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발견
일본어판 원제: 「知恵」の発見
■ 이 책은…
야마모토학(山本學)의 창시자이기도 한 저자가 일본인과 서구인의 사고방식의 차이와 그것이 유래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 가는 비교문화론을 통해서, 각자(개인, 국민, 민족)가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태생적으로 사고방식의 한계를 알고, 앎으로써 극복해 나가는 지혜를 계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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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일본은 우리에게 타자(他者)다. 숙적(宿敵)이라고도 하지만, 숙적(宿賊)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아니 남북을 통틀어 한반도에 터 잡고 사는 사람이라면 일본을 미워하고 싫어할 이유를 대여섯 가지를 손꼽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적대감은 ‘뚜렷한 이유’와 ‘명분’ 이상으로 절대적이고 선험적인 감정으로 주어지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일본은 우리에게 타자이다. 타자란 자아를 비추는 거울이며, 자아의 결핍을 가장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존재이다. 즉, 일본은 우리 국토를 강점하고 궁권을 강탈한 치욕적인 역사의 상처를 안겼으며, 분단과 친일파에 의한 한국 현대사의 왜곡과 같은 비극적 고통의 역사의 원점(原點)이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이 보기에 ‘진심어린 사과’는커녕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공공연히 되풀이하고, 나날이 강화해 나간다.
그러면서도 세계 전체의 지평에서 볼 때, 전범국 일본은 초일류의 세계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해 있으며, 한국의 입장 또는 한국에 대한 호감도 보다는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다. 최근 촛불혁명이나 ‘한류열풍’으로 우리나라의 인지도나 호감도가 상승하였다고는 하지만, 세계 전체적으로 일본 문화, 사상은 한국 문화, 사상의 영향력을 훨씬 상회하는 역사적 전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이 오늘과 같은 ‘저력’을 갖게 되기까지 일본인들을 스스로를 단련하고, 자기분석과 반성을 거듭해 온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그것이 우리가 ‘일본을 알고’ 또 그 일본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알아’ 극일(克日)을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와 상생을 추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일본과 일본인의 마음의 결을 세세하게 톺아 볼 수 있게 해 준다.
일본문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공기(空氣)의 연구’라는 책으로 ‘최고의 일본인론 작가’로 부상한 바 있는 저자의 또 다른 베스트셀러로서, 서구 문화 특히 성경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인들의 사고방식과 문화에 비추어 일본인의 특성, 단처(短處)를 짚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일본인에게 필요한 지혜’로 삼아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과 지혜들은 오늘 한국인에게도 혜안을 열어준다.
일본은 우리에게 타자이다. 우리로서는 안 보고 싶은, 굴복시켜야 하는, 억만금을 되돌려 받아야 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자아와 타자의 관계에서 1:100의 스코어는 존재할 수 없다. 일본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스스로 넘어서는 길은 그들의 지혜를 배워서, 그들을 더 높은 경지에서 바라보는 길뿐이다. 일본인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그만큼만이라도 우리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 책은 지혜 그 자체를 얘기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혜를 발견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우리 각자가 생각하는 ‘생각’이 자칫하면 빠질 수밖에 없는 인식의 한계를 이야기함으로써, 그것을 극복할 동기와 동력을 제공할 뿐이다.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그것을 극복하는 첫 걸음이다. 이 책은 일본인에게서 한국인의 한계와 그 한계를 벗어나는 공통된 지혜를 비추어 본다.
■ 책 속으로
(이 책의 저자 야마모토는) ‘KY’라는 약어로 널리 쓰이는 “공기를 읽어라!”라는 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 공기를 파악하는 사람이 자연스럽고…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다분히 분위기에 따라 행동하는 태도는, 다소 과장하면, 일본인은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는 주체가 자기 내면에 있다기보다는 밖에, 즉 외부의 분위기나 상황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추천사, 10쪽>
데모놀로지(Demonology)라는 학문이 있다. .., 보통 ‘귀신학’으로 번역한다. ... 귀신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시대·장소·문화 속 상상력에 한계가 있음을 드러내 주는 학문이... 즉, 인간의 상상력 앞에 놓인 크나큰 한계를 귀신학을 통해 알 수 있다. ... 다시 말해, 상상은 인간의 머릿속에서 자유자재로 펼쳐진다고 여기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리층이라는 벽에 둘러싸여 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28-29쪽) 데모놀로지를 통해 우리는 한 민족이 대체로 어떤 사고방식을 가졌으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하나씩 비교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사고의 한계가 드러난다. 한계를 모르면 그 한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계는 알게 되는 순간 뛰어넘을 수 있으며, 이 점이 바로 학문의 매력이기도 하다. <32쪽>
서구형 조직 및 계약관계는 같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회사에는 기본적으로 정관(定款), 사규, 사칙(社則)이 있으며 개인은 회사에 각각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평등한 관계가 성립된다. 그들의 사회는 인간이 아니라 추상적인 법률 및 규칙을 한가운데 두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의 내용이 동일하기에 서로 평등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 회사는 구성원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평등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같은 인간이라서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맺은 계약의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에 평등하다. <46쪽>
일본인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 기본이 되는 개념 중, 특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이다. 일본 사회에서 “저 사람이 말하는 게 옳을지는 몰라도 말하는 투가 부자연스럽다.”는 말이 나왔다면 내용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그 의견은 무시당한다. 일본 사회에는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불가사의한 개념이 있다. 그리고 그 개념에 따라 사회 구성원은 부자연스러움을 멀리하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것은 일본 문화 탐구를 복잡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일본 문화의 기초와 근본이 되는 개념인 것이다. ‘자연스러움’은 딱 맞아떨어지는 개념이 아니기에 그 기준을 확정할 수 없다. 일본 사람은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의 요모조모를 외부에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세계에서 살아왔다. <50쪽>
요컨대 …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어차피 일어날 일은 되도록 자연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좋고, 작위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다’보다는 ‘되다’가 일본에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전통이 만들어 낸 풍토 속 질서이며 이 질서에 따르는 것을 최선이라 여기는 의식이 일본인의 사고 기저에 깔려 있다. 비유하자면 벼농사의 질서로, 전통 시대에 일본인의 9할은 벼농사에 종사하였으니 벼농사를 하듯 일을 처리한다면 분명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자연스러움 사상이며 달리 말해 생태계적 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논쟁에서 상대를 제압할 때 서구인은 풍부한 지식과 명확한 논증, 그리고 적확한 사실을 무기로 쓰지만 일본인은 ‘부자연스럽다’고만 말하면 된다. 그러면 부자연스러운 쪽이 자연스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일본의 수많은 독창적 사고가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당시에는 그 독창적 사고가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54~55쪽>
해방된 노예는 이제 계약노동자가 될 수 있다. 계약을 맺고 일할 수 있는 인간이 바로 해방노예다. 인간이란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이것이 ‘리베르테’이다. ... 이렇게 ‘자유’와 ‘해방노예’는 같은 의미가 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자유(Liberty)’의 기본 개념이며, 언제든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서로를 자유인이라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69쪽) 그럼 일본에서 자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가장 거부감 없이 행동하며 가장 거부감 없는 상태에 놓이는 것이 ‘자유’인 것이다. 일본인이 생각하는 인간에게 가장 거부감 없는 상태는 무구속 상태에 놓이는 것이지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결국 가장 거부감이 적은 전통적 가치관, 즉 ‘부자연스럽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71쪽>
일본인은 벼농사를 지으며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왔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기후 변화, 환경 변화에 빠르게 익숙해져야 했으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생존 방식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일본인들은 바뀐 환경에 매우 능숙하게 적응한다. 전쟁 중에는 전쟁이라는 환경에 적응했고, 미군에게 점령당했을 때도 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전후 민주주의라는 환경에도, 미일 안전보장조약 이후 경제성장기에도 당연하다는 듯 신속히 적응했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났던 것이다. 이는 감성적 판단이 둔한 탓으로, 추상적인 이론보다는 ‘이렇게 보인다’는 식의 표현에 반응하는 데 익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78쪽>
일본인이 외국에 나갔을 때 호감을 사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상대방의 나라에 보이는 관심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거 미국 사람은 일본 하면 ‘후지산’과 ‘게이샤’ 밖에 떠올리지 못했다. ‘후지산’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이라고 하면 바로 ‘게이샤’부터 생각나는 사람에게 일본 사람이 호감을 느낄 리 없다. 이는 어느 민족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에 가서 기생부터 찾는 인간이 한국 사람에게 환대 받기란 불가능하다. 실제 한국에 기생이 있고 없고는 별개의 문제다. <94쪽>
최근 들어 노해(老害)라는 표현이 자주 거론된다. 나는 노인이 노인다운 사고방식을 가지는 것 자체를 노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여긴다. 젊은이들이 젊은 의식을 가진다면 사회는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게 되어 있다. ... 진정한 노해는 젊은 사람이 노인처럼 사고하고 판단할 때 발생한다. 젊은층 때문에 일어나는 노해가 훨씬 공포스럽다. ‘노해’라는 말은 노인이 노인스러운 의식을 가질 때가 아니라 젊은이가 그러한 의식을 가질 때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젊은이의 노해는 두뇌의 동맥경화와 같으니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111~112쪽>
그는 “비평 받되 비평하지 말라.”고 말했다. 비평 받는 사람은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일을 해냈지만, 정작 비평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절대로 비평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아무리 혹평을 받는다 할지라도 비평하는 사람이 아닌 비평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간조의 주장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말을 계속해서 들어 왔으니 내가 평론가라는 직업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 것도 당연하다. 누군가를 비평하면 오히려 비평하는 측이 손해를 본다. 아무런 업적도 쌓지 않으면서 마치 상대와 대등해진 듯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속이 텅 빈 상태이면서 때로는 자신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114쪽>
만일 회사를 키우려거든 초심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키워야 한다. 아무런 기준 없이 의욕만 앞섰다가는 헛고생하기 쉽다. 온갖 고생 끝에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왜 그렇게 무턱대고 나섰을까를 토로하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과거에는 반드시 상식에 어긋나는 판단과 무모한 행동이 있다. 사업에서 기적이 생기는 일은 매우 드물다. 언뜻 기적으로 보여도 사실은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 단지 사람들이 이유를 모를 뿐 기업이 급격히 발전하는 것은 알고 보면 기적이 아니다. 창립자 혼다 소이치로가 기술 개발에 몰두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기업이 발전한 것이다. <171쪽>
■ 차례
1. 막무가내식 암기의 요령
・생각이 자유로워지는 배경
・기억량을 늘리는 기술
・유용한 문장 하나
2. 생각을 가로막는 장벽
・두뇌 속 전리층
・일본인의 빈약한 상상력
・같은 ‘영’이라도 의미가 다르다
・데모놀로지(Demonology) 심포지엄
・일본인의 전통적 사고방식, 유령
・유령으로 나타나라
3. 람다(Λ)형 사고방식
・추방당한 점술사
・사무엘의 계시
・원령이 낄 자리는 없다
・사회와 의식의 근본적 차이
4. ‘부자연스러움’ 알레르기
・반드시 자연스러워야만 한다?
・‘사견’은 필요없다
・독창적 사고가 사라진다
・매도와 부정은 패배로 이어진다
・소문은 기각하라
・자기검증의 필요성
・‘죄’=‘벌’?
・일본 문화의 앞길
5. ‘자유’가 불가능한 구조
・자유는 원래 ‘해방노예’
・기본 개념은 로마 시대부터
・‘마음대로’ 나아간 미래는
・최대한 마찰 없이 사는 법
・‘피가 이어진 가족’을 원하는 사고방식
6. ‘안정’이라는 ‘고착’
・감성적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지나치게 교묘한 적응
・고착된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도쿠가와 시대의 사고방식
7. ‘움직이는[動] 인간’과 ‘일하는[働]인간’
・만든 것을 그 자리에 쌓아 둔다
・억지로 시장에 끼어들지 말자
・‘돈을 부르는’ 후공정 원칙
・행동과 노동의 차이
8. 미움받는 이유
・‘게이샤’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흥미와 관심의 부재
・상대의 태도가 달라질 때
9. 진정한 생각
・유대식 결혼의 의미
・결론이 나온 듯한 착각
・총론은 스스로 구성하라
10. 머지않아 고령화의 폐해가
・15년 주기의 의식 변환
・중년처럼 사고하는 청년들
・취직 전부터 퇴직 후를 고려한다
・노해(老害)의 원인
11. 받아들이기 나름
・비평하는 인간이 되지 말자
・우치무라 간조의 유머
・쓰카모토 선생에게 배운 것
・발상의 전환에 설득력을
12. 역사적 현재가 주는 교훈
・고대사의 교훈
・언어가 바뀌어도 생각은 그대로
・신명기 혁명의 의미
・에스라의 대(大)시나고그
・젤롯당이 두려운 이유
・살아있는 ‘역사적 현재’
13. 지적 전략의 보물창고
・첫째, 상대의 무의식 속 전제를 무너뜨려라
・둘째, 혼자서 결론짓지 말 것
・셋째, 가정에 가정을 거듭하면 이긴다
・넷째, 가짜 권위에 흔들리지 말라
・다섯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라
・여섯째, 권력을 유지하는 법
・일곱째, 승패는 전투보다 외교에 달렸다
・여덟째, 싸움 대신 상대의 배후와 손을 잡아라
・아홉째, 생각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 시작 열째, 계약사회적 사고방식을 의식하라
14. 포기의 법칙
・헤롯의 퇴각
・베스트셀러를 마무리하는 방법
・유행이 일어났을 때
・기적에는 이유가 있다
15. 유대인 논법
・‘저작자’를 보는 일본인과 유대인의 차이
・‘번역’이 의미하는 것
・요세푸스의 위업
・요세푸스의 메타발리온
■ 저자 및 역자 소개
야마모토 시치헤이 山本七平 :
1921년 도쿄 도 출생. 1942년 아오야마학원고등상업학부 졸업. 2차 세계대전 당시 야포부대 소위로 마닐라 전투에 참가했다가 필리핀의 포로가 되었고, 1947년 풀려나 귀국한다. 그 후 야마모토 서점을 설립하여 성서학과 관련된 서적 출판에 종사한다. 1970년, 이자야 벤다산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일본인과 유대인』이 3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또한 ‘일본인론’을 출간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문화와 사회를 분석하는 독자적인 논고는 ‘야마모토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평론가이자 야마모토 서점 점주로, 1991년 타계했다.
저서에는 『내 안의 일본군(私の中の日本軍)』, 『공기의 연구(‘空気’の研究)』(이상 文芸春秋), 『일본은 어째서 패배했는가(日本はなぜ敗れるのか)』(角川書店), 『제왕학(帝王学)』(日本経済新聞社), 『일본인이란 무엇인가(日本人とは何か)』, 『쇼와천황 연구(昭和天皇の研究)』(이상 祥伝社), 『어째서 일본인은 바뀌지 않는가(なぜ日本人は変われないのか)』, 『일본인은 무엇이 부족한가(日本人には何が欠けているのか)』, 『일본교는 일본을 구원할 것인가(日本教は日本を救えるか)』(이상 さくら舎) 등이 있다.
이서현 :
이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의 芳樹女学院情報国際専門学校에서 국제영어과를 전공했다. 현재 일본어 전문 번역에 종사하며, 『영속패전론』, 『만화로 보는 영속패전론』, 『사람이 사람을 심판할 수 있는가』의 공동번역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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