월의 봄, 입학식을 기억하며│이욱
연애와 종교│방원일 
크리스마스 트리와 초파일 연등│윤용복 
얼음에 대한 생각│김호덕 
우리 곁의 괴물들│조현범
가면과 페르소나│안연희
폭력, 노비, 노예│허남린 
종교적 문맹│류성민 
바울 르네상스│안연희
마을과 마을제의 │이용범
불교의 신앙대상│진철승 
소리가 머무는 ‘상자’, 유성기│도태수
사소하거나 중대하거나│이혜숙 
참된 심정이 빚어내는 거짓 문제들 그리고 vice versa│이연승    
이야기하는 인간│하정현 
세월의 눈금│장석만

4부 종교학 이야기

세계종교 패러다임│장석만  
한국 종교문화의 서술을 위해 유념하고 싶은 것들│정진홍
엘리아데, 스미스, 링컨│이창익  
감각의 종교학│우혜란  
종교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는 것│구형찬
‘불교’와 ‘부디즘’│송현주
중국 고대 무(巫) 자료를 살피면서│임현수  
원전(原典)은 어떻게 종교학이 되는가│민순의
종교학,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이창익
무신론 학과의 등장│우혜란  
“나는 종교문화를 연구합니다”│구형찬

■ 저자 소개

한국종교문화연구소_ 사단법인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종교문화’에 대한 학제적 연구와 문화비평을 수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인문학적 전망을 모색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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