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 책이야기

쉬운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02: 이찬수 교수 인터뷰

소걸음 2016. 7. 25. 11:51

written by 고양이버스 in 아날로그 노스탤지어(http://blog.naver.com/rosa415/22073765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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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세계 전체가 평화로웠던 적은 없다."

이찬수 교수는 최근 발간 된 "평화와 평화들"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평화를 찾아야 할까?

2016년 6월 첫날, 서울 대학교 통일 평화 연구원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1차 총 6권으로 기획된 '평화 교실'총서의 발간 취지와 이후 계획에 이어 그의 책 "평화와 평화들"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평화와 평화들"에는 새로운 개념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일단 평화학이라는 학문부터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데요. 어떤 학문 인지요?

평화학은 20세기 들어서 서구 학자들이 발전시켜 왔습니다. 지금까지 평화학은 국가 간의 분쟁이나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그런 분쟁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정치학, 사회과학 측면에서 연구하는 학문이었어요.

평화학이 평화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평화란 무엇인가? 대체로 유럽에서는 전쟁의 원인이나 구조를 밝힌 다음, 전쟁이 없는 상태, 일체의 구조적, 문화적 폭력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인 의미의 평화라고 일컬어 왔어요. 이것이 노르웨이의 요한 갈퉁으로 인해 널리 알려진 평화 규정입니다.

서양에서 발전시켜 온 평화학을 기반으로 서울대학교통일평화연구원에서 평화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를 시도하는 중이고 그 일환으로 이번 평화교실 총서가 기획된 것입니다.



"평화와 평화들"에서 말하는 인류의 '평화'란 어떤 것인지요?

인류에 폭력이 없어 본 적이 있었나? 늘 어떤 형식 으로든 폭력은 존재 해 왔습니다.

그래서 폭력에 대한 정의를 새로이 할 필요가 있겠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평화 란 폭력이없는 상태가 아니라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다,

이렇게 규정하고, 어떻게하면 폭력을 줄일까, 폭력이란 더 큰 힘에 의해서 작은 힘을 가진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고통에 대한 공감을 통해 고통을 줄여 가야한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담아 낸 것이 이번 책입니다.



책 가운데 '평화 다원주의'니 '비빔밥 평화'라는 말도 등장 하던데요. 구체적으로 어떠한 개념인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마다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모두 평화에 대해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저마다 자기중심적으로 상상하고 개념화한 평화를 얘기하고 저마다 다르게 이를 구체화하려 하고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 보니 실제로 평화가 아닌 갈등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요. 평화라는 말 또한 비슷하게 쓰이는 것 같아도 그 구체적 인식 내용은 다릅니다. 이렇다 보니 특정한 평화 규정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을 수 없겠다는 논리로 이어졌고, 그것을 저는 ‘평화다원주의’라는 말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비빔밥 평화’ 역시 제가 만들어 본 표현입니다. 비빔밥이란 것이 밥과 각종 나물과 참기름 등 여러 재료가 어울려서 종합적인 맛으로 승화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쌀 맛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나물 맛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서로가 맛의 조화를 통해 고유한 맛이 창출되는 것처럼 평화 역시 그래야 한다는 것이지요. 《평화와 평화들》에 소개된 내용의 거의 절반 정도는 제 철학입니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내용이에요. 얼핏 기존 평화학자들이 객관적인 눈으로 보면 무슨 평화학이 이렇게 관념적이고 구체적이지 못하지? 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는 저마다 평화라고 하는데, 평화란 무엇인지, 폭력은 무엇인지, 전쟁은 무엇인지, 또 국가란 무엇이며, 개인 간의 관계는 무엇인지 따져 들어가 보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기존의 관념을 해체시키면서 재구성하는 작업인데, 저는 이것이 학문의 기초가 아닐까 합니다.


한반도라는 특수 상황에 놓인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평화란 좀 더 특별하게 다가갈 듯합니다만…

한국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근대와 전근대, 탈근대 문화까지도 만나고, 전 세계 모든 문제들이 압축적으로 들어 있는 나라입니다. 게다가 남북 간 분단으로 인해 그 많은 에너지를 적대하고 갈등하는 데다 소모하는 더 특별한 나라이거든요.

평화가 폭력을 줄이는 과정이라 하면 남북 간의 갈등을 줄일 때 평화가 이루어지는 걸 테고, 한반도라는 분단 상황 속에 직간접적 피해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고, 이 거대한 문제를 어찌할 수 없어서 마음공부란 말도 많이 유행해요. 개인의 심리적인 치유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도 생겨나고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전체가 평화롭지 않으면 개인의 평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끝나고 맙니다. 개인의 심리가 편안하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편안해지지 않더라고요.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 저쪽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공감하기는 어렵거든요. 사람은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이지만 사회는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단 말이에요. 그 이유는 아픔을 자기중심적으로 사회화하고 몇 단계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고통에 눈을 감아도 그 책임이 나한테 오지 않는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개인의 심리적 편안함이 반드시 사회적으로 확장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개인의 심리적 편안함도 공격받을 수 있거든요. 한국인에게 평화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반드시 사회의 문제이기도 하고, 한국 사회의 평화를 일본이나 러시아, 북한 등등을 빼고 얘기할 수 없단 말예요. 그래서 국제질서의 일환이기도 하고, 이러한 문제의식을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더 가져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평화란 완성형이 아니라 실천적인 의지를 가지고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평화는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완료 진행형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무엇을 향해 진행해 나가야 할 것인가? 큰 틀에서 이상적인 것은 평화입니다. 이상적인 평화, 폭력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과정이지요.

평화라는 개념은 하나로 굳어진 것이 아니고 다양한 입장이 서로 어울려 나가는 과정, 조화롭게 어울려 가는 과정이고, 그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찬수 교수의 인터뷰를 마치고 글을 정리하는 동안 경향신문에 《평화와 평화들》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문화인류학 박사이자 독일 막스플랑크 종교와 민족다양성연구원 선임연구원 정진헌 씨가 쓴 글이었다.

그는 “이 책은 어렵고 복잡한 기존 개념들을 단순히 정리한 것이 아니다. 저자의 철학, 신학, 사회과학 분야의 넓은 지식과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인류애적 감성이 어우러져,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빚어낸 창의적 저서라 불릴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쯤 되면 《평화와 평화들》을 다시 안 들여다볼 수가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시 손에 쥔 《평화와 평화들》. 한 손에 가볍게 잡히는 책. 평화라는 멀고도 가까운 길을 가면서 가방 안에 쏙 넣어가지고 다니기 딱 좋은 사이즈와 볼륨의 책이었다.




※ 이 글의 원문은 《"평화교실" 총서 기획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이찬수 교수》(네이버 블로그 아날로그 노스탤지어)입니다.

필자와의 제휴를 통해 본 사이트에 편집·게재하였습니다.


원문 : http://blog.naver.com/rosa415/220737656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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