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 서평
다시개벽 제9호에서는 오늘의 인류 문명을 조성한 ‘근대’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다시 묻는다. 지금 인간이 누리는 근대 문명이 자연을 착취한 진보와 성장의 결과물임이 확실해지는 ‘인류세’를 문제 삼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적 인간은 당연한 듯이 인간을 이 자연 세계, 우주 속에서 ‘예외적인 존재’로 여겨 왔지만, 인류세에 접어들면서 그것은 ‘거대한 착각’이었음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과도 관련이 깊다.
여기서 ‘자연’은 두 가지 상반된 함의를 표현한다. 하나는 ‘천지자연’의 의미로서 인간이 그곳으로부터 산생(産生)하였고, 그 품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원천이며 터전으로서의 자연이다. 두 번째는 ‘근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거나 미개지(未開地)로 간주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정복’ 내지 ‘개척, 개발’의 대상으로 삼았던, 대상화된, 인간화된, 식민화된 자연을 말한다. 전자의 의미는 이미 ‘과거’의 생각으로 유폐된 지 오래고, 후자의 의미로 이해하며 ‘자연살해’를 저질러 온 결과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기, 환경재난인 것이다.
오늘의 인간 지성은 이러한 진보 아닌 진보의 대안으로 회복과 치유를 성장 아닌 성장의 대안으로 성숙과 번영을, 자연 아닌 자연의 대안으로 가이아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 하나, 동아시아 전통에서는 본래부터 ‘천지자연’이라는 관념으로 인간과 만물이 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당연한 이치로 여겨 왔다. 이러한 동아시아적 사고는 산업혁명 이래 서구 사회가 전 지구적인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퇴행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퇴출되거나, 미신 내지 신비주의적인 사고로 치부되어 퇴화하거나, 오늘날 인간 삶의 현장에서 퇴장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방식과 태도를 재발견하고 재조명하며 재음미하고 재생산하자는 움직임이 서서히 일고 있기도 하다. <다시개벽>의 지향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혹은 <다시개벽>이야말로 그러한 행태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주기화는 생물학자이자 여성학자인 도나 해러웨이의 인간관과 자연관의 핵심을 ‘퇴비’ 개념을 중심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인간(human)이 부식토(humus)라거나 미생물과 공생적 존재라는 ‘균본주의(菌本主義)’가 충격적이면서도 경이롭다.
안호성은 티머시 모턴의 ‘자연 없는 생태학’을 소개하고 이것이 “자연이 맡아 온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해체하는 것”이라는 슬라보예 지젝의 해석을 인용한다. 또한 화이트헤드의 ‘자연의 이분화’에 대한 비판과 그에 계발된 스티븐 샤비로의 ‘평평한 존재론’을 신선하게 소개한다.
김영진은 화이트헤드 철학의 핵심 개념인 ‘자연, 사건, 느낌’에 집중하여 자연을 실체 아닌 사건으로, 사건을 긍정과 부정의 느낌으로, 대상을 점이 아닌 선으로 이해하는 과정철학의 요체를 정리해 준다.
김남희는 동학의 스승 해월(海月 崔時亨)의 경물(敬物)에서 출발하여, 저자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늘마음(天心)을 잃지 않는 먹음의 도(食道)”를 말한다. 동학은 역사 속의 철학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삶을 의미 짓고, 가치롭게 하는 이야기임을 실감하게 한다.
박정민은 ‘자아(自我)’라는 낱말을 키워드로 삼아 동서양의 사상을 비교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며 자아의 부각시킨 것과 동학이 “나는 모신다”라며 자아의 의미를 재발견한 것을 대비하면서 동학의 철학화 과정을 흥미롭게 말해 준다.
조성환은 조선후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학(氣學)의 인간관과 자연관이 오늘의 기후변화와 인류세를 설명해 주는 측면을 조명한다. 최근 들어서야 ‘기후’에 관한 철학적 접근에 분주한 서양철학과 달리 이미 200년 전에 대기(大氣)의 철학적 의미를 설파한 최한기 철학의 독창성을 재발견할 수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 물>의 편집장 한윤정은 인터뷰에서 오늘날 우리 인류가 직면한 위기는 일찍이 미 대륙을 ‘빈 땅’으로 여기고 몰려가서 정복하는 데 ‘성공한 경험의 저주’라고 진단하고 고장난 지구를 수리하기 위해서는 고장의 원인인 인간을 먼저 수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요섭은 ‘신체, 신명, 역설’을 키워드로 하여, 오랫동안 이론적 실천적으로 천착해 온 ‘생명철학’의 결정판 격으로 생명의 세계관을 ‘또’ 다시 써 나간다. 특히 이 글에서는 지난 해 작고한 김지하의 생명철학에 대한 조명을 시도하고 있어 앞으로 더 본격적으로 진행할 작업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이무열은 ‘지리산 정치학교’의 ‘정치전환운동’을 소개하고, 신채원은 ‘924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하는 ‘생명철학연구회’의 풍경을 전해준다. 신승철은 기후위기의 속내를 채우는 ‘식량위기’에 즈음한 농업의 새로운 전략 지도를 모색하고, 윤석은 ‘개벽, 살림, 풍류’를 키워드로 하여 개벽파3.0이라고 할 새로운 개벽파 세대의 등장을 선언한다.
라명재는 ‘천도교 주문 수련’을 소개하고, 장정희는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인 2022년에 벌어진 기념사업들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 내면서, 2023년이 ‘어린이 해방 선언 100주년’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는 일들이 우리 사회와 이 세계에 전하는 의미를 세세히 소개한다.
홍박승진은 지난 호(8호)에 이어 일제강점기에 주로 활동하였던 윤석중의 새로운 작품을 발굴 소개하며, 안태연은 한국의 근대 미술가를 소개하는 연재를 새로 시작한다. 박은미(천도교회월보)와 박돈서(개벽)는 개벽파의 고전들을 현대어로 소개한다.
■ 책 속으로
○ 신유물론의 최전선에서 스피노자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다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서구 전통에서는 특정 이원론들이 유지되어 왔다. 이 이원론 모두는 여성, 유색인, 자연, 노동자, 동물—간단히 말해 자아를 비추는 거울 노릇을 하라고 구성된 타자—로 이루어진 모든 이를 지배하는 논리 및 실천체계를 제공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평생을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대결했고, 그 대결을 위한 핵심 개념이 “자연문화(Naturecultures)”다. 그는 자연과 분리된 문화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두 단어를 붙여 ‘자연문화’라고 부른다. - 17쪽, 주기화, “해러훼이의 자연문화와 퇴비주의”
○ 화이트헤드의 사유 역시 플라톤의 각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플라톤에게서 실체와 대상의 조연 역할을 하는 사건이 주연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플라톤을 배반한다. 오죽하면 화이트헤드는 『과정과 실재』에서 자신의 사유는 동아시아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고 말하겠는가! 동양에서 ‘기’(氣)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보는 방식이 바로 사건으로써 실재를 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 28쪽, “화이트헤드의 자연”
○ 자연/인간 이원론에는 더 깊은 설명이 필요하다. 객체지향 존재론자 티머시 모턴(Timothy Morton)은 자연이 언제나-이미 인간적인 것의 외부에 있으면서도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것으로서 인간을 위해 설계된 인공적인 개념임을 역설하고, 그러므로 “자연 없는 생태학”을 주장한다. (39-40쪽, “스티븐 샤비로와 사변적 실재론”)
○ 따라서 경물의 적극적 의미는 ‘한울의 살림’[養天主]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림의 대상은 생물뿐만 아니라 무생물에도 해당됩니다. 해월은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님의 살같이 하라.”(『해월신사법설』「성·경·신」)고 당부하면서, 빠르게 지나가는 어린이의 나막신 소리가 땅을 울리게 하여 가슴이 아프다고 토로했습니다. 땅이 한울이니[物物天], 그 땅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위도 한울의 일이라 여기고 처신해야[事事天] 함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51쪽, “가죽가방과 스테이크 그리고 경물(敬物)”
○ 최한기에 의하면 대기는 존재의 조건이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다. 마치 공기(空氣)가 없으면 한시도 살 수 없듯이, 대기가 없으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공기는 대기의 일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존재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데, 그 이유는 태어날 때부터 당연하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학적 관점에서 보면 대기야말로 부모와 같은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기를 부모의 은혜처럼 여겨야 한다고 최한기는 말한다. “대기가 호흡하고 적셔주는 혜택과 부모가 낳고 기른 은혜에 대해서는 이 몸이 세상에 사는 동안 수시로 힘을 다해야 한다.” - 64쪽, “인류세 시대에 다시 읽는 기학(氣學)”
○ 과정사상연구소와 연계된 생태문명원(Institute for Ecological Civilization)이란 단체에서 ‘생태문명’이란 말을 접했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거창하고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지금 보니 생태 문명이 결국 지구수리를 하자는 것이에요. 지금까지의 문명이 자연을 정복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생태문명은 지구 용량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생태와 문명이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문명을 만들자는 것이니까요. 이제 우리는 엄청난 지식과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지구의 이치를 알 수 있는 단계까지 왔으니 그 이치를 닦는 지구수리가 생태문명과 잘 통한다고 생각됩니다. - 76쪽, “지구를 수리하기, 인간을 수선하기”
○ 생명은 무엇보다 ‘살아있는 몸’이다. ‘몸(身體)’이 있어야 생명이다. 이때 살아 있는 몸이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듯 ‘희로애락’하고 ‘생로병사’하는 몸이다. 몸으로서의 생명은 생생하게, 하나의 실존으로 경험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형식(form)을 지니고 있다. 땅에서 돋아나는 새싹의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생(生)’이라는 글자처럼, 무늬, 모양, 형태를 지닌 ‘생명체(生命體)’다. 생명체는 수없이 다양한 모습으로 관찰된다. 그러므로 생명은 ‘생명들’이다. - 101쪽, “신명과 역설: 생명의 세계관 ‘또’ 다시 쓰기”
○ 나에게 한국철학은 작게는 이 땅에서 우리말로 우리 역사에 바탕을 두고 하는 철학, 즉 한반도 인근의 지역적 특성을 지닌 시공간에서 형성된 언어와 문화에 바탕을 둔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크게는 기후·생태 위기 속에 기성의 모든 질서와 철학이 무너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배제되고 경시되어 왔던 변방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이 발아하는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할 것 없이 역사와 시대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운 설명이라 생각한다. - 129쪽, “개벽, 살림, 풍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