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 이 책은…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그의 시골집에서 동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읍내를 넘어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도시의 아스팔트,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중국과 남미에 이르는 해외까지 삶의 현장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사람과 더불어 일하고, 세상을 살리는 ‘농사 너머의 농사’를 통해 내 마음의 행방을 알아채고, 내 마음 농사를 짓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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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글 쓰는 농부, 마음 농사를 짓다!!
농사, 농업, 농부, 농촌
한때 ‘아스팔트농사’가 유행이었다. 쌀이나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위해, 농민들이 서울로 몰려와 아스팔트를 점거(?)하고 투쟁을 벌인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쌀농사가 오래되었다지만, 그에 못지않은 건 ‘자식농사’다. 전통적인 의미야 어쨌건 간에, 지금으로서는 자식들이 정의롭고 자주적이며 행복한 삶을 산다면,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겠다. ‘도시농업’이라는 말이 생긴 지도 오래 되었으니, 도시농부가 있는 건 당연하다. 초기에는 ‘텃밭’ 등에 한정되었으나, 이제 생물 다양성 보전, 기후조절, 대기정화, 토양보전, 공동체문화, 정서함양, 여가지원, 교육, 복지 등의 다원적 가치를 도시에서 구현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농업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었다.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
이러저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란 단지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농촌에 사는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오고, 도시 삶에 찌든 사람들이 귀농하는 것만이 농사 문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어느 경우든 농사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를 가리키는 속 깊은 뜻을 가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농사란 기르는 일이다. 씨앗을 심고서 기다리는 일이다. 비를 기다리고,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며 그것들을 모시는 일이다. 기르는 것, 기다리는 것이 시간을 따라 흘러가되, 그것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 농사다. 그 정성들임을 일컬어 ‘살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모두가 농부, 농부가 하는 일이 모두가 농사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가 된다. 그러므로 농부는 도시에도 있고 농촌에도 있다. 학교에도 있고 병원에도 있고, 촛불광장이나 공장, 바닷바람 드센 배 위에도 농부는 있다. 기르는 사람, 살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정성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농사가 된다. 먹을 것을 기르는 일, 입을 것을 만드는 일, 살 집을 만들고 가꾸는 일, 함께사는 세상,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 모두 농사가 된다.
세상에는 ‘20모작+’을 하는 농부도 있다
오직 내 한 몸으로 지탱하고 경작할 수 있는 농사에 충실한 농부도 있지만, 세상의 심어서 기르고 살리는 정성이 필요한 온갖 일들에 두루 손품과 발품, 하다못해 말품이라도 파는 농부도 적지 않다.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의 저자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바로 그런 경우다. 『똥꽃』을 위시해서 『소농은 혁명이다』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는 ‘글쓰기’와 ‘(작물)농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국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품앗이에 여념이 없다. 그가 간여하는 농사일들을 헤아려 보면, 20모작은 너끈히 되고도 남는다.
도리깨질에서 지구의 미래 걱정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농사 너머의 농사일을 눈에 띄는 대로만 언급해 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마음(영성)수행, 민주화운동 역사증언, 이웃 할머니와 어울리기, 마실 다니기, 농촌 체험 단체손님 안내, 해외 명상 유적 탐방, 귀농과 마음수양 강연, 동네 쓰레기 청소, 환경 친화적 난방(땔감나무), 강아지 분양, 농사 용품 재활용, 친환경 생활여건 조성 공공신고 활동, 촛불시위 참여, 동네 어른들 봉양, 동네사람들, 농부의 시각으로 세상 바라기, 농업 관련 국제행사 참가, 귀농 강연, 시민사회활동, 한울살림 활동, 한울농법 보급, 사회장 장례 치르기, ‘소농혁명운동, 핵전반대 활동, 동학 활동….”
모든 농사는 마음 농사로 통한다
개인적인 활동이든, 긴급한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활동이든 그는 모든 ‘농사현장’에서 단지 당면한 농사일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거리감을 잃지 않고 반성과 조심을 거듭한다. 그 하나하나가 마음 농사짓기이다. 백남기 농부 또는 의로운 한 교장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지나가던 마을에서 우연히 일손을 거들게 된 도리깨 타작마당에 이르기까지, 서울 광화문에서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의 마음 농사짓기는 계속된다. 분명히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서도 그는 관성적으로 사람과 사건을 대한 태도를 스스로 경계한다. 뿐만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에도 그의 마음은 소홀하지 않는다.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체화(體化)되고 심화(心化)되고, 의식화(意識化)되어 있다. 그 눈으로 사람과 만물을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그 마음을 따라 실천하고 살아간다.
성내지 않는 그 마음이 살리는 마음
일이 많다고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늘 챙긴다고 긴장된 삶의 연속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가 스스로 “어떤 조건에서도 긴장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일상. 시골에 살면서 겪는 여러 일화들 중심으로 정리한 글들”(9쪽)을 모았다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농촌의 삶’이 선사하는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며 산다. 이제는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평소에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성을 안 내는 기 고마워. 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205쪽)라고 말한 그대로 그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든, 해학과 풍자 넘치는 마을에서든 웃는 표정과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고, 살리고, 기른다. 그 갈피, 순간마다 그는 ‘나를 알아챈다.’
이야기를 만들다, 기록하다, 노래하다
그러고 보면 농사 중에서도 제일은 마음농사다. 마음농사는 쌀농사나 다른 농사를 뒷자리에 놓는 농사가 아니라, 그것을 모시는 농사다! 마음농사는 그 자체로 살리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요, 마음을 짓는 농사다. 농사를 짓되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는 농사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을 기르는 농사다. 글쓰는 농부 전희식은 그 갈피와 순간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노래한다. 스스로 정의하기를, 그 마음 농사짓기는 모두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음 농사의 시간은 소중하다. 이야기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이 소중한 것은 그곳에 공감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담은 다시 시간을 따라 그 공간(마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야기텃밭이다, 생각의 텃밭이다, 마음의 텃밭이다.
지금 왜 다시 마음 농사인가?
귀농귀촌은 이제 ‘하면 좋은 것’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나는 자연인인다!’ 같은 프로그램이 장년층에게 인기 프로그램으로 고정되는 현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1인당 소득 1000불일 때도, 자식 둘셋은 대학을 다녔는데, 소득 3만 불이 되어서는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들고 50, 60대는 일할 곳이 없는 데 산업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고, 5000만이 넘는 인구에도 ‘출산율’이 안 오른다고 아우성인가. 무엇 때문일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숙고하기보다 여전히 외형의 크기와 성장 신화에 매여 있는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이지 않은가.
■ 책 속으로
● 명상을 마치고 열이틀 만에 내 휴대전화와 책, 필기도구를 돌려받고 든 생각은, 평소에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참 많이 하며 산다는 것이었다. (중략) 감각에 매이지 않고 단지 바라볼 수 있는 힘, 그 힘을 기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닥친 일을 바르고 조화롭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14-16쪽>
●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곳에서 일하는 그 후배는 늘 긴장이 연속되는 상황에 있었고 긴장은 사건과 사고를 유발했다. 악순환이었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오르내렸다. 그에게 ‘요란스럽게 반겨 주는 놀이’를 제안했다. 사소한 일들에도 한꺼번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놀이 시간’을 가져 보라고 했다. 특별한 조건이 없이 해 보라고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37쪽>
● 지난겨울은 추위가 유난히 심해서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고들 하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우리 집 난방비는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중략) 보일러가 없다. 전기장판도 안 쓴다. 대신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덥힌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스위치만 건드리면 난방이 되는 게 아니고, 몸 노동이 필요하다. 나무를 해 와야 하고 (중략) 우리 집에 와서 며칠 지냈던 친구는 이를 두고 ‘참으로 신성한 일용할 노동’이라고 찬탄을 했다. <44-45쪽>
● (겨울나무는) 추위가 몰려오는데도 껴입지 않고 도리어 한 꺼풀씩 벗는다. 엄한 겨울을 견뎌야 할 자연의 겨울 채비는 실은 봄 채비다. 꽃 피울 새봄을 위해 벗고 버리는 것이다. 비상시국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자연의 가르침이다. <68쪽>
● 도리깨질은 칼질 노련한 외과의사 못지않은 정교한 타격이 요구된다. 한 마당만 두드려 주고 가리라 했는데 순애 씨의 입꼬리가 양 귀에 걸린 모습을 보고 한 마당만 더 인심을 쓴다는 게 들깨 다발이 한마당 거리만 남게 되었다. (중략) 내가 도리깨를 내려놓았을 때는 타작마당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74-75쪽>
● 한바탕(도리깨질)을 끝내고 콩대를 뒤집다가 보니 할머니 한 분이 저쪽에 주저앉아 훌쩍훌쩍 울고 계셨다. 사연이 기가 막혔다. 예순셋인 둘째 딸이 치매가 걸려서 친정으로 데려와 같이 살았는데,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지난주에 요양원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중략) 할머니 연세는 여든여섯이었다. <99쪽>
● (우체부는) 책이나 다른 물건을 택배로 부치면서 요금을 드리면 다음 날 작은 비닐봉지에 영수증과 함께 잔돈을 꼭 챙겨서 가져온다. (중략) 우체부가 우체국에 돌아가서 정산을 할 때 내가 드린 요금이 모자라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고 영수증만 편지나 신문지 사이에 끼워서 대문 밖 우체통에 놓고 간다. 바빠서 그렇단다. 잔돈을 갖다 줄 때는 꼭 집으로 들어오는데 말이다. <106-107쪽>
● ‘살림’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가정의 씀씀이를 지혜롭게 하는 슬기를 말하는 것이 첫째요, 죽음의 반대로서의 의미가 둘째입니다. 여기서는 한울님을 모시고 한울님으로서의 체통과 위신과 권위와 품위를 지니고 더욱 활기찬 생활을 엮어 간다는 뜻으로 썼습니다. <130-131쪽>
● 25년여 전, 야마기시 공동체에 가서 했던 감사 기도가 인상적이어서 한동안은 그렇게 했다. 종교인들이 뻔한 언설을 건성으로 하는 그런 감사가 아니다. 밥상 위에 있는 음식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중략) 이렇게 먹으면 잘 먹는 것이다. <154쪽>
● 내가 『소농은 혁명이다』(2017, 모시는사람들)에 실린 ‘소농, 이것이 진짜 혁명이다’라는 글을 쓴 때가 2012년 6월이다. (중략) 소농은 삶의 방식이자 철학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도시와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소농적 삶’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혁명이라는 단어가 굴러다니는 폐지만큼도 취급되지 않던 때에 이 글에서 굳이 혁명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생활 전환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79-180쪽>
● 자연재배와 유기재배, 일반 화학농사로 지은 당근과 오이, 무 세 개씩을 가지고 부패 실험을 한 기사다. (중략) 놀라운 것은 4년이 지났는데도 자연재배 무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그 힘이 어디에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자연을 속이지 않고 자연의 흐름대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정직했다는 말도 된다. <183쪽>
● 소농의 혁명성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특이점’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중략) 특이점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생관은 물론 삶을 대하는 안목이 전면적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특이점 현상은 시작되었고 가속도가 붙었다고 할 것이다. 새로운 인간 윤리가 등장하고 있으며 로봇 윤리까지 다루어진다. ‘전혀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중략) 농촌과 농업은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물결에 떠밀리는 조각배처럼 한 사람의 농부를 그냥 그 자리에 놔두지 않는다. (중략) (중략) 소농의 반대는 대농이 아니다. (중략) 나는 경영농이 소농의 반대 개념이라고 본다. (중략) 자립농·자급농이 소농의 첫 번째 개념이다. ‘혁명’이 아니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삶의 설정이다. (중략) 과학기술의 발전을 한 갈래로 한다면, 다른 갈래는 생태 가치와 자연순환적 삶을 지향해 가는 것이다. 후자인 소농적 삶이야말로 위기 문명의 피양처가 될 것이다. (중략) 공동체 마을 구조를 가지면서 신농업 문명사회를 열어 갈 것으로 보인다. <187-193쪽>
● 마음을 잘 써 보라.’거나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것이 다 생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생각과 마음은 동일체로서 머물기도 하고 나뉘기도 한다.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도 산란된다. 때로는 다양한 생각이 마음을 추스르게 하기도 한다. <195쪽>
● (나는) 생명운동은 살림운동으로, 평화운동은 모심운동으로 도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동안의 민중운동이 자 유를 넘어 평등으로, 민족과 민주를 넘어 생명과 평화에 도달했다면, 이제는 살림과 모심의 운동이 후천개벽의 열쇠말...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중략) 심고는 ... 내가 한울님을 늘 선포하는 행위다. 나를 당당하게 만천하에 한 점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행위다. 입속말로 하기보다는 소리 내어 하는 것이 좋다. ... 심고는 또 다른 커다란 혁명적 뜻을 지닌다. 내 삶을 내 의지로 이끈다는 것이다. (중략) 심고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뜻은 더욱 가지런해진다. ... 나를 잘 보이게 드러내는 것이 심고이므로 나를 보는 사람들은 의심이 없다. 불안이 없다. 평화가 바로 이것이다. <197-200쪽>
● “마음이 기쁘고 즐겁지 않다면 하늘인들 감응할쏘냐[心不喜樂天不感應].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하늘이 감응한다[心常喜樂 天常感應].”고 했다. 공손한 태도도, 온화한 미소도 다 내가 즐겁고 기뻐야 한다.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상대와 공감을 이뤄야 가능한 일이다. 속으로는 괴롭지만 겉으로만 꾸며 짓는 웃음과 친절은 하늘이 감응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짜증을 내도, 한탄을 해도 나는 활짝 웃는다. <205쪽>
● 인간 의식 차원의 성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촛불집회가 지금은 정권을 향해 지적하고 규탄하고 요구하고 훈육하는 식이지만 이를 넘어서는 과제를 봐야 한다. 지금은 박근혜 퇴진만 요구하면 너나없이 과오가 면탈되는 식이다. (중략)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차단당한다. (중략) 이 점에서 바로 ‘광장에 선 종교’의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218-219쪽>
● 저는 스스로 해답이 되지 못하는 많은 진보 활동가들을 봅니다. 진보 인사, 진보적 지식인들을 봅니다. 그들의 머리에 든 대답은 대개 옳아 보입니다만, 그들의 말과 글은 나무랄 데 없이 옳습니다만, 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보입니다만, 그들 자신이 해답은 아니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우리 자신이 진보 그 자체여야 할 것입니다. <236쪽>
● 이런 상상을 해 보자. 최저임금을 지금보다 두세 배 올린다. 고등학교 졸업자가 직업학교 2년 정도 다니고 현장 경력 2년 쌓으면 대졸 초임과 같은 월급을 준다. 이후 승진에서도 불리하지 않고. 최저임금제뿐 아니라 최고임금제(소득상한제)를 정해서 대기업 회장도 월급이 최저임금의 20배를 넘지 않게 해서 초과 금액은 80% 정도 세금으로 걷는다. (중략) 이 정도만 되어도 입시지옥과 시험만 보기 위한 공부는 사라질 것이다.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이 뭔지 제대로 맛보게 될 것이다. 세계 최고인 청소년 자살률은 뚝 떨어질 것이고 평균 출산율은 올라갈 것이다. 학원과 야간자율학습 교실에서 해방된 청소년들이 세상의 활력을 북돋울 것이다. <238쪽>
● 농촌의 교통사고는 피해가 치명적이다. 경찰청 자료를 보면 통계 수치에서도 드러난다.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은 100건당 2.4명인 데 비해 농기계 사고 사망률은 8.5배나 높은 20.4명이다.(중략) 우선 급한 대로 도로교통법 제 12조의 2 ‘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 사항에 농촌도로 중 인도가 없는 곳을 지정하면 어떨까 싶다. 그렇게 해 놓고 과속을 엄격히 단속하는 것이다. 농촌에도 사람이 산다. <248쪽>
● 농촌에 거대한 시설농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중략) 농사의 역사는 길게는 9천 년 이상 된다. 요즘 하는 주류 농법은 50년이 채 안 된 것이니 관행농업이라 부르기보다는 화학농업, 화공농업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중략) 약들에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의 건강을 저당 잡히는 꼴이다. <252쪽>
● 내가 이해하는 생태와 환경은 자연물에만 해당되지 않고 사람 관계와 마음 씀씀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감정과 느낌에도 생태원리가 적용되었으면 한다.(중략) 생태 관계는 순환이 그 본령이다. 막히지 않고 잘 통한다는 것은 대자유의 다른 표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밥이 되는 관계라고나 할까? <266쪽>
● 도시가 문제지 시골이 미세 먼지 발생에 책임이 있냐고 할지 모른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니 오늘날 비닐 쓰레기 대란, 미세 먼지 경보, 기상이변 경고를 겪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기는 시골이건 도시건 경계가 없다. 네 탓 내 탓 공방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중략) 육식 문화를 그대로 둔 채 추진하는 동물복지농장 정책은 실패한다. 우리나라처럼 국토가 좁아 농지가 제한된 경우에는 동물복지농장은 한계가 있고, 육식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밀집 축산은 숙명이다. (중략) 그곳에는 ‘생명’이 아니고 ‘축산물’이 있을 뿐이었다 <279-285쪽>
● 촛불혁명은 다양한 형태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를 넘어 세계로 번져 갈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과 3·1만세운동, 광주민주화운동과 6, 7, 8월 항쟁이 그랬듯이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혁명을 꿈꿔 보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인 혁명, 온전한 혁명, 행복한 혁명을. 이제는 마지막 혁명을 기획해도 되는 때가 아닐까. <289-290쪽>
● 수시로 친구가 올린 글이 어디에 있다고 알려 주는 페북의 친절, 검색어만 치면 연결되는 관계망, 공짜로 문자와 동영상까지 주고받는 페북 메신저. 이 역시 공짜 점심이다. 수상한 무료라는 얘기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는 친절의 저의가 엉뚱한 곳에 숨어 있음을 암시한다. 페북이 끊임없이 위치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 이것이다. (중략) 내가 공짜라서 물 쓰듯 쓰는 단체문자와 단체 카톡방, 텔레그램, 페이스북에 올리는 사진과 글들은 포털 사이트가 빅데이터로 수집·분류·가공하여 사기업이나 광고사, 정부에 팔아먹는다. <301-304쪽>
● 아무리 제도가 좋아도 그 제도의 운영 주체이자 향유자인 사람의 의식과 도덕적 수준이 그에 따르지 못하면 어느 한쪽이 붕괴하는 사례는 역사에 무수하다. 농민기본소득제 논의 과정에서 돈의 가치보다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농민 집단이 등장해야 할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제 논의를 주도하고 실현해 내는 주체가 농민이어야 한다. (중략) 기본소득제 운동은 한국 사회 내부에 계급간,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성별간에 견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다양한 층위의 내부 식민지를 해방하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도입은 ‘돈벌이 노동 사회’를 ‘필요 노동 사회’로 바꾸어 가는 지렛대가 될 것이다. <310쪽>
■ 차례
제1부 ………… 농부, 마실을 나가다
나를 알아채는 시간
30년 저 너머에
황금 개띠라고 하는데
나에 대한 믿음의 과잉 사태
단순하게 살기와 잡동사니
술과 헤어진 뒤
야단스럽게 반기기
백중 풀베기
오늘도 역시나 피난 보따리
난방비 제로와 노동의 다양성
상류 사람의 도덕적 의무
개장수 노릇
내가 만든 송곳 하나
들깨와 참새 그리고 가로등
산과 들판은 겨울 채비로 바쁘다
내 식으로 차레 지내기
우리 동네 순애 씨
밥상 앞에서의 신미란다 원칙
믿음의 조건과 유효기간
밑그림이 없는 사람
제2부 ………… 농부, 더불어 살다
막상막하 연극놀이
할머니와의 약속
‘노인의 날’은 언제인가?
눈 오는 날의 우편배달부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빛나는 졸업장
동북아시아 농민들
자연농법과 한울살림
잘 먹는다는 게 뭘까
고속도로 공짜 뒷담화
참 스승의 길을 간 김인봉 교장선생님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게 된 현실
동학으로 새로 짜는 모심의 삶
제3부 ………… 농부, 세상 속으로 가다
촛불광장에 서서
동학농민군과 세월호 참사
잠들지 못하는 영혼
영덕의 핵전 막기
‘진보’의 신개념
꿈같은 상상
재생에너지는 영원한가?
자제된 힘
농촌 도로에는 왜 인도가 없을까?
정의로운 음식과 정의로운 사람
공동체에서 조화롭게 살기
경고? 부탁? 협박? 고백의 언어
사람이면 다야?
밥상을 점령한 유전자조작식품
나도 가해자다
살충제 달걀, 육식 문화가 문제다
‘혁명’과 ‘깨달음’
북핵 운전석 앉으려면 미국 움직여야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중단해 주십시오”
상업성 친절의 뿌리, 공짜 점심은 없다
농민기본소득, 또 말하기 입 아프다
‘가빠 농법’으로 풀 관리하기
■ 저자 소개
전희식
글 쓰는 농부, 생태영성운동가.
1958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도시에 살다가 1994년부터 전라북도 완주, 2006년부터 장수에서 농사짓고 산다. 농민단체와 생명평화단체, 채식과 명상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똥꽃』(2008, 그물코), 『땅살림 시골살이』(2011, 삶이보이는창), 『시골집 고쳐살기』(2011, 들녘), 『아름다운 후퇴』(2012, 자리), 『하늘이의 시골일기』(2013, 그레이트북스), 『소농은 혁명이다』(2016, 모시는사람들),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2016, 한살림), 『옛 농사 이야기』(2017, 들녘) 등이 있다.
■ 추천사
그의 발길 따라 글맛이 다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를 닮은 입담이 세태를 밝히기도 하고, 질긴 실사구시의 쓴소리가 영성 회복을 일구기도 한다. 줄기차게 자기성찰하며 발품 파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땀내가 향기로 퍼지기를 바란다. 틈날 때마다 맨발걸음하는 그가 맘 편히 디딜 곳이 많도록. - 김유경(예술평론가, 자유기고가)
온전한 존재로 성장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고 살리는’ 일상의 삶을 엮은 선생의 글은 읽는 재미와 독서하며 얻는 성찰도 크다. 삶을 수행처럼, 수행을 삶으로 행하며 얻은 통찰 덕분에 하루하루가 신비의 연속이고 매 순간이 신성함을 깨달으니 어찌 感於物 謝於心(감사)하지 않으리. 행함은 부족하고 말만 많은 시대. 行으로 마음 길 내는 힘을 선생에게서 받아 모신다. - 최현미(중학교 교사,『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공동 저자)
저자는 묻는다. 먹고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내 돈벌이는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이야기를 엮었다. 나도 살고, 농사도 살고, 땅도 살고 그래서 지구도 살 수 있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지혜가 아름답고 즐겁다. - 강성미(사단법인 유기농문화센터 원장)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게다.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 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다. - 윤덕현(다큐멘터리 감독,『가슴의 대화』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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