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재발견
일본인의 성지(聖地)를 걷다
■ 이 책은…
저자가 20년 동안 일본 전역의 전통적인 종교 성지와 현대적인 새로운 종교 성지들을 탐방하며 보고 듣고 느낀 일본인의 감성의 원천들 속으로 안내하며, 그곳에서 읽어낸 일본인의 마음을 소개함으로써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것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일본인의 민낯과 속내를 모두 드러내 주는바, 일본인 마음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진정성과 스피리추얼리티(spirituality, 靈性)’에 주목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인)의 얼굴과 마음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일본(인)과 한국(인)의 상호 이해 가능성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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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1.
개인적으로 일본인을 만나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일본인이 한국의 역사나 한국인의 심성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고 있다’거나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것이다. 반면에 세계 최고의 독서 국가답게 여전히 많은 수를 자랑하는 일본의 서점엘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매대(賣臺)에 다종다양하게 비치된 것이 ‘혐한’ 관련 단행본이다. 그 옆에 자리 잡은 월간지에도 ‘혐한’ 관련 기사는 꼭 한두 개 이상이 들어 있는 경우가 흔하다. 십여 년 전부터 여러 겹의 변형을 거치며 지속되고 있는 한류의 결과로 한국에 대해 예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된 부분도 있지만, 그 역시 한국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유럽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유럽이야 한국으로부터 따지면 지구 반대편의 나라이고 보면,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지와 왜곡된 인식에 비할 바는 아니다. 더욱이 한국인에게 일본은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제1의 관심 국가이고 보면, 일본인의 이러한 대 한국관(韓國觀)은 한편으로 허탈하기까지 하다.
이런 평가를 한국인 자신에게 돌려보면 어떤가.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대해서 얼마나 제대로, 잘, 깊이 알고 있을까? 우리들 대부분은 일본인을 반성할 줄 모르고, 망언을 일삼으며, 부조리한 국가(정부)에 저항할 줄 모르는 국민으로 알고 있다. 그 이상이 있다 하더라도 굳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만큼 일본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다. 그러나 미워하면서 닮아 가는 법이다. 너무 미워하기만 하는 것은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일본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결코 일본에 당한 뼈저린 역사를 제대로 청산할 수 없을뿐더러, 마음으로는 멀지만, 몸[지리적․경제적]으로는 가까운 나라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우리에게 언젠가는 해 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와는 가깝지만 먼 나라 그 자체이다. 멀리 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 왕조 연간의 크고 작은 침탈, 근대 식민지시기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부대끼며 애증(愛憎)을 누적시켜온 한일관계가 진정으로 정상화 되는 날이야말로 한반도의 평화가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는 날이 될 것이다. 극일(克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용일(用日: 일본 활용)이고 용일을 위해서는 지일(知日)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극일(克日)을 넘어 화일(和日)이고 포일(包日: 일본을 포용함)이 될 것이다.
2.
한국인도 그렇지만 일본인이라고 해서 한 가지 성향을 띤 사람들의 무리는 아니다. 그 안에는 극단적인 혐한류(嫌韓流)에 기대는 극우(極右) 세력에서부터 평생에 걸쳐 좌파운동을 해 온 사람들, 그리고 극우 혐한 세력을 혐오하고 막아나서는 양심적인 일본인들까지 다양하다. 이들 모두가 일본인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속마음(혼네, 本音)을 감추는 국민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깊은 대화나 진정성 있는 교류를 위해서는 그 본심(本心)을 제대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경로 중의 하나가 일본인의 심성을 형성해 온 종교적 성지(聖地)들을 찾아가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들어보는 일이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는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신화(神話)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일본의 경우 800만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할 만큼 많은 신(神)과 그에 따르는 신화(神話)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도 신사(神社), 사찰(寺刹) 같은 구체적인 유적을 배경으로 전승되고 있어 가히 신화의 나라라고 불릴 만큼 다종다양하다. 이들 중에는 한반도와 관련된 것들도 적지 않고, 그들 중 일부는 한국과 역사 분쟁의 근원이 되는 것도 다수이다. 일본인은 현재의 일왕(天皇)을 살아 있는 신으로 여기는 만큼, 일본인에게서 신화는 과거의, 인간계 밖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 쉬는 현실이며 현재의 일본인의 심성과 존재를 규정하는 요소기도 하다. 일본의 신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긴요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 신화의 무대인 규슈 다카치호와 일본인의 자랑이라고 하는 후지산과 관련된 신화들을 살펴본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의 두 번째 유형은 역시 일본의 신도(神道)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주로 신사(神社)와 관련되지만, 이 역시 근대 시기를 거치며 국가신도 등과 습합되면서 속세와 신계(神界)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강요된 경험을 통해 독특한 일본인의 심성의 근원적인 배경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일본 신도와 신사의 메카로 불리며, 일본의 국가수호신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伊勢神宮)을 위시해서 수천, 수만 개의 크고 작은 신사로 이루어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이 책에서는 이세신궁과 함께 일본 신들의 고향으로 일컬어지는 이즈모대사를 중심으로 여러 신사를 소개하며, 신사란 무엇인지, 신사와 일본(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본다.
일본인의 종교적 성지의 세 번째 유형은 일본 불교와 관련된 성지들이다. 일본 전역에 신사만큼 많은 종교 시설이 바로 불교 사찰들이다. 일본 불교의 경우 한국보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거대 사찰이 즐비하고, 무엇보다 현재에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는 신종교(新宗敎)들 거개가 불교(佛敎)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만큼, 신도와 더불어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이다. 신도가 일본인의 생활 세계에 가까운 종교적 요소라면, 불교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가까운 종교적 요소라는 점을 대동소이의 차이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일본 불교의 어머니 산’이라고 하는 히에이산과 일본인들의 사후 세계의 고향이라고 일컬어지는 고야산을 중심으로 일본 불교 사찰의 특성을 살펴본다.
그 밖에 일본의 성지 중에는 기독교 관련 성지도 적지 않다. 오늘날 일본의 기독교 세력은 우리나라에 비해 보면 과할 정도로 쇠약하지만, 그 역사는 수백 년이 앞선 것이다. 가고시마와 오이타 등지에 산재한 일본 기독교 성지들을 돌아보며 왜 일본에서 기독교가 한때 번성을 누리다가 급속도로 쇠퇴하게 되었는지, 그것이 오늘날 일본인 심성의 특성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펴본다. 그것은 또다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오늘날과 같은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지를 되짚어 보고 진단하는 중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3.
최근 몇 년 사이 한일 관계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여 국내에서 일어난 소재-부품-장치 산업의 국산화 시도와 일정 부분의 성공은 일본에 의존한 한국 경제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 변화할 수 있다는 변곡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미 그 전부터 현상화되고 있었던 일본 내에서의 한류 문제나 세계 문화계에서 한국의 위상 제고 등을 통해, 일본에 ‘강점되었던 역사’로부터 비롯되는 대일본 콤플렉스가 극복되었거나 곧 극복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특히 최근 일본(아베 정부)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대응(진실의 은폐),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그에 대한 일본인의 무기력한 대응 태세 등을 보면서 일본의 욱일기는 이제 떠오르는 해가 아니라 지는 해를 상징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온다.
이때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일’의 자세이다. 우리에게 일본은 익숙하지만 낯설기 그지없는 나라이다. 일본을 알아가기에는 미움과 극복의 장벽이 너무도 높았던 역사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이야기할 것은 한일 간의 진정한 만남일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예전처럼 일본 여행이 활발해질 때,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과 다른 마음가짐으로 일본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미움을 걷어내고 콤플렉스 또한 씻어버리고, 담담하게 그러나 진정한 앎의 자세로 넉넉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이래 오랫동안 일본에 대해 시혜적 교류를 하였을 때, 한일 관계는 평화로웠고, 한일 양국의 발전은 병진하였으며, 그때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은 평화와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이제 그러한 시대가 다가온다. 이 책은 그러한 시대를 향해, 일본을 재발견해 나가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차례
서문 성지를 통한 일본의 재발견
1부 신화 속의 일본
제1장 규슈 다카치호 : 일본신화의 무대
제2장 후지산 :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 신화
2부 일본 신도의 2대 성지
제3장 이세신궁 : 일본 신도와 신사(神社)의 메카
제4장 이즈모대사 : 일본 신들의 고향
3부 일본 불교의 2대 성지
제5장 히에이산 : 일본 불교의 어머니산
제6장 고야산 : 현세의 정토이자 일본 제일의 명당
4부 일본 기독교 전래기의 성지
제7장 가고시마 : 하비에르가 상륙한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
제8장 히라도와 야마구치 : 하비에르의 일본 선교는 실패인가?
제9장 오이타 : 하비에르의 마지막 일본 선교지
맺음말
후기
■ 책 속으로
일본을 여행하다 눈에 띄는 대형서점에 들어가 보면 일본인의 기원, 일본 역사와 일본 문화의 특징, 일본의 독특성 등을 다룬 책들이 몇 칸의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광경을 쉬이 볼 수 있다. 그런 코너에는 통상 ‘일본인론’ 또는 ‘일본문화론’이라는 분류표가 붙어 있곤 한다. 물론 일본인론을 다룬 책 중에는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매우 유용한 것도 적지 않다. 가령 잘 알려진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나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또는 도이 다케오(土居健郞)의 『아마에(甘え)의 구조』 등은 지금까지도 고전적인 일본 입문서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이에 비해 대다수의 일본인론은 일본의 독특성과 우수성을 부각시키는 논조에 치우친 경우가 많다. 어쨌거나 이런 류의 책들이 일본만큼 많이 출판되고 또 많이 읽히는 나라는 세계에서 다시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건 참으로 일본에 특이한 사회문화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47~48쪽, 제1장 ─ 규슈 다카치호 : 일본신화의 무대>
고타니 산시 또한 현실사회의 모순과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음양의 가치를 역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한편으로 부모를 ‘모부’로 천지를 ‘지천’으로 불러 음양을 반대로 바꾸어 칭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고타니 산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지금까지 비하되어 왔던 음을 양보다 존중해야만 좋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음양의 조화가 가능해질 것이며, 그와 같은 남녀관계의 개혁이 미륵 세상 실현을 위한 필수 조건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또한 고타니 산시는 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사회 및 가정에 있어 남녀 역할 분담의 개혁을 요구하기도 했다. 예컨대 부부의 성생활에서 남자(火)가 여자(水) 위에 있으면 조화가 깨지고, 반대로 여자가 남자 위에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음양 화합이 가능하며 좋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78쪽, 제2장 ─ 후지산 : 고노하나노사쿠야히메 신화>
2016년 5월 26일부터 이틀 간 이세에서 G7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그때 일본 정부는 각국 정상들의 이세신궁 참배를 첫날 첫 번째 행사 일정에 넣었다. 거기에 참석한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세신궁이 과거 태평양전쟁 때 쇼와 천황이 전승을 기원하고 전리품을 바친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현대 일본에서는 새해 때마다 수상 등 정치인들의 이세신궁 참배가 하나의 관례로서 정착되어 있다.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리는 극히 일부 학자들에게 한정되어 있다. 근대 일본에서 이세신궁은 야스쿠니(靖国)신사와 더불어 국가신도의 기축으로 기능했는데, 그 국가신도적 일본의 식민주의와 전쟁 책임에 대한 교통정리가 아직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건대, 천황과 정치인들의 이세신궁 참배 관례는 결코 ‘전통’에 대한 존숭만으로 다 수렴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니, 고유한 ‘전통’으로서의 이세신궁이라 해도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근대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전통’일 뿐이다. <151쪽, 제3장 ─ 이세신궁 : 일본 신도와 신사의 메카>
733년에 완성된 『이즈모국 풍토기』(出雲國風土記)에는 신이 어망줄로 신라의 땅을 끌어당겨 이즈모국을 완성시켰다는 신화가 적혀 있다. 이처럼 다른 나라의 땅을 끌어 당겨온다는 발상은 일본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대 한반도와 이즈모의 밀접한 교류관계를 염두에 두건대, 이 기묘한 이야기는 어쩌면 신라의 문화적 빛을 받아들여 자기성숙을 이루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이즈모 지역이야말로 오늘날 독도 문제의 진원지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순간, 우리는 문득 스사노오의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야에가키신사의 신화적 로망을 껴안아 온 물의 도시 마쓰에와,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고 선전해 온 시마네현 현청 소재지로서의 마쓰에는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희망은 지워지지 않는 어떤 것이리라. 로망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통하는 것일 테니까. <187쪽, 제4장 ─ 이즈모대사 : 일본 신들의 고향>
교토의 후지산이라고도 하는 히에이산(比叡山, 히에이잔)은 시가현(滋賀県) 오쓰시(大津市) 서부와 교토시 좌경구(左京區)의 경계에 있는 오히에이(大比叡, 848.3m)와 교토시 좌경구에 있는 시메이가타케(四明岳, 838m)의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남북에 걸친 봉우리들을 총칭하는 말로, 본서의 6장에서 다루는 고야산(高野山)과 함께 예로부터 일본 불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꼽혀 온 곳이다. (중략) 동쪽 산정에는 일본 천태종의 총본산인 연력사(延曆寺, 엔랴쿠지)가 있으며, 그 아래 기슭에는 역사적·종교적으로 연력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히요시대사(日吉大社)가 위치하고 있다. (중략) 역대로 연력사는 불교 종파에 관계없이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했으며, 이로써 히에이산은 일본 불교의 어머니산(母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194~195쪽, 제5장 ─ 히에이산 : 일본 불교의 어머니산>
종래 고야산을 비롯한 일본의 영산들은 대부분 수험도(修驗道, 수험도)의 영향 하에 있었는데, 수험도의 성산은 대부분 불교의 및 신도의 게가레 관념에 입각하여 여인의 입산을 금지했다. 특히 고야산은 개창자인 구카이가 모친의 입산을 금지한 이래 1872년 여인금제 철폐령인 태정관포고가 발포되기까지 약 천년 동안 철저하게 여인금제를 지켜 왔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결계 외측의 봉우리마다 이어진 이른바 여인도(女人道, 뇨닌미치)를 따라 순례했으며,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여인당(女人堂)에서만 고야산을 참배할 수 있었다. (중략) 고야산의 여인금제는 심지어 천황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엄격했던 모양이다. 가령 1088년 시라카와(白河) 상황이 고야산을 참배했을 때, 어영당 안에는 상황과 극히 가까운 남자들만이 입당을 허락받았고, 동행한 상황의 여동생인 하치조인미야(八條院宮) 내친왕은 상징적으로 좌석만 마련되었고 정식으로는 입산을 허락받지 못했다고 한다. <253쪽, 제6장 ─ 고야산 : 현세의 정토이자 일본 제일의 명당>
오늘날 한국은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가장 기독교 신자와 교회가 많지만, 실은 기독교가 가장 늦게 전래된 나라이다. 한국에 처음 기독교(가톨릭)가 전해진 것은 이승훈(李承薰, 1756-1801)이 중국 연경에서 포르투갈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고 1784년 기독교 서적을 가지고 들어온 뒤 자생적인 신자집단이 형성되어, 다음 해 한양에 최초의 조선교회가 성립된 1785년으로 잡을 수 있다. (중략) 일본에의 기독교 전래는 중국의 이 시기보다 약간 앞선 1549년에 이루어졌다. 그 무대가 바로 규슈 남단의 가고시마(鹿児島)이다.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기도 했던 가고시마는 메이지유신 때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담당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가고시마 시내에는 ‘젊은 사쓰마의 군상’(若き薩摩の群像)이나 ‘유신 고향의 길’과 ‘유신 고향관’을 비롯하여, 야마구치현 출신의 기도 다카요시(木戸孝允, 1833-1877)와 함께 ‘유신삼걸’로 불리는 가고시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 및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의 동상과 생가 등 메이지유신 관련 명소가 매우 많다. <337쪽, 제7장 ─ 가고시마 : 하비에르가 상륙한 일본 기독교의 발상지>
차, 빵, 담배, 맥주, 고구마 등이 처음으로 일본에 전해진 히라도는 오늘날 일본 ‘최초’로 제주 올레가 수출된 규슈올레 트래킹 코스의 하나이기도 하다. 규슈올레는 ‘일본 규슈 관광추진기구’가 2011년 사단법인 제주올레와 제휴 협약을 체결하여 매년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만들기 시작했는데, 2012년 2월 제1호 다케오(武雄)코스가 개장된 이래 2019년 현재 21개 코스가 오픈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제주 조랑말을 상징하는 ‘간세’ 표지판과 청색 및 적색 리본이 이방인의 여정을 안내해 주어 전혀 낯설지가 않다. 아내와 함께 제주 올레는 거의 다 걸었고, 규슈올레는 4, 5년 전부터 틈틈이 걷고 있다. 한 코스당 보통 4, 5시간 소요되지만, 내 경우는 주변의 신사와 사찰 및 유적지 등을 꼼꼼히 돌아보기 때문에 7, 8시간 정도 걸린다. 히라도항 교류 광장에서 시작해서 12개 거점으로 이루어진 히라도 올레 코스의 핵심은 역시 네덜란드 상관터와 기독교 관련 유적에 있다. <373쪽, 제8장 ─ 히라도와 야마구치 : 하비에르의 일본 선교는 실패인가?>
일본에는 어딜 가나 외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어떤 이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는 이런 식의 문학적 혹은 종교적 상상력이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바로 ‘일본인론’이라는 매우 독특한 일본적인 담론 장르이다. 어쨌든 ‘일본의 혼령’으로 불리는 또 다른 등장인물인 한 노인은 오르간티노 신부가 말하는 ‘이상한 힘’을 ‘변조하는 힘’이라고 표현한다. 일본인은 한자를 비롯하여 유교와 불교 등 바다 건너 일본으로 들어온 모든 외래 사상을 다 일본식으로 변조시켰으며, 기독교 또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엔도 슈사쿠가 『침묵』에서 로돌리코 신부를 취조하는 최고 심문관 이노우에의 입을 빌려 “기독교라는 나무는 다른 나라에서는 잎도 무성하고 꽃도 피울지 모르지만, 우리 일본에서는 잎이 시들고 꽃봉오리 하나 열리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변조하는 힘’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429쪽, 제9장 ─ 오이타 : 하비에르의 마지막 일본 선교지>
■ 저자
박규태 _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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