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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실미도의 '아이히만'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8. 26. 18:03

"살아남은 실미도 공작원 4명, 그들이 남긴 유언은…"

[인터뷰] 책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을 펴낸 안김정애 박사

김성수

김안정애 박사는 인하대, 한양대, 육사 등에서 정치학, 국제관계론, 여성정치 등을 강의했다. 그는 국방부 과거사위, 1기 진실화해위원회,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 등에서 조사과장과 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실미도 공작원 사형수 암매장지 추적과 미군위안부 피해여성의 명예회복 문제 해결을 위해 당사자들과 연대 중이다.

그는 10여 년 전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필자와 함께 일하던 '직장동료'이기도 하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연구자이자 전문가인 그가 최근에 사건 50주년을 맞아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을 펴냈다.

위키백과는 실미도 사건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실미도 사건은 1971년 8월 23일 실미도에서 북한 침투작전 훈련을 받던 중 가혹한 대우를 견디지 못한 684부대원들이 무장 탈영해 인천을 경유하여 서울로 진입한 후 군·경과 교전을 벌이다가 숨진 사건을 말한다."

과연 실미도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래서 저자인 그와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하여 싣는다.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

- 지난 2003년 영화 <실미도>가 상영되어 천만 이상 관객이 동원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영화를 본 감동이 새롭다. 영화 <실미도>와 실제 실미도 사건의 주요 차이점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당시 모집된 공작원들은 사형수나 무기수가 아니었다. 우리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분단과 전쟁의 후유증인 전쟁고아들, 평범한 소농의 자식들, 소매치기 등 경범죄자들, 곡예사, 요리사 등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실미도 부대 처리 방법 중 '총으로 전멸' 장면이 나오지만 이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그래서 단순한 픽션으로 판단된다. 당시 실미도 교육대장 김순웅(영화에서 안성기 역)은 실제로는 공작원들에게 평이 좋지 않았다. 그의 최후는 영화에서는 자결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공작원들에 의해 피살되었다."

- 책에서 "나 자신이 스스로가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고 했는데 이 의미를 좀 더 부연하여 설명하면?

"'악의 평범성, 진부성'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비극은 악한 사람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의 소름끼치는 침묵', '과거에 대해 눈을 감은 사람은 현재에 대해서도 맹목이 되어 버린다'는 말처럼 나 역시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는 한반도, 그리고 수많은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지구별에 살면서 '내 안의 파시즘' '내 안의 차별주의'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늘 깨어 있겠다는 다짐이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유태인 대학살 과정에서 아이히만 뿐만 아니라 모든 독일 관청과 당국, 즉 모든 공무원들, 장성을 포함한 일반군인들, 사법부, 경제계, 그리고 심지어는 유태인 지도층까지 공범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 역시 공범이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겠다는 다짐이다. 침묵하지 않기, 남의 불행을 못 본 척하지 않기, 연대하기 등을 실천하겠다는 다짐이다."

- 그러면 이 땅에 더 이상의 '아이히만들'이 생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지?

"개인의 생명과 존엄, 존중 의식으로 스스로 깨어 있기. 많이 읽고 쓰고 생각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행동으로 실천하기, 목소리 내기, 침묵하지 않기, 방관자 되지 않기, 연대하기, 주먹으로 벽이라도 치기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성의 시각으로 한반도 근현대사를 재조명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도 했는데 이 의미를 좀 풀어서 밝히면?

"기존의 전쟁사, 분단사, 정치사, 역사서는 주로 남성의 시각으로 쓰여졌다. 그래서 여성은 주체가 되지도 못할뿐더러 늘 피해자, 대상자의 위치에 머물렀다. 여성의 목소리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 여성증언자들의 사건 현장 목격 내용이 더 정교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구조를 보는 한계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조사에서도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주로 남성의 목소리만 기록으로 남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는 동명의 책을 통해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고 외쳤다. 소위 '대 조국 전쟁'에 참전한 벨라루스 여성들이 '나를 숨기고 남편 뒤에 숨어 살아야 했으며', 남편이 가르친 전쟁사를 앵무새처럼 외워서 인터뷰해야 했던 예를 들고 있다. 남성편향의 역사기술과 기록을 바로잡고, 남성의 언어와 문법으로 쓰인 현대사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의 시각에서 다시 쓰는 전쟁사는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을 보듬는 차원에서 '과연 전쟁이 필요한 것인가?'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볼 때 '전쟁은 살인 행위'로, 여성은 생명을 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는 것보다 다른 생명을 죽이는 일이 훨씬 더 가혹한 일이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따라서 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

"이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관련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실미도 부대의 창설, 모집, 사건 발생, 유해 발굴까지를 서술했다. 2부는 해제된 비밀문서인 '실미도 재판기록'에 나와 있는 공작원 4명의 사형집행 관련 1차 문건을 전재했다."

- 실미도 요원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었으며 중앙정보부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요원들을 모집했는가?

"모집관은 공군 정보부대 공작과 소속이며, 처음에 일부 우범지대를 중심으로 대상을 물색하다가 여의치 않자 중정의 지원으로 부산, 광주, 전주, 대구 등의 교도소 재소자를 물색했다. 그러나 법무부의 반대로 난관에 봉착, 시간이 촉박해지자 이들 모집관들은 경기도 파주와 문산, 그리고 대전과 옥천, 서울 인근 등에서 급하게 공작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모집 대상자는 주로 전쟁고아, 무연고자 등이었고, 미군부대, 한국군 첩보부대 인근이나 기지촌 주변에서 살아가는 남성으로 채워졌다. 옥천의 경우 유족들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교 동창인 7명을 급하게 '납치하듯이' 검은 지프 차에 실어 보내기도 했다.
이들은 출신 지역에 따라 서로를 파주패, 옥천패, 대전패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먼저 옥천패는 7명으로 고향 친구들, 학교 동창들이다. 다음은 파주패로 경기 북부지역의 미군부대, KLO부대, 각군 첩보부대 인근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대전패는 대전역 일대에서 모집된 사람들이다."

- 살아남은 실미도 요원들이 사형집행장에서 한 최후유언 중 가슴에 남는 몇 가지가 사례를 소개하면?

"'억울하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웠다', '애들 3남매가 제일 불쌍하다, 보고 싶다'와 같은 말들, 그리고 애국가 부르기, 대한독립 만세 삼창 같은 행동들이다."

"사형수 4명의 유해발굴, 아직도 이행되지 않고 있어"

- 살아남은 4명의 실미도 공작원은 변호인 선임은커녕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군의 불법적·탈법적 비밀재판을 통해 1972년 3월 10일에 사형당했다. 그런데 그 후 국방부가 아직까지도 암매장지를 밝히지 않아 유가족이 유해를 인도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 해산 시 국방부에 권고한 '사형수 4명의 유해발굴 활동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내용이 이행되고 있지 않다. 이유는 사형수 4인의 재판과정이 회유와 협박, 군수사기관의 사건축소 및 은폐, 가족에게 구속사실 및 변호인 선임권 미통지, 재판의 비공개, 항소기각 및 상고 미제기, 사형집행 미통보 및 사체의 미인도 등 불법과 탈법이 만천하에 공개될 것을 꺼리는 국방부의 무책임성 때문이라고 본다.
국방부는 지금도 사형집행 관련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4명의 시신을 벽제에 매장하였으나 98년 대홍수 때 멸실'이라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유족들은 관련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여 특별수사단을 설치하여 '사형수4인의 암매장지 특별수사' 형태로 수사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반세기 전인 1971년 발생한 '실미도 사건'이 오늘을 사는 우리, 특별히 젊은 세대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부당성을 최소한 알아야 하고 풀뿌리들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 재산, 존엄권을 지키는 것이다. 고로 부당함에 대하여 '노(No)!'를 외치고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고 고통 받는 사람들과 연대해야 할 것이다."

- 끝으로 실미도 사건을 조사한 국방부 과거사위에서 조사과장으로 근무할 당시 느꼈던 보람, 성취와 한계는?

"국방부 과거사위의 경우 처음으로 보안사(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문서를 대량으로 입수했다. 각 사건의 실체에 대해 최초로 문서를 통해 실증적 조사를 하는 게 가능했다. 가해자 면담을 통해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실미도 사건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위원회가 법적기구가 아닌 임의기구로서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권고 형태의 위원회 제안은 아직까지 국방부가 실미도사건 사형수 4인의 암매장지를 찾지 않고 다시 진실화해위원회 2기로 넘기는 이유와 변명이 된 것 같아 안타깝다."

*김안정애 박사는 평화여성회(NGO) 대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주요 공저로 <한국전쟁: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한반도의 외국군 주둔사>, <세계화와 여성안보>, <끝나지 않은 국가의 책임: 산청, 함양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이 있다.

<출처: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69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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