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학 다큐소설’ 출간 주도한 고은광순씨…“평등 철학에 매료…여성 시선으로 ‘동학적 삶’ 다뤘죠”
“동학도들이야말로 ‘상남자’ ‘상여자’죠. 신분 차별, 성차별, 연령 차별 등 모든 차별을 거부하고 서로 귀하게 여기며 돕고 살기 위해 노력했으니까요.”
호주제 폐지,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에 앞장섰던 ‘한의사 페미니스트’ 고은광순씨(60·사진)가 ‘동학 언니’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고은씨는 “인권운동가, 교사 등 14명이 함께 집필한 여성동학 다큐소설 시리즈 출간을 마쳤다”고 밝혔다. 이 시리즈는 <해월의 딸, 용담할매> <동이의 꿈> <잊혀진 사람들> 등 13권으로 구성됐다. 그는 “여성의 시선으로, 전투 장면이 아닌 당시 민중의 ‘동학적 삶’을 바라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고은씨는 2012년 충북 옥천군 청산면으로 귀촌하면서 동학과 인연을 맺기 시작됐다. 그는 “해월 최시형의 손자 정순철이 지냈던 청산이 1894년 동학의 본거지”라며 “흔히 ‘동학’ 하면 전라도, 전봉준, 죽창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한반도 전체에서 남녀노소 동학도의 조직적 저항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타고 지휘했던 장흥의 이소사 같은 여성 지도자뿐만 아니라 동학 지도자의 아내, 딸, 손자들의 삶을 다큐소설로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알음알음 동료 집필자를 모은 뒤 동학 관련 자료를 찾아 전국을 돌았다. 사투리를 대사에 녹여내기 위해 경주, 군위, 안동, 상주, 예천, 문경의 주민들을 만났으며 최제우가 머물던 경주 용담사도 찾았다. 고은씨는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눈을 속이기 위해 동학에 관해 왜곡된 서술을 한 자료들이 많아서 신뢰할 만한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약 2년에 걸친 노력 끝에 북한, 서울·경기, 충청, 강원, 경상, 전라를 망라하는 시리즈가 탄생했다.
고은씨는 “당시 조선 인구 약 1000만명 중 동학에 입도한 사람은 3분의 1”이라며 “고부군수 조병갑은 철저한 ‘기득권 지킴이’였으며 혁명의 걸림돌이었다. 고종과 민비(명성황후) 역시 권력의 유지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백성들과는 한 점 동질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존재는 그 안에 한울을 품고 있다는 동학의 주장에 양반들은 벌벌 떨었다. 수직사회에서 수평사회로의 전환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국가적 재앙을 피하려면 정치가는 국민의 함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은씨는 한의사로 활동하며 호주제폐지운동본부를 설립해 2005년 호주제 철폐를 이끌어냈다. 그는 “가부장제와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 차별, 아동 무시의 ‘찌질한 가부장제’가 일제강점기부터 극성을 떨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해월 최시형은 일하고 있는 며느리를 가리켜 ‘한울이 저기 있다’고 했고, ‘아내와 싸우게 되거든 아내에게 큰절을 하라’고 했다. 이런 동학도들이 처절하게 절멸당한 이후 비굴하고 비겁한 민중들은 혁명 대신 족보를 사들여 양반 흉내 놀이를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학은 양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평민, 천민, 여성, 아동, 출세 못한 양반 등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귀히 여기는 사회로의 개벽을 꿈꿨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 역시 그들이 꿈꾸었던 세상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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