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동학 출발지 '전라도 남원 동학농민혁명'
동학 교조 최제우(수운)은 남원에서 동학 경전을 저술하며 동학의 교리를 완성했다. 이때 편찬된 ‘논학문’에서 처음으로 ‘동학’이라는 명칭이 쓰이기도 했다. 또 이곳은 갑오년(1894)에 김개남의 주도 하에 전라좌도 대도소가 설치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전라도 남원 동학농민혁명(저자 최민자 이이화 신영우 이병규 임형진 조규태 조극훈 채길순, 발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값 1만5,000원)’은 각 지역의 동학에 대해 알아보고자 기획된 동학 총서 두 번째로 기획, 남원 지역 동학의 정체성과 의의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남원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의의와 가치를 21세기 글로컬(Glocal) 시대의 시각으로 재조명, 남원 지역 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함과 동시에 발전적 과제에 대한 통찰을 통해 미래적 전망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경주를 떠난 수운 최제우는 1861년 남원 교룡산성 내의 은적암(隱寂庵)에 머무르게 된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여 완성했다. 이처럼 남원은 단순히 동학과 관련된 지역 중 하나가 아니라 경주에 못지않은 동학의 성지이고 호남 동학의 출발지이다. 수운이 자신의 사상, 즉 동학을 이곳 주민들에게도 전파한 만큼 호남 동학의 출발지가 남원인 셈이다. 1894년 동학혁명에서 전라도 여느 지역 못지않게 남원 전 지역을 망라, 참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은적암은 수운이 조용히 흔적도 남기지 않고자 숨어 살면서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시킨 유서 깊은 지역이다.
당시 남원은 전라좌도에 속해 있으면서 지리산을 중심으로 경상우도와 접경을 이루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남원에 근거지를 둔 동학농민군은 주변 고을을 석권하고 나서 지리산을 넘어 안의와 함양으로 진출했다.
또, 전주성 함락 후 각 지역에서 집강소 활동을 전개한 바, 전봉준은 전라우도, 손화중은 전라 아랫 지역, 김개남은 전라좌도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특히 부정한 벼슬아치와 횡포한 양반배를 가혹하게 징치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김개남은 전봉준과 함께 대규모 농민 집회인 ‘남원 대회’를 개최했다. 이때 7만여 명의 농민군이 남원에 모였고, 새로운 집강소 질서가 탄생,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계기로 벼슬아치와 양반들에 대해 강경 노선이던 김개남군의 활동이 유해지는 경향을 띄었다고 적고 있다.
책자는 동학의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을 위한 소고,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성격과 현재적 의의, 1894년 남원 대도소의 9월 봉기론과 김개남군의 해산 배경, 남원지역 토착 동학농민군의 활동, 은적암과 초기 남원지역의 동학 전개, 동학농민운동 이후 남원 출신 동학인과 천도교인의 활동, 동학 경전에 나타난 근대성과 남원의 정체성, 사적지를 중심으로 본 남원지역 동학농민혁명 전개 과정, 남원 동학농민혁명 유물 유적 표지석 문안 등으로 엮어졌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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