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의 재해석과 신문명의 모색
■ 이 책은…
이 책은 다섯 명의 학자가 “회심, 소통, 공동체, 생태, 영성”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학과 서양의 여러 사상적 맥락을 교차시켜 가며 재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신문명을 모색하는 작업을 담아냈다. 동학을 한쪽 축에 놓고 그리스도교(회심), 신비주의(소통), 사회주의(공동체), 토마스 베리(생태), 인도의 오르빈드(영성) 등을 배치하여 두 사상의 접점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상호 이해와 내적 심화-확장을 통한 창조적 재해석이 일어난다. 이들 동학과 서학의 만남과 그로부터 파생한 제 사상은 수세기에 걸친 세계사의 갈등과 격변을 야기하는 과정과도 맞물린 것으로, 오늘의 세계가 새로운 지구적-인류적 과제에 직면한 상황에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실행해야 하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
- 분야 : 철학
- 저자 : 김용해, 김용휘, 성해영, 정혜정, 조성환
- 발행일 : 2021년 5월 31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288쪽 (두께 14mm)
- 제책 : 무선
- 판형 : 140×210mm
- ISBN : 979-11-6629-040-4 (03100)
동학 - 회심, 소통, 공동체, 생태, 영성 - 신문명
동학과 서학의 대화로 열어내는 하늘학(天學) 세계
■ 출판사 서평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서세동점, 지구적 위기의 근본 원인
최근 2, 3백년 남짓한 (길게는 500년) 세계 근대 역사는 서구 문명의 폭력적 확장 과정이 그 이외 각 지역의 고유한, 자주적인 역사 흐름을 압도하였던 시기이다. 19세기의 조선 또한 이러한 서구 문명의 폭력적 내도(來到)에 대응하여 기존의 성리학 기반 체제를 수호하거나(守舊派), 서기동도(西器東道)의 실용적 대처를 모색하거나(實學派), 혹은 서학 천주교를 수용하고 재해석하고(親西派), 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하기도 하였다(開化派). 이런 가운데 세계 문명을 조망하면서, 당대의 변화가 조선에 국한된 것이 아닌 문명사적 대전환의 일각임을 간파하고 대안적 종교-사상-철학운동을 펼친 세력이 있는데 이것이 ‘다시개벽’을 표방한 동학이다(開闢派).
동학은 그 시대의 주류 종교 또는 세력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에, 그리고 어쩌면 인류 역사 이래 대대로 고통 받고 소외받아 온 이들의 고통과 희망으로부터 자생하면서 그보다 더 밑층, 자기 문화의 가장 심층에 있는 잠재력으로부터 싹튼 영성운동이다. 동학은 한편으로 서구로부터 연원하였으나 당대 민중들의 일각에서 신앙으로 수용하고 죽음으로써 지켜 나온 서학(西學)과 짝을 이룬다. 조선 민중들의 영성은 제국주의와 더불어 동점해 오는 서학(천주교)마저 개벽적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다시 말해 조선 사회가 서세의 동점과 내부 질서의 와해라는 이중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민중들은 궁극자이고 보편자인 하늘을 지향하여, 현실의 질곡을 일거에 도약적으로 극복하는 천도(天道)의 선포로 나아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더욱 빛나듯이 위기와 고통 속에서 한울님(天主)의 현존은 더욱 뚜렷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다시 1.5세기 혹은 2세기가 지난 오늘의 한반도는 지구 전역적인 위기가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고 뚜렷해지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 위기의 시간은 지난 2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인류사의 주도적인 흐름이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오래된 미래의 지혜, 하늘학(天學)으로서 동학과 서학의 대화
중요한 것은 오늘 한국인은 물론 인류 전체가 직면한 문제들이 하나의 전통, 하나의 문화, 하나의 종교 비전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다원주의적, 전 지구적 문제라는 점이다. 이는 2세기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우리가’, ‘우리만이’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갖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 호도되고 감추어졌다면 오늘의 문제, 즉 지구열화, 핵전쟁 위협,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고삐 풀린 자본의 횡포 같은 문제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을 만큼 그 심각성이 도드라지고, 명명백백하여, 이에 대하여 다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에 없던 새로운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역사, 오늘의 지구적 문제가 처음 시작하던 시기에 원천적으로 이 문제의 대안이 제시되던 그때의 지혜를 다시 주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해답은 문제 속에 이미 주어져 있고, 문제의 문제점은 그 출발점에서 가장 잘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희망을 줄 ‘새로운 문명’을 모색해 온 저자들은 오래된 미래의 지혜로서 동학을 위시한 개벽적 담론들을 논찬하면서, 한국인들의 고유한 사상과 지혜들을 관통하는 알갱이가 곧 ‘하늘’임을 새삼 스럽게 발견하게 되었다. 하늘은 어원적으로 우리 민족의 이름인 ‘한’과 일치한다. ‘한’은 하나, 전체, 위대함, 대략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서 ‘한울(한우리)→하눌→하늘’은 자연스레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형상을 담고 있다. 이 한을 매개로 할 때 동학과 서학은 쉽게 만나 소통할 수 있으며 과거와 현재, 남과 여, 인간과 비(非)인간도 스스럼없이 서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의 뜻(天命)을 찾아 자연과 세계(地)와 조화하고 완성하는 인간학(人)이니 이는 다름아닌 하늘학(天學)인 것이다.
하늘학으로 그려내는 미래, 미래의 현재화 - 하늘학
하늘학은 “하늘을 모든 존재자를 창조하고 각각의 존재자의 본성을 완성하는 인격신으로 혹은 근원적 원리로 삼는 사상 또는 종교가 자신들의 하늘-자연생태-인간 삼자 간의 경험과 의미 체계를 공유하고 토론하여 인류의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하늘학은 정태적인 관점과 동태적 관점을 아울러서 인간과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다룬다. 개체와 전체, 정체성과 관계성, 의식과 무의식, 주체와 객체, 정치와 종교, 개성과 공공성이 대립하고 분열하여 서로를 배제하는 문화를 극복할 대안으로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지평을 모색한다. 이것이 서구의 근(현)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을 해소하는 지평이라 생각한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종교적 믿음을 분리하고, 인식 주체의 이성(과학)만을 절대화하는 근(현)대성과 주객 이분법, 도구적 이성에 의한 세계의 사물화, 과학과 기술의 이면의 파괴성이 오늘의 ‘괴물 지구’를 낳았다. 이에 대한 반발로 이성을 해체하려고 봉두난발이 되도록 뛰어다니던 포스트모더니즘을 화해시키는 것, 다시 말해 주체의 강조와 주체의 해체를 통합하는 것은 서구 문명의 한계-과제를 해소하는, 그들의 아픈 심신을 달래고 치유하여 행복한 미래 세계로 인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오늘, ‘동아시아-한국’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러한 ‘서구 문명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독을 농축된 형태로 체화한 것이 우리이다.
한민족의 지혜를 담고 있는 하늘학은 어떤 비방으로서 그 독(毒)을 해소하고, 아니 그 독(毒)마저 약으로 승화시키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이 책에서 답하려는 물음이다. 하늘학은 하나의 종교문화, 하나의 비전으로 환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교문화와 여러 비전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가치를 모색하는 가운데, 다양한 개성과 전통, 사상과 강조점을 존중하며 현대 세계의 문제를 해소하는 공론장이 될 것이다.
■ 차례
회심/김용해
회심이 왜 중요한가?―동학 천도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1. 서언: 회심과 시대정신
2. 종교와 회심
3. 회심 여정의 전제조건들
4. 회심의 동인(動因): 초월과 은총
5. 결언: 동귀일체를 향한 회심
소통/성해영
인간 내면에서 찾은 소통의 근거―동학의 신비주의적 보편성과 윤리성
1. 서언: 소통과 공존의 근거를 찾아서
2. 수운 최제우와 동학, 그리고 종교적 돌파구의 모색
3. 수운 최제우의 종교적 해답
4. 수운의 종교적 보편주의와 종교 다원주의
5. 결언: 인간 내면에서 찾는 역설적 중심
공동체/정혜정
동학의 신문화운동과 공동체론―서구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1. 서언: 인류의 위기와 자본주의
2. 중국 신문화운동 통찰과 조선 신문화수립의 방안
3. 이동곡의 조선 신문화건설론과 서구 문예부흥운동
4. 이창림의 동양 신문화수립과 한살림 공동체
5. 결언: 인내천의 사상혁명과 한살림 공동체
생태/조성환
생태문명에 관한 동서양의 대화―토마스 베리와 해월 최시형을 중심으로
1. 서언: 관점의 개벽
2. 현대인의 우주상실과 지구소외
3. 토마스 베리의 지구인문학
4. 해월 최시형의 생태문명론
5. 결언: 지구를 공경하는 신앙
영성/김용휘
오로빈도와 최제우의 인간 완성과 새로운 문명의 길
1. 서언: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다
2. 스리 오로빈도의 사상과 신문명론
3. 동학과 신문명론
4. 비교: 새로운 문명의 비전과 의식의 진화
5. 결언: 과제와 전망
■ 책 속으로
○ 회심이란 인간의 마음을 한울님(하느님 또는 절대지평)께 돌려 합치시켜 한울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인식과 능력의 한계 속에서도 자신이 관계 맺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 더 큰 책임을 지려는 내적 결단이자 실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회심의 수행은 의미 내용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교와 동학 천도교에서 핵심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동학 천도교의 비전을 인간의 한울님과의 소통성, 천지인 삼재의 일체성, 모든 존재자의 평등성, 행위 주체로서의 인간의 소명으로 요약하였는데 우리는 이 비전을 관통하는 지향이 곧 회심의 수행임을 이해하게 되었다.<본문 63쪽>
○ 수운의 종교적 해답은 다음에서 살펴볼 세 가지 구체적인 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보편주의적 진리관이다. 수운은 동서양의 모든 문명이 동일한 천도(天道)를 소유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동일한 천도가 시공의 맥락에 부합하도록 각기 다르게 표현된 것이 동서양의 다양한 종교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둘째, 개인 체험에 근거한 신비주의의 강조이다. 수운에 따르면 보편적 천도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우리 모두는 어느 문명에 속해 있든지 간에 동일한 천도에 가 닿을 수 있는 존귀함을 태생적으로 가진 존재이다. 셋째, 실천적 윤리의 강조이다. 수운은 각자가 자신의 내면에서 체득한 보편적인 천도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본문 77쪽>
○ 수운이 품었던 꿈은 비록 현실에서 좌절되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통찰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종교의 다름이 빚어내는 갈등과 긴장을 경험 중이며, 종교가 더욱 전면적으로 만나게 될 미래에 불협화음은 커질 위험이 있다. 그러니 수운의 종교적 보편주의는 매력적이다. 또 그가 종교의 제도화된 형식이 아닌, 인간 종교성의 근원에 가 닿으려 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무종교의 종교(religion of no religion)’나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과 같은 표현이 암시하듯, 제도 종교 밖에서 인간의 종교성을 발견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된 상황에서 수운의 가르침은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할 수 있다.<본문 117쪽>
○ 이창림은 동학을 “민중의 철학”으로 규정했다. 일찍이 수운 최제우는 ‘새로운 세상의 개벽(新世開闢)’을 창도하여 조선민중뿐만 아니라 장차 세계 민중에까지 계급해방운동의 길을 개척하는 민중철학을 전개하였다는 것이다. 동학은 사회의 부패, 혼돈, 암흑 속에서 죽어 가는 모든 민중에게 「새 세상은 다 잘 살아보자」고 외치는 고함소리로 계급투쟁의 전선에 나서서 갑오동학농민혁명(1894), 갑진개화운동(1904), 3·1운동(1919)의 대 풍운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민중운동과 계급해방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갔던 것이 동학이다.<본문 160쪽>
○ 동학을 사상적 차원에서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단순히 외세에 대한 ‘항거’나 정치적 ‘혁명’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동학이 표방한 ‘개벽’은 보다 큰 ‘문명전환’의 차원을 말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개벽’이라는 말 자체가 ‘시대의 전환’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개벽을 표방한 동학을 ‘한국적 근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modern’의 번역어로서의 ‘근대’에는 ‘새로운 시대’라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이때의 ‘근대’가 서구 유럽이 추구한 ‘근대’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동학농민혁명이 ‘척왜양’을 외쳤다면, 오히려 동학이 지향한 근대는 그것과는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리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본문 208쪽>
○ 크게 볼 때 동학과 오로빈도 사상의 공통점은 그 문제의식에서 서양의 충격에 대해 단순한 저항이나 무조건적 수용이 아닌, 민중의 입장에서 서양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되, 이미 가지고 있었던 민족의 영성과 지혜를 바탕으로 그것을 재해석함으로써 동서 융합의 통합사상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동서를 넘어선 신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오로빈도의 사례는 지금까지 동학을 일국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하던 시선을 확장시킨다. 즉 동학과 같은 민중적 종교사상 운동이 단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난 사상운동이 아니라, 제3세계 민중들이 당시 제국주의적 세계 질서에 대응해서 일어난 보편적 사상운동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본문 231쪽
○ (동학과 오로빈도) 두 사상은 서양의 충격에 대응하되 민족의 가슴에 면면히 내려오던 고대의 지혜와 영성을 다시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회복함으로써 단순히 서구에 대한 저항이나 협력이 아닌 민중적 차원에서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서양의 이성 중심의 근대문명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성에 바탕한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예감하고 신인간의 길과 새로운 문명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데서 공통점을 가진다.<본문 270쪽>
■ 저자
김용해: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학연구소장, 『신학과 철학』 편집장. 저서로는 『젊은이의 행복학』, 『인간존엄성의 철학』이 있고, 역서로 『일반윤리학』, 『왜 인격들에 대해 말하는가』가 있다.
김용휘: 대구대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방정환배움공동체 구름달 대표. 저서로는 『우리 학문으로서의 동학』, 『최제우의 철학』, 『손병희의 철학』 이 있다.
성해영: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서로는 『수운 최제우의 종교 체험과 신비주의』가 있고, 역서로 『문명 속의 불만』이 있다.
정혜정: 동국대 갈등치유연구소 전문연구원. 저서로는 『동학의 심성론과 마음공부』, 『몸-마음의 현상과 영성적 전환』, 『백년의 변혁: 3·1에서 촛불까지』(공저)가 있고, 역서로 『동학문명론의 주체적 근대성』 등이 있다.
조성환: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교수, 『다시개벽』 편집인. 저서로는 『한국 근대의 탄생』이 있고, 역서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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