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동학기행3
- 전라북도 / 전라남도 / 제주도
■ 이 책은…
한반도 전역의 동학 사적지를 답사, 조사해 온 저자의 ‘새로 쓰는 동학기행’ 완결편인 제3권으로, 전라남북도와 제주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사와 관련 사적과 역사를 소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근대사의 결정적인 변곡점인 동학농민혁명을 전국의 각 도와 군 단위로 조명한다는 데 있다. 사건이나 인물 중심의 접근이 대부분인 동학농민혁명사 연구에 새로운 관점과 안목을 제공함으로써 더 입체적인 역사상을 구성해 내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동학농민혁명이 전국적인 단위에서 민중 전체의 참여로 전개된 사건임을 드러내고, 각 지역별 전개 과정의 특징 또한 훨씬 객관적으로 드러내 준다. 제3권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적 진원지였던 전라남북도를 주로 다루고 있어 그 내용이 더욱 풍부하다. 이 책은 한국근대사의 출발점이자 세계적인 민중 주체 혁명인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의 의미, 그 위상과 가치를 가늠하고 판별하는 가늠자와 좌표 또는 지도 역할을 해 준다.
- 분야 : 문학
- 저자 : 채길순
- 발행일 : 2022년 7월 15일
- 가격 : 18,000원
- 페이지 : 384쪽 (두께 19mm)
- 제책 : 무선
- 판형 : 150×210mm
- ISBN : 979-11-6629-122-7 (03810)
동학농민혁명의 막은 내려졌으나, 개벽은 끝나지 않았다
■ 출판사 서평
그동안 채길순 교수의 『새로 쓰는 동학기행』은 1권(2012 초간)에서 ‘강원도, 충청도, 서울·경기도’ 지역을 소개하고, 2권(2021 초간)에서는 ‘경상북도, 경상남도, 북한’ 지역 동학농민혁명사를 권역별로 소개하였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제3권은 시리즈 최종 편으로, ‘전라남도, 전라북도, 제주도’를 다루고 있다. 이 지역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로 보면 횃불의 시작점이자 종점이다. 갑오년 한 해 동안 이 지역은 민중이 자기의 존재를 자각하는 도량(道場)이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성취해 내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새 정치를 펼쳐낸 ‘해방구’였다. 조선 팔도, 나아가 동북아시아가 전라도로 집중되었고, 전라도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시아로 그 지평을 펼쳐낸 시기였다. 새로운 세상의 꿈이 실현 직전까지 갔었고, 그 높이만큼의 좌절과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동학농민혁명사상 단일 전투 희생자로 보면 통상 ‘우금치 전투’라고 불리는 충청도 공주에서의 대회전(大會戰)에 즈음하여 약 보름 전후 기간 동안 희생당한 동학농민군의 숫자가 가장 많을 테지만, 일본군 후비보병 제19대대의 실질적인 주도로 치러진 ‘남한 대토벌 작전’(이것은 통상 1909년 한일합병 직전,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의병 최후 항쟁을 토벌한 일본군의 작전을 일컫지만, 그 실질적인 시작은 1894년~1895년경으로 보고 그 일을 지칭한 용어로 썼다)에서 수많은 잔인한 학살이 벌어진 것을 감안하면, 역시 전라남북도가 동학농민혁명의 중심 지역이었음은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동학농민혁명을 시기별로 보면 다음 몇 개로 나누어볼 수 있다. 1880년대 초까지 고난을 거듭하던 동학은 1890년 들어 전라도를 중심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이에 비례하여 관의 지목이 재개되고, 동학도에 대한 지방 관료들의 수탈도 극심해 졌다.
(1) 1890년~1893.12 : 이에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처형된 교조(敎祖) 수운 최제우의 죄를 사면받음으로써, 동학에 대한 금압(禁壓)을 원천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교조신원운동’이 1892~1893년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마치 오늘날의 촛불항쟁처럼, 교조신원운동은 회를 거듭할수록 수많은 민중들의 호응을 얻어냈고, ‘동학’을 새로운 대안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더해져, 동학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다. 이때 이미 교조신원이라는 ‘교단 내적 문제’ 외에 탐관오리의 제거와 통상(通商)의 자주성, 척왜양의 구호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2) 1894년 상반기 :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을 징치하기 위한 ‘고부봉기’가 전개되면서, 혁명전(革命戰)으로 질적 전환이 시작되었다. 1894년 3월 무장기포를 기점으로 1차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어 5월에 전주성에 무혈입성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3) 1894.5~1894.9 : 이 시기에 청국군과 일본군이 동학농민혁명군 진압을 빌미로 국내에 들어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다투다가 결국 청일전쟁이 발발했다. 동학농민군과 조선 조정은 외국군의 퇴출을 위해 ‘전주화약’을 체결하고 집강소 통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이 기회에 한반도를 완전히 장악할 뜻을 굳히고, 눈엣가시인 ‘동학농민군’ 세력을 초토화하기 위한 남진(南進)을 시작했다.
(4) 1894.9~1895.1. : 일본군을 주축으로 한 토벌군의 남진에 대항하여 2차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전역에서 일제히 전개되었다. 전봉준과 손병희를 비롯한 동학농민군 주력은 공주를 거쳐 서울로 진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공주성 함락을 시도하였으나, ‘공주대회전’에서 참패하고 후퇴를 거듭하다가 전라남도까지 밀린 끝에 후일을 기약하며 서로 흩어졌으나, 일본군-관군-민보군의 촘촘한 그물망에 전라도 지역 동학군은 괴멸적 타격을 입고 말았다.
(5) 손병희를 주축으로 한 북접 동학군은 전라도에서 다시 북상하여 자기 근거지인 충청도를 거치며 대부분 해산하고, 동학교단의 주축은 강원도로 숨어들어 한반도 북부지역으로 활동 근거를 옮기며 재기를 도모했다.
이상과 같이 짧게는 만 1년, 길게는 4~5년에 걸쳐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은 그 표면적인 성패와 관계없이 한반도 내부 질서는 물론이고 동북아시아 전체의 역학관계를 대변혁시킨 ‘세계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후 ‘러일전쟁’을 거쳐 ‘한일병탄’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30년 후에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이어지는 긴 50년간의 역사의 서막이기도 했다.
동학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갑오년의 농민들의 반역적 봉기’에서부터 ‘동학사상의 혁명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후천개벽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갖는다. 그 규모나 또 그것이 지속된 기간으로 말미암아 동학농민혁명은 ‘단일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다각적인 이해와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2004년에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고 2019년에 ‘동학농민혁명기념일(5월 11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다시 새로운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인류세’로 대변되는 ‘기후위기’와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 지구적 차원의 인류사회 구조의 개편 등에 즈음하여 동학사상과 동학농민혁명의 지향을 다시금 주목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오늘의 시대가 동학 창도(1860) 당시, 그리고 동학농민혁명(1894)과 마찬가지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놓인 ‘대전환’ ‘대변혁’ ‘대개벽’의 시대임을 이제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느끼고, 누구나 수긍하고, 누구나 두려운 마음으로 그 추이를 지켜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세계사가 미국-러시아를 양대 축으로 하는 신냉전시대로의 입구에 놓여 있다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며, 이 구도에 따른 이해를 고집할 경우 인류는 절망적인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빗발치고 있다.
『새로 쓰는 동학기행』(전 3권)이 완간된 것은 이런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 자체가 앞서 언급한 전 지구적 과제나 전 인류사적 지평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한반도-동북아시아를 거쳐 결국 세계화(제국주의 시대)의 중심부와 연결되었듯이, 동학농민혁명의 재발견, 그 근본의 재구성은 새로운 문명세계 구축이라는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의 비전을 찾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끝자락인 현 시점, 동서 신냉전구도의 구축이라는 패러다임 너머를 바라보는 시야를 열어준다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진영의 오래된 구호이자 비전이며 과업인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1, 2, 3』의 구도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한 응답이다. 이 책은 그 “기초”를 다지는 책이며, 그 물고기(과제)를 잡는 그물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이 책이 ‘건조하게’ 다루는 각 지역별 동학농민혁명의 전개와 그 속에서 명멸해간 동학농민군들의 활동은 거대한 ‘동학농민혁명사’와 ‘동학의 다시개벽 운동’으로 가는 ‘대행진’의 동력원이기도 하다.
이 책 『새로 쓰는 동학기행 1, 2, 3』과 더불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행진에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 차례
제8부 전라북도
총론/ 전라북도 동학의 흐름
군산 옥구 임피 군산 지역 동학농민군의 활동 기록
익산 호남 지역 동학 포교의 교두보
완주 동학혁명의 시작과 대둔산 마지막 항쟁
진안 주변 지역으로 이동하여 투쟁 활동 전개
무주 동학농민군이 무주 관아와 용담 현아 점령
김제 금구 원평의 투쟁활동과 김덕명
전주 전라도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부안 백산 대회로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 전개
정읍 동학농민혁명의 발원지
임실 동남부 지역 동학 포교의 거점
장수 황내문이 장수 관아 점령
고창 무장에서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올리다
순창 막강한 동학 교세와 전봉준의 피체지
남원 동학의 성지, 전라좌도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중심지
제9부 전라남도
총론/ 전라남도 동학의 흐름
영광 동학농민혁명 전후 시기에 다양한 투쟁 활동을 벌이다
장성 황룡강 전투 승리로 전주성 함락 계기 마련
담양 임실과 남원의 동학 세력과 연대한 투쟁 세력 형성
곡성 동학 활동 기록은 적지만 희생자는 많아
구례 전·현 현감의 동조로 동학 교세 빠르게 성장
함평 영광, 나주, 무안, 광주 지역 동학농민군과 연계 활동
무안 남부 도호소 배상옥을 중심으로 활동
광주 전라 서남부 지역 동학농민혁명 활동의 요충지
나주 동학농민군이 끝내 점령하지 못한 철옹성
화순 전라 서남부 지역 동학농민혁명 요충지
순천 남부 해안 지역 투쟁의 중심지
광양 민란의 전통이 동학농민혁명으로 연결
신안 동학교도 장찬빈이 참여자로 체포되어 압송
목포 목포진에서 탈취된 무기를 되찾아오다
영암 전라 서남부 지역에서 투쟁 활동 전개
장흥 전라 서남부 지역 최대 격전지 장흥전투
보성 장흥 등 주변 지역과 연계 투쟁
여수 영호대도소 동학농민군이 좌수영을 공격했으나 실패
진도 땅 끝, 거대한 동학농민군의 처형장
해남 전라 서남해안과 무안·진도 지역을 연계한 활동
강진 땅 끝 고을로 밀려온 개벽의 기운
고흥 남원, 장흥 등 주변 지역과 연계한 투쟁 활동
완도 소안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사회 변혁 운동
제10부 제주도
총론/ 동학교도 활동 정황은 많으나 기록 없어
■ 책 속으로
○ 전라북도에 동학이 유입된 것은 창도주(수운 최제우) 재세 시기(1864년 이전)부터라는 일부의 주장도 있으나 대략 최시형의 포덕을 기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앞의 주장은 1860년대 창도주 최제우의 남원 지역 행적 때문인데, 그가 남원 교룡산성 은적암에 도피하여 경전을 집필할 당시 금산 남원지역에 동학이 포교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입도했던 도인의 행적은 수운 순도 이후 멸절되다시피 했고, 본격적인 동학 포교는 1880년대 말 동학 2세 교주 최시형의 전라도 잠행 포덕으로 동학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892년 공주·삼례 취회, 1893년 광화문 상소, 보은 취회 등 교조신원운동을 거치면서 동학교도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본문 18쪽, 전라북도 총론 편>
○ 황토재 전투는 동학농민군이 감영군을 대상으로 전투를 벌여서 거둔 최초의 값진 승리였다. 이후 동학농민군은 흥덕, 고창, 무장, 영광, 함평 등 전라도 지역을 차례로 점령하여 군세 확장에 나섰다. 황토재 전투 승리로 동학농민군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고, 전라도 지역 세력 규합에 성공한 동학농민군은 4월 23일 장성 황룡 전투에서 초토사 홍계훈이 이끄는 경군을 맞아 대승을 거두고 여세를 몰아 파죽지세로 전주성을 함락하게 된다. <본문 89쪽, 정읍편>
○ 고창 재봉기란 1898년과 1899년 두 차례에 걸쳐 전개된 농민봉기를 뜻한다. 1898년 흥덕 농민봉기는 흥덕 군수의 탐학에 저항한 사건이며, 1899년 봉기는 1898년 때 주동 인물인 이화삼을 구출할 목적으로 일어났다. 농민 봉기 수습 과정에서 당사자인 흥덕 군수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이화삼은 고창옥에 갇혔다가 광주옥으로 이감된다는 소문을 접하고 영학당을 주축으로 봉기했다. 동학농민혁명 때와 마찬가지로 고부 말목 장터에서 기포하여 고창 관아를 습격했다. 그러나 고창 관아는 방비를 한데다 때마침 몰아친 폭우로 패퇴하고 말았다. 이들 중에 김장일(金長一), 양선태(梁先太), 오재봉(吳在奉)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1899년 재봉기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그해 9월 광주옥에 수감됐다. <본문 118쪽, 고창편>
○ 일본군의 참전으로 패배를 거듭한 동학농민군은 살아남기 위해 무리를 해산시키고 피신해야 했다. 지역 유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민보군 토벌대가 마을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동학농민군은 관-일본-민보군에 붙잡혀 희생되거나 인근의 산속으로, 혹은 강진의 대구 칠량을 거쳐 해남으로, 보성 회령으로, 또는 회진 등 남쪽 바닷가로 숨어들었다가 배를 타고 섬으로 숨어들어 생명을 보존해야 했다. 당시 일본군이 전라도 각 군현의 수령들로부터 동학농민군 처단 결과를 보고받았는데, “해남 250명, 강진 320명, 장흥 320명, 나주 230명, 그리고 함평, 무안, 영암, 광주, 능주, 담양, 장성, 영광, 순창, 운봉, 무장 등에서는 30~50명씩을 처단했다”고 했으니 당시 희생자의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본문 163쪽, 전라남도 총론 편>
○ 일본군 진압부대인 후비보병 19대대 800여 명이 서울에서 세 갈래로 남하했다가 이곳 나주에서 다시 합쳐져 나주 객사 금성관에 숙영했다. 당시 후비보병 19대대는 잔인하기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는데, 이들은 ‘3광(光) 작전’이라고 해서 보이는 사람은 모두 죽이고, 보이는 것은 모두 태우고, 뺏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빼앗았다. 일본군은 영암, 강진, 장흥, 해남, 진도 쪽으로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동학농민군을 붙잡는 대로 살육을 자행했다. 이 시기에 나주성 남문 밖이 동학농민군의 처형장이었다. 12월 말부터 1월 초까지, 거의 날마다 처형이 자행되어 “동학농민군 시신 600여 구가 산처럼 쌓였다”고 했다. <본문 244쪽, 나주편>
○ 장흥 지역 참여자는 전국 참여자 3,644명(명예회복을 위한 참여자 명부 기준) 중 386여 명에 이른다. 대개 1890년대에 동학에 입교한 교도와 접주급 동학 지도자들이며, 교조신원운동 시기에 금구취회, 보은 취회 참여로부터 백산 기포, 황토재 전투, 황룡 전투, 전주성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2차 기포 이후에는 공주 우금티 전투, 남원성 전투, 강진성 전투, 병영성 전투, 회령진 전투, 벽사역 전투, 석대들 전투, 대내장 전투, 옥산 전투, 자울재 전투, 월출산 불티재 전투 등에 참여했다. 이들은 장흥 지역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아 처형되기도 했지만, 강진, 해남, 보성, 영암, 진도, 나주 지역으로 도피 중에 붙잡혀 희생된 이들이 많다. 사망자로는 전사 18명, 총살 116명, 처형 77명, 분살 1명, 자결 1명, 옥사 2명, 압송 5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희생됐다. 특히 벽사역 희생자는 102명에 이른다. <본문 301쪽, 장흥편>
○ 당시 고흥 동학농민군의 무기 수준은 수성군의 보고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곧, “포군 정재홍이 유복만을 붙잡을 때 회룡총(回龍銃) 1정을 소지하고 있어서 노획했고, 포군 김연삼이 거괴 함양진을 체포할 때는 모젤총 1정을 빼앗았다.”고 했다. 고흥 동학농민군의 무기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에서도 나타난다. 즉, “흥양성 전투 뒤에 포군총장 김정태로 하여금 포군을 거느리고 그 인근 지역을 살피도록 했는데, 당시 노획하거나 찾아낸 군기가 조총 13자루, 화약 8근, 연환 300개, 화살 300여 개”라고 하여 고흥 동학농민군이 어느 정도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본문 356쪽, 고흥편>
○ 동학농민군의 연명책으로 제주도 피신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동학당 정토대(征討隊)” 대장으로 조선에 파견되었던 독립후비보병 제19대대 대장 미나미 코시로(南小四郎)의 1894년 12월 24일 자 보고에 “동학농민군 2~3천 명이 해남으로부터 진도와 제주에 와 있다.”고 보고했고, 본부에서는 이에 대한 토벌령이 내려졌다. 다만 토벌 상황이 없다. 진도군 의신면 만길과 원두는 나주 나씨와 제주 양씨들의 집성촌이자 진도에서 알려진 부자마을이었다. 여기에 최초로 입도한 나봉익(羅奉益)과 양순달(梁順達)이 살았으며, 마을 사람들 모두 동학을 신봉했다.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교도는 급속히 늘어나 진도군 의신면, 고군내면, 조도면, 진도면에 동학교도가 특히 많았다. <본문 373쪽, 제주편>
■ 저자
채길순 _ 소설가, 명지전문대학 명예교수
1983년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당선, 1995년 한국일보 광복50주년 기념 1억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흰옷이야기’가 당선. 대하 장편소설 『어둠의 세월』상·하(도서출판 마루, 1993), 『흰옷이야기』①-③(한국문원, 1998), 『동트는 산맥』①-⑦(신인간사, 2000), 『조캡틴 정전』(화남, 2011), 『웃방데기』(모시는사람들, 2014) 등이 있다. 그 외 『소설 창작 여행 떠나기』(모시는사람들, 2013), 『소설 창작의 길라잡이』(모시는사람들, 2010), 『새로 쓰는 동학기행1』(모시는사람들, 2013), 『새로 쓰는 동학기행2』(모시는사람들, 2021) 등이 있다.
■ 주요 구매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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