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스 총서 09
죽음의 정치학
- 유교의 죽음 이해
■ 엮은이 :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 총서명 : 타나토스 총서 09
■ 저 자 : 이용주
■ 분 야 : 철학
■ 발행일 : 2015년 5월 29일
■ 페이지 : 240쪽
■ 판 형 : 152mm ✕ 225mm
■ 가 격 : 15,000원
■ ISBN : 979-11-86502-06-8 부가기호 94100
■ ISBN : 978-89-97472-87-1 부가기호 94100 (세트)
■ 문 의 : 02-735-7173
■ 이 책은
국내 유일의 죽음 문제 연구소인 한림대 생사학연구소가 그동안의 연구와 강연 등을 통해 축적한 죽음 연구 성과를 시리즈로 기획한 <타나토스(죽음) 총서> 제9권이다. 이 책은 유교 고전 속에서 죽음과 필연적으로 연관되는 귀신, 혼백, 이기, 성명, 군자, 가족, 민본, 불후 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유교에서 죽음은 곧 정치의 문제라는 점을 밝혔다.
■ 출판사 서평
유교의 죽음 사유에 대한 오해
흔히 유교는 죽음과 내세에 대한 ‘체계적인’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하여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괴력난신’을 비판하는 공자의 발언을 단편적으로 해석하여, 유교는 죽음을 사유하지 않는다거나, 유교에서는 삶의 문제만이 중요하다거나, 더 비약하여 유교는 인생에 대해서만 진지하게 사유하는 현세적 철학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유교에서 죽음은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가족의 문제, 공동체의 문제, 국가의 문제로 크게 주제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유교는 어느 종교나 사상보다도 분명히 죽음을 진지하게 사유하며 삶을 되돌아보도록 촉구한다. 저자는 유교에서의 죽음 사색은 결국 좋은 삶을 향한 탐색이며, 그런 사색과 탐색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좋은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치열한 숙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유교의 고전 읽기를 통해 말한다.
유교 죽음론의 시선
확실히 유교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죽음의 형이상학적 탐색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유교는 언제나 삶의 문제로서만 죽음을 다루었다고도 보인다. 유교의 기나긴 역사에서 『좌전』과 『예기』를 비롯하여, 공자, 맹자, 왕충, 주희, 왕양명 등 수많은 사상의 대가들은 예외 없이 죽음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죽음 사유가 그들의 사상적 주제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사유했다. 따라서 유교가 죽음에 관심이 없었다는 세간의 평가는 오해다. 그들 중에는 죽음 이후의 사후적 생명(혼백, 귀신)의 존재 양상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관심을 가진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들의 사상 세계 안에서 죽음은 언제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관심의 일환으로 주제화되었다. 유교의 최대 관심사는 생명이고 백성의 좋은 삶이었던 것이다.
제사는 국가의 중대사!
저자는 유교에서 ‘제사’를 ‘전쟁’과 같은 비중으로 다루었다는 사실이 유교의 죽음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에서 ‘제사’가 중요하다는 말은 국민의 ‘생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국가 지도자의 최대의 임무는 국민의 삶과 죽음을 관리하는 일이다. 백성의 삶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백성의 죽음은 더욱 더 중요한 정치 문제가 된다. 국민 개인의 죽음은 사적인 일이기 때문에 공적인 정치와 무관하다고 가볍게 생각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사람이 죽는다는 일은 개인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사회적인 일이고, 사적인 일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공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섬기는 일도 모르는데, 어찌 귀신을 섬기는 일을 알겠는가?
유명한 자로와 공자의 문답을 당시의 문맥 속에서 읽어 내지 못하는 이상, 귀신을 어떻게 섬겨야 하냐고 스승에게 묻는 자로의 질문은 ‘귀신의 존재’에 관한 질문으로 읽힐 것이다. 문답의 뉘앙스를 무시하고 그러한 귀신론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로의 질문을 절실하지 않은 단지 공허한 질문이라고 규정해 버린다. 더구나 공자는 그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 않는다. 공자의 답은 언뜻 보면 동문서답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공자는 공자다운 방식으로 ‘예의 근본적 의미’에 대해 답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공자의 답은 이렇게 읽을 수 있다. “제사는 아무나 아무 신에게나, 제멋대로, 하고 싶다고 해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자로의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이 되는 동시에, 당시 무너져 가는 예를 회복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하던 공자의 신념을 담은 답이 된다.
이 책의 저자는 근대적 관점에서 유교를 읽는 연구자들은 유교에서 ‘예 실천’과 ‘제사’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제사는 예의 핵심이다. 제사를 빼고, 나아가 예를 빼고, 유교를 연구하거나 유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공자는 초월적인 신이나 초월 현상 자체를 부정한 것이 아니다. 공자가 부정한 것은 정당한 예 질서를 벗어난 제사, 그리고 예법의 원리에 맞지 않는 초월 현상이다. 이런 공자의 입장은 아첨[諂]인 제사를 비판한 것과 통한다. 결론적으로, 공자는 정당하지 않은 제사[淫祀]를 통해 기이한 초자연적 힘이나 혼란스러운 신의 출현을 기대하는 ‘비례(非禮)’적인 행위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괴력(怪力)과 난신(亂神)은 예 체계 안에 포함되지 않은 민중의 신앙과 종교 활동을 가리킨다. 민중적 종교는 예 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민중이 그런 종교 활동에 몰입하는 것 자체가 건강한 정치 질서가 무너진 증거이며,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민중은 미신에 빠져든다. 공자의 괴력난신 비판은 그런 사실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공자의 침묵에는 민중 신앙의 무질서에 대한 비판이자 현실의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이라는 이중적 시선이 있다.
예(효)는 낡은 사고인가?
“유교의 예는 단순한 전통 묵수(墨守)가 아니다. 예가 제정되는 역사적 맥락과 의도를 잘 살펴보면, 거기에 나름대로 맥락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전통으로 굳어진 예를 수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교는 낡은 관행과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성이 강한 사상이라고 여겨진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는 가치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예는 보수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교 자체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유교가 존재했고, 각각의 시대에 적응하는 유교적 가르침과 유교적 실천 방식이 있어 왔다. 유교는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였으며, 처음부터 맥락적 사유의 산물로서 현실의 요청에 답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것이다.”
유교에서 생사는 가치문제
“주자는 유교에서 생사 문제는 생물-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가치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기의 취산이라는 자연적 사실을 초월하여, 삶의 가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유교적 죽음 사유의 요체다. 주자는 유교가 도가나 불가와 다른 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생명은 기의 취산이라는 자연적 사실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생명의 의미를 배제하고 자연적 사실만을 사유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죽음 사유의 과제는 생명의 가치를 사색하는 데에 존재한다. 주자는 도교와 불교가 생명의 가치 탐구에 소홀했던 것이 최대의 난점이라고 강조한다. 생사의 자연적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면, 죽음 사유가 결국은 삶을 위한 사유이며, 죽음 문제가 생명 가치의 문제라는 사실을 놓쳐버릴 수 있다.”
생사 이해가 성리학의 목적
“이기론(理氣論)적 관점에서 볼 때, 리(理)가 결여된 생명, 즉 도덕성을 결여한 신체만으로의 생명은 더 이상 진실한 의미의 생명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만 가진다고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도덕 없이 신체만으로 존재하는 인간은 살아 있기는 하지만 진정한 인간으로서는 이미 죽은 것이다. 그것은 도덕성을 실현하고 완성한다면 신체는 죽어도 그의 삶은 반드시 무의미하게 죽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될 수 있다. 주자학의 이기론은 이런 역설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별한 사상이다.”
죽음과 유교적 상상력
“유교에서 죽음은 생명의 단순한 종점이 아니라 다시 이어지는 삶을 위한 준비라고 생각되었다. 유교에 부활이나 내세에 관한 교리나 이론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유교는 내세로 이어지는 삶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가족에 의해 이어지는 혈연적 생명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신체의 불사가 아닌, 사후의 불멸을 유교에서는 ‘불후’라고 표현한다.… 유교에서 죽음은 죽은 사람의 삶을 말해 주는 것이고 그의 인생을 판단할 수 있는 표지였다. 죽은 사람의 가족 및 사회적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은 죽음으로써 산 자가 꾸미는 사회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그러나 죽었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구축한 사회적 관계가 일거에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죽은 사람의 삶은 가족이라는 유대를 통해 남겨진 가족과 후손에게 계승된다. 그 관계는 이제 남아 있는 가족과 자손의 삶을 통해서 이어진다.”
죽어도 죽지 못하는 자의 불행
“죽은 사람을 보내는 의식이 유교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바로 그것이 유교적 인간의 삶을 곧바로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교의 조상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볼 수는 없다.… 유교는 죽음으로써 삶은 완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죽음은 죽음의 의례를 거치면서 완결된다. 죽음의 의례가 제대로 치러지지 않은 죽음, 죽음의 의례를 통해서 제대로 구획되지 않은 죽음은 완결되지 못한 죽음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죽었을지 모르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그리고 문화적인 존재로서는 아직 제대로 죽지 못한 것이다.”
억울한 죽음이 없게 하라!
“원귀의 출현과 욕망의 호소. 그것은 어찌 보면, 이 세상에 결여된 공정과 평등을 갈구하는 요청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귀신은 인간으로서 충족시켜야 할 최소한의 욕망마저도 박탈당한 억울한 존재들이며, 공동체적 합의를 파괴하는 세력에 의해 희생된 자들이다. 그들의 왜곡되고 억눌린 욕망은 결국 사회적 차원의 무질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믿어졌다. 결국 귀신의 회귀를 승인하는 상상력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정의와 공정에의 요구와 일정한 연관이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 본문 속으로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성립하는 사회는 ‘예의’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의 약속에만 의지해서는 예의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약속을 초월하는, 인간끼리의 약속을 근거 지우는 어떤 근본적인 보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람과 사람 관계를 지탱하는 예의가 유지되기 어렵다. 과거에는 초월의 힘을 전제하는 종교가 사회적 약속과 예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교의 힘이 약해진 현대에 와서는 법이 그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법은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법을 단순히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고 보면 그 법의 구속력은 힘이 없어진다. 형벌만으로 법을 유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을 만드는 기구, 즉 입법 기관을 ‘성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약속인 법에 권위를 부여하고 그 법의 영속성을 보증하려고 한다. 사람들끼리의 약속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인간 사회를 유지하는 가치와 질서가 초월적인 존재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관념화했을 것이다. 그런 관념은 인간 사회의 질서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유교의 중요한 문서인 『 예기』 안에서 깊이 논의되고 있다.<본문 29쪽>
생명과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의 취합이 아니라 기기의 취합에 의해 발현된 ‘생명’을 가진 유기체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다. 단순한 돌덩이를 이루는 기의 취합과 생명을 발현하게 하는 기의 취합 사이에는 반드시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할 수 없다. 어떤 차이가 생명을 만드는지 알지 못한다. 기의 취합의 어느 단계에서 갑자기 생명이 깃들어 생명체가 되는지 모른다. 생명이란 물질을 구성하는 기의 취합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혹은 ‘창발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 이외의 다른 말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기의 모임과 흩어짐이라는 관점에서 삶과 죽음을 논의하는 입장은, 중요한 여러 가지 의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없는 불완전한 입장이다. <본문 104쪽>
죽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 사실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면서 죽음은 어떤 일이 있어도 회피해야 할 종말로 단죄되었다. 죽음을 삶의 세계, 생명의 세계에서 배제해 버린 뒤로 우리는 평면적 삶의 영역에 갇혀버렸다. 그러나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고 있는 것일까? 근대의 축복으로 여기던 합리주의적 신념이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일까? 죽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물리적 사실 이외의 다른 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죽는다는 인간의 운명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죽음과 죽지 않음, 그리고 초월에 대해 자유로운 상상이 허용되었다. 사이버 혁명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는다. 특히 삶의 공간에 대한 인식은 걷잡을 수 없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 ‘뒤죽박죽’의 틈새를 뚫고 죽음과 죽지 않음, 있음과 없음, 사라짐과 다시 태어남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본문 188쪽>
■ 차례
제1부 유교와 죽음의 정치
제사는 국가의 중대사! 백성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
유교 죽음론의 시선 민본의 핵심은 예의와 신뢰
유교는 정치인 동시에 종교 양생과 송사, 유교의 이상
제2부 공자의 침묵: 제사의 정치학
자로의 질문과 공자의 대답 예 전문가 공자의 입장
예, 유교의 근본 규범 공자 귀신론 해석의 어려움
제사와 정치 올바른 제사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좋은 정치가 바른 제사의 조건
제3부, 『좌전』, 예기』의 혼백과 귀신
죽음 사유와 영혼 귀신과 혼백
영혼과 혼백의 차이 『좌전』의 귀신론
자산의 혼백론 『예기』, 유교 귀신론의 종합
「제법」과 「중용」의 귀신론 「악기」와 「제의」의 귀신론
제4부 기의 사상과 생사의 달관
동양철학은 수행의 전통 죽음이란 기가 흩어지는 일
음양과 오행 : 기의 운동을 설명하는 원리 기·정·신 : 기의 세 양상
기 철학의 생성론 기의 사상과 상례, 제사
예(효)는 낡은 사고인가? 유교에서 생사는 가치문제
죽음을 통해 삶을 반성한다 한계와 삶의 태도의 전환
제5부 성리학의 죽음 이해
예의 세 뿌리 : 천지, 선조, 군사 영속하는 천지자연과 생명
신유학 이기론의 요점 주자학의 도덕적 생명론
생사 이해가 성리학의 목적 왕양명, 심즉리의 생사관
실학자 당견의 생사관
제6부 삼불후, 유교적 불멸의 탐구
오륜, 유교의 근본 도덕 혈연의 연속성, 사회의 연속성
친친, 존존과 삼년상 제사는 효의 연장이다
제사의 사회적 기능 삼불후, 유교적 불멸의 탐구
절의, 네 번째 불후
제7부 억울한 죽음을 없게 하라!
죽음 이후에 대한 상상력 신령 세계에도 위계가 있다 189
원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귀신 초월 세계에 대한 상상력과 그 힘
제8부 죽음과 유교적 상상력
삶의 신비, 죽음의 신비 유교와 죽음 사유
바른 죽음은 좋은 삶의 결과 죽음 의례를 통해 사회는 하나가 된다
■ 저자 소개_ 이용주
서울대, 프랑스 고등연구원 등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광주과학기술원 지스트 대학에서 비교종교학과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여러 권의 책을 쓰고 번역했지만,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중요한 책을 출간하지는 못했다. 학계의 말석에 머물며 더 늙기 전에 좀 더 공부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책을 쓰고, 더 많이 여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의 관심사는 문명론, 과학론, 유교론 등이다. 대학 강의에서는 주로 중국의 고전, 비교종교학, 종교와 신화와 상징 등의 주제를 다룬다.
■ 한림대 생사학연구소
2004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전국 유일의 죽음 문제 연구소로 우리 사회 삶과 죽음의 질 향상 및 자살예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부터 ‘한국적 생사학 정립과 자살예방 지역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연구과제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지원사업을 수행 중이다. 타나토스 총서는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의 연구 성과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학문 분야에서 산출되는 죽음 및 자살예방 관련 연구물을 출판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현재 철학, 종교학, 문학, 민속학,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다양한 연구자가 참여하여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융복합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모들 책안내' 카테고리의 다른 글
IS를 말한다 (0) | 2015.07.01 |
---|---|
오만 술탄국 기본법 (0) | 2015.06.17 |
죽음의 풍경을 그리다(타나토스 총서 08) (0) | 2015.06.11 |
죽음을 두고 대화하다(타나토스 총서 07) (0) | 2015.06.11 |
죽음 의례와 문화적 기억(타나토스 총서 06) (0) | 2015.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