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통합의료인문학문고 02
화병의 인문학 - 전통편
의료문학으로 보는 화병
■ 이 책은…
의료인문학의 한 부문으로서의 ‘의료문학’의 관점에서 ‘화병’을 조명하는 ‘화병의 인문학 - 전통편’이다. 한국 고유의 질병으로서의 화병은 전통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 기록에서 그 사례가 등장하며, 당대의 문학에 반영되어 있다. 화병을 의료적인 관점이 아닌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매개로서 문학작품은 훌륭한 통로가 된다. 화병의 양상은 시대를 따라 일관된 부분과 시대상을 반영하여 변형되고 변화된 양상을 띠기도 하는바, 이 책은 ‘화병의 인문학’의 전통편으로 우리 역사의 삼국시대 기록(문학작품)에서 화병이 등장하는 것을 확인하면서 역대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에 나타난 화병을 통해 한국인의 심성의 심층을 들여다보고, 또한 그 시대의 이면을 재조명해 보는 유의미한 시각과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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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왕실의 병에서 양반의 병으로, 민간의 병으로, 마침내 한국인 보편의 병으로!”
“‘가슴 쓰림’에서부터 ‘홧김에 서방질’까지 한국인 화병의 전통적 연원을 찾아서”
1.
‘화병’은 세계적으로도 ‘문화결합증후군’의 일종으로 ‘한국인 특유의 질병’으로서 보고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보고가 타당성이 있다면, 한국의 심층적인 문화전통에서도 ‘화병’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대 이래의 한국의 문학작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가설에서 출발하여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 전통 문학작품에 반영된 ‘화병의 사례와 기록’들을 찾아 소개하고, 그 문화적 의미를 논구하였다.
2.
한국 문학을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화병은 심화(心火)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 책에서는 삼국유사에 실린 ‘지귀(志鬼)설화’가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된다. 이 설화는 본래 인도에서부터 발생하여 신라에 전래된 것이지만, 신라문화 전통 속에서 재해석되고 전유되어 선덕여왕, 혜공선사 등의 역사적 인물과 영묘사라는 실제 공간적 배경을 갖춘 역사적 설화로서 기록되어 있다. 그 골격은 오늘날 ‘상사병(相思病)’이라고 불리는, 이루지 못하는 짝사랑이 원인이 되는 심병(心病)에 관한 기록으로, 그 심병이 어떻게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으로 확장되며, 또 신라 사회는 그 심병의 사회적 파장을 어떻게 다스려 나갔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선덕여왕은 화병의 당사자가 아니라 원인제공자이거나, 치유자로서 등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3.
한국사회, 화병의 전통적 맥락에서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그것이 주로 ‘왕실의 병’으로서 기록되었다는 점이다. 왕실을 배경으로 하는 화병(火病)은 구체적인 사례로서, 또 개인적이거나 단절적인 사건으로 마감되지 않고 여러 대에 걸쳐, 계기적인 스토리를 이루며 전승되고 심화,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오랜 치세 기간을 보유하는 왕 중의 한 사람이면서, ‘임진왜란’을 겪으며 ‘왕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그 패배감과 열등감에 평생을 시달렸던 선조는 ‘화병’에 관한 기록을 남긴 최초의 임금이다. 화병은 왕에서 왕으로 계승되기도 하지만, 주변인물(왕비나 왕자 등)로까지 확장되는 ‘가족력(家族歷)’의 질병으로 계속되면서 역대 국왕들은 대체로 이러한 화병에 시달리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화병은 시대를 달리하면서, 민간으로까지 이전된다.
4.
‘화병’이 한국인 특유의 질병이 되는 까닭은 한국인의 삶 전체를 배경으로 해서 형성되는 질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전통시대 ‘화병’의 보편화에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은 한국 특유의 대가족제도와 문화이다. 가족제도를 배경으로 하는 화병에 대해서는 고전소설에 적지 않은 사례들이 남아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고전소설에서 가족 내의 갈등으로 인한 ‘화병의 희생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유효공선행록>과 <완월회맹연>이라는 두 작품을 통해 ‘가부장제’ ‘효’ ‘삼종지도’ 등을 핵심 키워드로 하는 한국의 전통적 가족제도 속에서 ‘화병’이 어떤 식으로 한국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매김하게 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
5.
이렇게 ‘왕실의 병’에서 ‘민간의 병’으로 이전하고 ‘양반 가족의 병’에서 ‘한국인 보편의 질병’으로 자리매김해 온 ‘화병’은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부모 - 자식’ 사이 ‘남성(남편) - 여성(아내)’ 사이의 갈등을 통해서 더욱 더 한국인 전체에 미치는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다. “자식이 웬수”, “남편(男便)은 ‘남’ 편”이라는 두 종류의 ‘금언(金言)’은 그 이면에 깃들어 있는 ‘부모의 화병’, ‘아내(여성)의 화병’으로 구체화되고 유형화된 ‘한국인의 화병’의 보편성을 보여준다.
6.
이 책의 말미에는 ‘화병 관련 어휘/표현 모음’을 실었다. ‘화병’이 한국인에게 흔한 질병인 만큼 한국인의 언어 습관 속에 화병과 관련된 어휘와 표현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가슴 쓰림’에서부터 ‘홧김에 서방질한다’에 이르기까지 화병 관련 어휘와 표현들은 순수 의학용어에서부터 일상용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다층적이다. 이러한 ‘언어’를 통해, 우리는 ‘화병을 매개로 한’ 우리 자신의 이해와 한국사회의 이해에 좀더 심층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7.
이 책은 <통합의료인문학문고> ‘근대편’에 이은 시리즈 제2권이다. <통합의료인문학문고>는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이 기획하고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펴내는 문고로, 대중들이 의료인문학을 쉽게 이해하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한 책들을 발간한다.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 중심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통합의료인문학의 구축과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연구와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인문학 지식의 대중화에 힘쓰고 지역사회의 인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역인문학센터 <인의예지>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 차례
머리말
1. 총론: 화병을 ‘이야기’ 하다
2. 심화(心火) ―짝사랑이라는 이름의 화병
화병(火病),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 이야기
기원전 인도에서 유래한 설화, 구모두와 술파가
화병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 연민
3. 기록으로 남은 화병 ―화병에 걸린 왕들
화병이란
최초의 화병의 주인공 선조
여러 왕들에게 이어졌던 화병의 기질
정조의 화병과 등창
4. 유전인가 직업병인가 ―임금님들의 화병
선조, 우리 역사 최초의 화병(火病) 환자
화병의 유전, 선조에서 광해군으로
조선조 왕가(王家)의 화병, 왕의 숙명인가 유전인가
5. 대가족 제도의 희생양 ―고전소설 주인공의 화병
국문장편소설의 세계
가부장제의 논리, 장자의 의무
악녀에게도 ‘억울함’은 있다
6. 자식이 웬수 ―부모들의 훈장, 화병
왕에게까지 보고되는 죄악, 불효
며느리의 등쌀에 시부모가 잇단 사망
국정의 현안으로 떠오른 불효죄 처리
7. 아내의 도리 ―뒤틀린 부부관계와 화병
들어가는 말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신화
며느리의 위치, 아내의 도리
부부관계의 뒤틀림과 화의 분출
부록: 화병 관련 어휘/표현 모음
■ 책 속으로
화병(火病)은 한국 문화를 배경으로 형성된 ‘문화결합 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의 일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우리 전통 문학작품에 형상화된 화병의 사례와 화병에 대한 역사 기록, 사회구조가 원인이 되어 나타난 화병의 사례 등을 다양하게 수집하여 화병의 병리적 증상과 그 원인을 들여다본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교양서이다. 화병은 의학 용어이기 이전에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친연성 있는 표현으로, 한국인의 한의 문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느꼈을 억울함과 분노라는 감정과 관련이 있고, 오래 참는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는 질병이어서 인내를 큰 덕목으로 여기는 한국 문화에서 더욱 보편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하여 앞으로 문학은 물론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화병을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총론: 화병을 ‘이야기’하다 중에서, 13쪽>
‘사랑의 화신(化身)’이 ‘저주의 화신(火神)’이 되어 버려 주변의 일상을 잿더미로 만드는 일은 오늘날 오랜 짝사랑 끝에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속) 연인에 대한 화병(火病)으로 자신을 해치고 자신이 오롯이 아꼈던 그 사람과 가족을 해치고 사회의 불특정 다수에게로 분노의 화살을 옮기는 어리석은 스토커들에 대한 경고는 아니었을까. ...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오래 전부터 몸속에 깊이 드는 골병과 함께 마음속에 깊이 병드는 마음, 즉 화병(火病)을 미움보다는 안타까움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음을 알 수가 있다. <심화(心火) 중에서, 38~39쪽>
정조의 화병은 수원 화성 축조 이후부터 그 증세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는 자신의 개혁을 완성하기 직전의 상황이었고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수원화성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과로로 인해 몸의 피로감이 심하여졌고, 정치적 갈등도 극에 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영조가 사도세자 문제를 거론하면 반역으로 치부하겠다고 하였던 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가문에 대한 집착으로 인한 부담감, 정치적으로 자기 신념을 공격당하는 데서 오는 상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고 화병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조선 중기 두 번의 전쟁을 겪은 선조와 조선 후기 부흥기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숙종으로부터 경종, 영조, 사도세자와 정조에 이르기까지 화병을 앓았던 내력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으로 남은 화병 중에서, 59~60쪽>
우리 역사에서도 선조(조선 14대 임금)에서 인조(16대), 효종(17대), 현종(18대), 숙종(19대), 영조(21대), 정조(22대)에까지 이어지는 선조 가계의 다양한 울화병(鬱火病)의 상황들은 저마다의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며 임진왜란 이후의 우리 근대사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는 도화선(導火線 triger)이 될 것이다. <유전인가 직업병인가 중에서, 79쪽>
『성현공숙렬기』의 유연, 『완월회맹연』의 소교완, 이 두 사람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질병에 걸린다. 이들이 긍정적 인물이든 부정적 인물이든 간에, 그들의 몸에 병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억울함’의 누적과 이로 인한 분노이다. 그런데 이들의 주변에서 이러한 마음 상태를 알아주거나 하소연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 위로와 공감을 해주는 인물을 찾을 수가 없다. 전통사회에서 개인은 가족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억울한 상황을 참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러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조차 표출하지 않아야 했다. 문제는 밖으로 표출하지 못한 억울함이 내면에 쌓이게 되고 이것이 신체에 병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누적된 억울함이 끓어오르는 것이 ‘화’일 것이며, 오랜 시간 바깥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화는 신체를 망가뜨리거나 비정상적으로 폭발하고 만다. 앞에서 살펴본 국문 장편소설의 두 중심인물은 가부장제 하에서 좌절과 분노를 느낀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병에 걸린 두 인물을 통해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내재된 질병적 징후를 확인할 수 있다. <대가족 제도의 희생양 중에서, 102쪽>
자식과 며느리, 사위 등으로 인해 화병을 얻어 죽음에까지 이르는 조선 시대의 부모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회화되었고 조선 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집안을 넘어 국가의 기강의 문제로까지 연결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오늘날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식이 웬수 중에서, 119쪽>
장현주는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격한 분노의 감정을 갖게 되고, 한때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기에 이른다. 장현주의 분노는 즉각적으로 외부로 발산되어 주변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괴롭힌다. 하지만 그녀가 극한으로 치닫지 않고 분노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적인 상황을 받아들였던 데 있다. 자신의 화(火)의 원인을 직시하기 위해, 인생에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되짚어 가는 과정을 온전히 겪어냈기 때문이다. … 가슴속에서 화가 일어났던 초기에는 화를 바깥으로 분출하는데 급급했지만, 극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내의 도리 중에서, 147쪽>
■ 저자
김양진 _ 경희대 국문과 교수, 『인문학연구』 편집위원장,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부학장.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1996~2009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연구교수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편찬과 한국어 어휘 연구 진행. 2010~2011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만주학센터 책임연구원. 2012년~현재,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뉴욕주립대(SUNY) 방문학자(2018.1~2019.1)를 거쳤다.
『고대 도서관의 역사』(공역), 『국어사전학개론』(공저), 『동요 노랫말 수수께끼』를 위시해서 최근의 『언어학으로 풀어 본 문자의 세계』(공역), 『만주족의 신화 이야기』(공역)까지 십여 권의 저서와 「한국어의 형태와 형태소」, 「‘象形’과 ‘訓民正音’」, 「한민족어와 만주어의 형태론적 동형성」, 「시어와 문법」 등 90여 편의 논문이 있다.
염원희 _ 경희대학교 HK+ 통합의료인문학 HK연구교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2009년부터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였으며, 2011년부터 원광대, 단국대 연구교수 및 중앙대 포닥으로 재직하였고, 고전문학과 민속문화를 연구하였다. 신화에서 현대 도시전설까지 한국인의 이야기 문화를 관통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연구하고 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경희대학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생의례로 보는 근대 한국인의 삶』(공저), 『세시풍속의 지속과 변용』(공저), 『조선의 풍경, 근대를 만나다』(공저) 등의 저서와 「사회적 참사 소재 도시전설의 유형과 의미: <삼풍백화점 괴담>을 중심으로」, 「질병과신화: 질병문학으로서의 손님굿 무가」, 「동아시아 해양신앙의 여신과 제의의 치유적 성격」 등 20여 편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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