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신인간> 760호(2014년 1월호) 개벽의 북소리를 보완한 것입니다.
교령님은 신년사에서 다시 한 번 ‘기본 충실’ ‘소통 강화’ ‘미래 준비’라는, 취임 당시 내세웠던 교단 운영 기본 방침을 강조하였다.
‘기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거나 근본을 고수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 위에서 천변만화(千變萬化)가 펼쳐지는 토대를 맑고 새롭고 간단하고 깨끗하게[淸新簡潔]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개벽(開闢)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소통은 각자위심에서 동귀일체로 나아가고, 마침내는 오심즉여심에 이르는 천지의 상도(常道)이다. ‘나와 너’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이 소통의 출발점이다. 서로를 기꺼이 이해해 마지않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소통이 생생(生生)하는 전개 과정이다. 소통의 궁극은 인오동포(人吾同胞) 물오동포(物吾同胞)의 경지에서 ‘사이(之間)’를 살리고 모시는 일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비현실적, 비현재적 시공간을 위하여 현재의 삶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여기에 갇힌 나를 종적(시간적), 횡적(공간적)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기본과 소통과 미래는 순차적으로 추구하거나 구현되는 가치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관계에 놓여 있다. 지난 한 해 총부는 부지불식간에 관행이 된, 불합리한 교단 운용의 여러 절차를 체계화, 간소화하고 개편하였다. 또 많은 규정이 신설되거나 개정되었다. 이는 올해 이후에도 계속되고 일상화되어야 할 것이다. 소통과 미래 준비 또한 그 씨앗은 뿌려졌다.
올해 갑오년은 그 셋 가운데 특히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고 교단의 운영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소통의 확장과 강화를 위한 많은 시도들을, 안정적으로 뿌리 내리고, 꽃피워 나가야 한다.
천도교의 형편을 돌아보면 ‘소통의 양적 확장’이 아직은 최우선 과제인 듯하다. 총부와 교구 및 교인,교구와 교인, 교인과 교인 사이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총부에서 생산되는 정보들이 좀 더 빨리 그리고 체계적으로 교구와 교인들에게 전달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천도교의 실체는 고정된 객체가 아니라 총부와 교구, 교구와 교인, 교인과 교인 '사이'에 있음을 통찰한다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다. 이치는 망망한 사이[茫茫之間]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필요만을 강조한다고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소통의 양적 확장은 겨우 출발점이다.서로의 형편과 요구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소통할 ‘거리’가 없으므로, 한두 마디 안부를 묻고 나면 얼굴만 쳐다보며 웃고 있어야 한다. 관심은 정보 소통만으로는 온전히 형성될 수 없다.
총부와 교구 및 교인, 교구와 교인, 교인과 교인이라는 소통의 주체들 사이에 자주 만나고 몸으로 부대끼는 자리가 더욱 많아져야 한다. 총부-교구-교인의 종적 소통과 더불어 총부나 교구 내의 각종 단체와의 횡적 소통은 산적한 과제가 더 많아 보인다.
끝으로 교회와 사회와의 소통은 포덕천하(布德天下)라고 하는 천도교의 목적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지난 연말 전국적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안녕하십니까?’ 묻고, ‘안녕하지 못함’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이는 현재 '소통'이 당면한 국가적 차원의 과제인 사정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대자보'라는 형식에 국한하지 않는다면, 올해도 '안녕'을 묻고 답하는 '소통민회'는 집단지성적으로 확장될 것이다.
올해가 갑오년이라는 점에서, '안녕' 열풍은 120년 전 계사년(1893) 광화문 복합상소와 보은취회처럼 불통(不通)의 정치경제, 사회문화적 권력을 향한 ‘민(民)의 최후의 통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모바일 기기의 발달로 폭발적으로 증대된 소통의 홍수 속에서 정치사회적인 거대한 불통의 영역이 역설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소통은 정치나 사회적인 문제 이전에 ‘삶’의 문제이다. 그래서 포덕 155년, 120년 만의 갑오년에 천도교단이 사회적 소통의 키워드로 삼은 것은 ‘봉사’이다. 천도교의 봉사는 ‘내가 나를 위하는 것’이다. 소통은 '발화'가 아님은 물론 정보의 소통이 아니라 '실천궁행'의 축적이다.
가야 할 길이 멀다. 그러나 우리는 태생이 한울길(天道) 위의 사람들이니 두려워할 것도, 힘겨워할 일도 없다.
'칼럼과 논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하는사람들(1)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0) | 2014.02.09 |
---|---|
동학농민혁명120주년을 준비하는 출발점 (0) | 2014.01.14 |
동학출판과 동학공부 (0) | 2014.01.12 |
인문 종교학을 위한 시론 (0) | 2014.01.07 |
천도교 남북 교류 협력사 (0) | 2014.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