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네오클래식 12
천도교의 정치이념
■ 이 책은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한 이념투쟁기, 사상의 춘추전국시대인 해방정국(1945~1950) 시기에 정립된 천도교의 정치이념 서적인 『천도교의 정치이념』, 『당지』, 『천도교청우당론』을 각각 현대어로 편역하였다. 천도교 이념을 바탕으로 정치운동을 전개한 “천도교청우당”의 이론가들이 남북 각지에서 모여 만든 최고의 천도교의 정치 이념서이자 동학의 사상과 진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국가 및 미래사회의 비전을 담고 있으며, 오늘의 시점으로 읽어도 우리 사회가 지향할 새로운 정치 사회 문화 체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동학네오클래식 제12권.
■ 저 자 : 김병제, 이돈화 외 ■ 해 제 : 임형진 ■ 분 야 : 역사 ■ 발행일 : 2015년 3월 31일 ■ 페이지 : 328쪽 ■ 판 형 : 140mm ✕ 210mm (두께 16mm) ■ 가 격 : 15,000원 ■ ISBN : 978-89-97472-97-0 부가기호 04250 ■ ISBN(세트) : 978-89-97472-22-2 부가기호 04250 ■ 문 의 : 02-735-7173 |
천도교청우당, 새로운 국가를 기획하다!
■ 출판사 서평
“사람이 곧 한울이다”와 “사람을 한울님처럼 섬기라”
인내천(人乃天)과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대표되는 동학의 진리와 사상은 한낱 이상적인 종교이념에 불과한 것인가? 역사 이래로 ‘이상향’을 꿈꾸는 종교가 그것을 현실 가운데서 ‘실현’하고자 ‘운동’을 일으키는 경우 대부분의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으로 귀결되곤 했다. 동학의 경우도 1894년 갑오년의 동학농민혁명은 결국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낸 채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사람이 곧 한울’이라는 명제는 한낱 종교적 신념 속에서나 존재하는 도그마에 불과한가? 동학은 훗날 ‘천도교’라는 근대적 교단 종교로 변신하였다. 그러나 그 영육(靈肉)은 여전히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후천개벽’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현실적인 이상주의 철학이며, 그런 점에서 과연 동학의 ‘인내천’ ‘사인여천’ 이념은 어떻게 우리 삶에서 현실화되는지 그 로드맵이 궁금해진다.
이런 점에서 해방정국 시기(1945~1950) 천도교청우당의 정치 활동은 민족 자주의 이상적 통일민주국가를 수립하고, 동학의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구체적인 노력이 표출된 시간과 공간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모든 것이 가능했던 시기 – 해방 정국
1945년 8월 15일,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 공간은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어쩌면 최초이자 최후의 기회의 장이었다. 일제에의 부역자(친일파) 문제를 해결하고(반민특위), 정치이념이 백가쟁명하는 가운데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한반도는 물론, 세계가 겪어 온 근대문명과 역사의 오류들을 적극 참조하는 가운데,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특히, 창도 이래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지상의 과제로 설정하고, 동학농민혁명, 3·1독립운동, 6·10만세운동과 신문화운동, 민족유일당(신간회) 운동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한민족 문명국가 수립을 추구해 왔던 동학(천도교)의 정치운동 지도자들은 이 해방정국에서 그동안의 역사적 경험과 동학사상의 진수를 총망라하여 새로운 국가 건설의 비전을 만들어 냈다.
그것은 단순히 ‘이론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북에서는 김일성이 이끄는 노동당과 유일하게 경쟁할 수 있었던 ‘천도교청우당’의 실질적인 당원 학습 교재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남에서는 당당한 정치단체(政黨)의 일원으로서 미군정 당국에 제출한 건국이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시기
실제의 역사가 그러했듯이, 그러한 기회의 국면은 사실 우리 민족에게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민족진영은 좌와 우는 물론 중도와 그 밖에 수많은 갈래들로 나뉘었고, 외세는 그리고 패전국인 일본조차도 한반도에 독립된 자주적 통일국가가 수립되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적대감, 배타성이 극단적으로 부딪치며 살인과 테러가 난무하던 해방정국이었지만, 공산주의에서부터 자유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이념적 스펙트럼을 모두 반영하면서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기에, 사선을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영도해 온 당시의 이론가, 실천가들은 새로운 국가 건설의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데올로기 대립이 절정에 다달아 있었지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념적이 차원이나 현실적인 차원 모두 최고의 비전을 담아내고자 경쟁했던 이 시기에 나온 이 이념서의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다시, 동학이 꿈꾸는 세상!
당시의 국가 건설 비전은 천도교청우당의 4개 강령에 집약되어 있다.
(1) 민족자주의 이상적 민주국가 건설을 기(期)함 – 신민족주의의 구현
(2) 사인여천의 정신에 맞는 새 윤리 수립을 기함 – 삼경(敬天敬人敬物)의 실현
(3) 동귀일체의 신생활에 터한 신경제 제도 실현을 기함 – 공공시설 및 토지국유화
(4) 국민개로제(國民皆勞制)로서 일상 보국의 철저를 기함 – 일자리 창출, 노동의 신성화
또한 당시 청우당이 제시한 국가 체제 가운데, ‘신민주주의’의 초석으로서의 ‘인민의 권리’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1)법률상 평등 (2)정치 경제 문화 사회 생활 전 영역에 참여권 (3)평등한 선거, 피선거권 (4)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 연구 시위 파업의 자유 (5)신체의 자유 (6)거주와 이전의 자유 (7)서신 비밀의 자유 (8)재산 사유의 권리 (9)육체적 정신적 보호를 받을 권리 (10)초등교육의 국가 부담 (11)청원 소송의 권리
다른 한편으로, 청우당의 건국이념은 ‘민주정치, 민주경제, 민주문화’라는 ‘신삼민주의(新三民主義)’라는 말로도 요약할 수 있는데, 예컨대 민주경제란 생산력 담당자(노동자, 농민)가 생산수단(공장, 토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경계에 구애되지 않는 당시의 이념풍토 속에서, 동학사상의 만민평등주의를 기반으로 제안된 경제이념이다. 물론 이러한 ‘급진적’ 이상주의로 인하여 1948년 이후 천도교청우당은 ‘좌경세력’으로 낙인찍혀 남한/미군적 당국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비운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동학농민혁명(1894)이나 제국주의 체제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피동적 과제 수행을 우선해야 했던 3·1독립운동과 달리 현대적인 실천과 정치의 공간에서 펼쳐낸 동학 천도교(청우당)의 “신분(계급) 타파의 사회질서, 공정배분이 이루어지는 민주적 경제질서, 진정한 문화개벽의 달성, 사인여천의 윤리 구현” 등을 목표로 한 천도교청우당의 정치이념은 ‘오래된 미래로서’ 한반도 통일과 통일 이후 시대의 비전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시사가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 청우당이 생기게 된 의의를 말하자면 ... 당헌 제1조에 “천도교의 주의 목적을 사회적으로 달성코자 이에 시종始終할 동덕으로써 한 개의 유기체를 조직하여 그 명칭을 천도교청우당이라 한다.”고 하였다. ... 첫째, 천도교의 주의 목적 그대로가 당의 주의 목적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적으로 달성코자 한다 함은 현실적·정치적 의미를 표시한 것이다. 셋째, 시종할 동덕으로써 조직한다 함은 천도교인 중에도 특히 천도교의 주의 목적을 사회적·정치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활동 부대만을 재조직한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천도교청우당은 천도교의 전위대, 별동체로서 천도교인 중 정치운동 부대의 재조직이라고 정의하는 바다. 그러므로 청우당은 그 자체 성격이 정치운동을 주로 하는 천도교적 정치단체요, 천도교적 청년운동 기관이 아니다.<본문 47쪽>
▪ 세상에서는 청우당을 좌당左黨이라고도 하고 우당右黨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청우당은 ‘민전(民主主義民族戰線, 左)’에도 가담하지 않고 ‘민의(民主議院=南朝鮮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 右)’에도 참가한 일이 없다. 그것은 결코 배타적 의미로 그런 것은 아니요 우리의 주장인 조선적 신민주주의에 부합되지 않음으로써이다. 그렇다고 우리 당은 추호도 독선적 행동을 취하자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그리고 공정한 의미의 좌우합작과 남북통일을 지성으로 추진하는 동시에 미소공위美蘇共委 속개를 촉진하여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적극 노력하는 바이다. 우리 당의 당시黨是를 이해하는 당이면 우리는 그 우당友黨 됨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본문 77쪽>
▪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의 내각은 새로운 당이 전체 인민 속에서 인민대중과 함께 아무런 구속 없이 공공연하게 정상적으로 당적 활동을 전개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서만 그 진면목을 실증할 수 있는 것이며, 당은 이러한 진정한 민주주의적 기초에 놓임으로써만 진실로 활발하게 자기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민주주의적 기초의 획득은 모든 진정한 진보적인 당, 애국애민하는 당의 공통한 기본적 요구가 되는 것인 동시에 이런 기본 과업의 완수는 그 당이 정상적으로 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한 자기의 사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완전한 당이 되는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다. <본문 151쪽>
▪ 천도교청우당의 사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천도교의 목적을 사회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다. 천도교의 목적은 세상이 다 아는 바와 같이 ‘조선을 진정한 민주주의적 완전 자주독립국가로 부흥·발전시켜 영구한 민족적 번영과 인민적 평등·자유·문명·행복을 실현하는 보국안민’ 및 ‘세계 만국의 정상적 평화와 전 인류의 동귀일체적 최고 행복을 실현하는 지상천국 건설’이다. 그러므로 보국안민은 우리 당의 당면한 실천 과업이 되고 지상천국 건설은 우리 당의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이며, 교와 당의 목적은 결코 둘이 아니요 표리일체의 하나인 것이다.<본문 162쪽>
▪ 천도교청우당은 그 구성원의 인적 기초를 천도교인 가운데 두고 있는 동시에 그 조직의 목표와 사상, 의식 및 실천 행동의 핵심을 모두 천도교의 진리에 두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도교의 인내천 종지와 후천개벽 사상을 사회적 현실 조건에 적응시켜 구체화한 것이 곧 천도교청우당의 목적이 되고 강령이 되며 정책이 되고 당 기관 및 전체 당원의 실천 행동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 인생 발전의 대자연성, 즉 무위이화의 천도·천덕은 지구상 인류 세계의 역사를 후천개벽의 필연적 단계, 즉 사회 발전의 역사적 총혁명 계단으로 몰아내 온 것이며, 인류 세계의 개벽적 추세는 동방에 있는 세계 최고의 도덕 문명국, 즉 동방예의지국인 동시에 전형적 단일 약소민족 국가인 조선으로 하여금 근세 이래의 쇠망과 부흥의 고된 고개, 즉 기사회생의 역사적 개국 고개 위에 놓이게 한 것이며, 이러한 역사적 대변혁의 마루턱에서 필연적으로 최수운 선생 같은 어른이 나시어 동학 천도교의 진리를 창도하게 된 것이다. <본문 163쪽>
▪ 우리 당의 문화적 이념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인내천 종지를 핵심으로 하고 구현되는 인류 문화 전반에 대한 이념이다. 그리고 그 이념은 우리 당의 근본이념 또는 도덕적 이념·정치적 이념·경제적 이념과 별개가 아니요, 그 모든 것과 부합되며 또는 그 모든 이념 및 그 이념들의 실천력을 함양·추동하는 선거·교양·조직·훈련의 의의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본문 218쪽>
■ 차례
제1부 천도교의 정치이념
제1장 천도교의 정치사상과 사회적 근거
제2장 천도교의 정치사상과 이론적 근거
제3장 천도교의 정치운동사와 그 의의
제4장 천도교청우당의 출현과 그 의의
제5장 천도교의 건국이념
제6장 천도교청우당의 부활과 그 정치적 진로
제2부 당지
제1장 교회와 당의 관계
제2장 천도교의 종지·강령·목적
제3장 당강령 주해
제4장 수양문답
해제 1 / 해제 2
제3부 천도교청우당론
제1장 서론
제2장 천도교청우당의 토대
제3장 천도교청우당의 본질
제4장 천도교청우당의 목적
제5장 천도교청우당의 이념
제6장 천도교청우당의 강령
제7장 천도교청우당의 당면 정책
제8장 천도교청우당의 역사적 경험과 현 단계의 바른 정치노선
제9장 천도교청우당원의 의무
해제 / 천도교청우당, 새로운 세계를 기획하다 __임형진
■ 동학네오클래식은…
동학 창도 이래 개벽 세상을 기획하고 전망하는 많은 글과 책들이 발표, 간행되었다. 그 중에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서도 가치를 갖는 고전들도 적지 않다. 동학네오클래식 시리즈는 이러한 동학이 고전들을 발굴하여 사료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겸전한 책으로 재간행하고자 한다.
■ 저자, 해제 소개
__ 김병제
천도교 지도자로, 필명은 추강(秋岡), 도호는 국암(菊菴), 1919년 천도교에 입교했다. 천도교청년당 중앙집행위원과 천교도중앙종리원 지도관서(知道觀書)를 지냈고(1929~1934) 시중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1935). 천도교중앙종리원 성도관서(誠道觀書, 1936), 법도관정(法道觀正)과 지도관정(知道觀正, 1937). 신도관정(信道觀正, 1937.4~1939.4), 천도교청년당 중앙집행위원과 지육위원장을 지냈다(1938). 신인간사에서 주간과 사장으로 근무했고(1939.4~1943), 국민정신총동원천도교연맹 이사와 상임이사, 상무이사(1939.6~1940.11). 국민총력천도교연맹 이사(1940~1944) 천도교중앙종리원 교령실 관장(敎領室 觀長, 1940.4~1945), 교화관장(敎化觀長) 대리를 역임했고(1941) 천도교 부여신궁조영 근로봉사단에 참여했다(1941.6/1944.9). 조선임전보국단 발기인으로 참여했으며(1941.9) 천도교 주최로 열린 태평양 전쟁 전몰 장병 위령제에 참여했다(1944.12.10).
__ 이돈화
천도교 사상가. 천도교 사상을 근대적 시각에서 이해했고, 여러 잡지를 통해 널리 알렸다. 호는 야뢰(夜雷)·백두산인(白頭山人). 도호(道號)는 두암(豆菴)이다. 1902년 동학에 입교하여 1910년부터 <천도교월보사>에 근무했다. 1919년 천도교 청년교리강연부와 이듬해 천도교청년회를 조직에 참여했다. 1920년 6월 『개벽』 창간을 주도하여 주간으로서 천도교 교리에 대한 근대적 해석과 민족자주사상을 드높이는 글을 실었다. 잡지 『부인(婦人)』(1922)과 『신인간(新人間)』(1926) 창간을 주도했다. 천도교 주임종리사·지도관장·종법사·총부대령 등의 여러 중책을 역임했고, 해방 직후 북한에 있다가 6·25전쟁 때 평안남도 양덕에 있는 천도교 수도원에서 인민군에 납치된 뒤 행방불명되었다. 저서로는 『천도교창건사』, 『신인철학』, 『인내천요의』, 『천도교교리독본』, 『천도교사전』, 『수운심법강의』 등이 있다.
__ 임형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대와 성균관대 그리고 경희대에서 수학하고 정치학 박사를 받았으며 경희대 후마나타스칼리지에서 객원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한국정치사상을 전공하였고 동학사상의 현재화에 관심을 가지고 천도교 청우당 연구를 주로 하고 있으며 학문을 넘어 천도교의 전위단체인 (사)동학민족통일회의 공동의장으로 있으며 동학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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