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소개

‘여성동학다큐소설’ 13권 완간한 동학언니들-한겨레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소걸음 2015. 12. 14. 17:56

121년만에 여성의 이름으로 불러낸 ‘동학도의 개벽혼’

출처: 2015.12.07 한겨레 신문               기사원문보

 

       <여성 동학 다큐소설>을 쓴 ‘동학 언니들’. 왼쪽부터 유이혜경, 한박준혜, 정이춘자, 임소현, 이장상미, 변김경혜, 박이용운, 박석흥선, 김현옥, 고은광순. 

 

[짬] ‘여성동학다큐소설’ 13권 완간한 동학언니들

“동학의 ‘동’은 서학의 반대말이 아니라 ‘본래’를 뜻합니다. 동학을 깎아내리느라 그렇게 일컬었던 것이지요. 앞으로 이런 여성 작가들이 천만명쯤 나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큰절을 한번 하겠습니다.” 축사를 끝낸 채현국(효암학원 이사장) 선생이 돌연 단상의 ‘동학 언니들’ 앞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서 있던 여성 작가들도 화들짝 놀라며 맞절을 했다.

지난 5일 오후 서울 창전동의 피스빌딩에서 <여성 동학 다큐소설>(모시는사람들) 13권의 완간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여성 작가들이 집단으로 역사 소설을 쓴 일도 전례가 없거니와, 이들이 121년 전 동학도들의 ‘개벽혼’을 복원해낸 것이 놀랍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천도교 박남수 교령은 “동학의 ‘동’은 생명이요, ‘동학’은 백성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포한 혁명이었다. ‘사람이 곧 한울이다’라는 뜻을 되살려주어 고개 숙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동학 언니들(김현옥·한박준혜·정이춘자·유이혜경·변김경혜·박이용운·이장상미·박석흥선·임소현·고은광순(맨 오른쪽)·명금혜정·김정미서·리산은숙)은 모두 13명으로, 주부·교사·평화운동가·명상지도사 등 다양한 경력을 지녔다. 2013년 겨울부터 지역별로 각자 한 권의 책을 맡았다. 지역은 강원도, 연산, 대둔산, 해남·진도, 제주, 섬진강, 천안, 내포, 공주, 북한, 서울·경기, 청산, 경상도, 보은, 장흥으로 나눴다.

2012년 청산 귀촌한 고은광순씨 발의
‘청산은 동학 기포 결성한 곳…운명”
주부·교사·명상가 등 여성13명 동참

박맹수 교수 ‘30년 동학 연구’ 바탕
‘눈물·한숨·통곡’ 공감 속 2년간 집필
채현국 선생 출간회서 ‘큰 절로 찬사’

지금까지 역사는 승자의 역사, 남성의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동학 언니들은 남녀노소 모두 ‘한울님’이라는 동학 정신에 따라 역사의 기록에서 부차적 구실에 머물던 ‘여성’을 주체로 다시 호명했다. 1860년 동학 창도부터 2000년대까지 워낙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다, 전문 작가들도 아닌 까닭에 우려가 많았지만 끝내 결실을 맺었다.

대규모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밀어붙인 이는 한의사이자 사회운동가인 고은광순씨다. 2012년 서울을 떠나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 집을 짓고 있던 고은씨에게 도종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자신의 책 <정순철 평전>을 건넨 것이 계기가 됐다. 정순철은 청산 출신의 동요운동 선구자로, 동요 ‘짝짜꿍’과 ‘졸업식 노래’를 만들었다. 해월 최시형의 딸 최윤의 아들로 태어나 방정환과 함께 일제 강점기부터 어린이 운동을 이끌었다. 어린이를 ‘한울님’으로 보는 운동이었다.

“귀촌해 자리잡은 청산은 마침 1894년 동학혁명 기포를 결정한 본부가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운명적으로 해월의 딸 최윤과 그의 아들 정순철을 만났고, 그들의 역사가 다시 나를 전율하게 했지요. 한반도 분단의 시발점은 19세기 말 총을 앞세운 일본의 탐욕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대국 무기산업의 문제를 일깨워주기도 했고요.”(고은광순)

2013년 겨울, 동학 언니들은 본격 취재와 창작에 돌입했다. 동학 연구의 대가인 박맹수 원광대 교수가 30년 동안 쌓아온 연구 자료와 성과를 기꺼이 제공했다. 눈물로 그들에게 동학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실존 인물과 역사를 큰 줄기로 잡고, 가상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책이 ‘다큐 소설’이란 제목을 단 이유다.

작가들은 수험생처럼 맹렬하게 공부했다. 19세기 후반 조선 인구의 약 30%가 동학도들이었다는데, 양반·평민 구분할 것 없이 왜 그들이 운동 또는 혁명이라 일컫는 이 거대한 흐름에 동참했는지 살폈다. 가진 것을 서로 나누고 돕는 ‘유무상자’ 정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던 평화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며 살다 간 선조들의 삶에서 눈물과 한숨, 통곡을 느꼈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공감하며 함께 울었다.

강원도 편 <님, 모심>을 쓴 김현옥씨는 해월이 민중과 더불어 동학을 재건하는 과정과 원주에서 체포된 말기 행적과 함께 생명운동의 거목인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사상 속에서 해월의 흔적을 찾았다. 그는 “동학의 핵심은 모두가 가슴에 하늘을 품은 귀한 존재라는 ‘시천주’와 쌀 한 톨에도 우주가 있다는 ‘생명사상’”이라고 말했다.

북한 지역을 다룬 <동이의 꿈>을 맡은 박석흥선씨는 “책을 쓰면서 분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동학이 연대의 아름다운 역사를 남겼듯 우리 민중과 꼭 빼닮은 역사를 지닌 타이베이·오키나와 주민들과도 함께 연대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는 소감을 밝혔다.

충청 서부지역을 아울러 <내포에 부는 바람>을 쓴 박이용운씨는 “1894년 청일전쟁이 내포 앞바다에서 벌어지면서 서해안이 최대 피해지역이 되었다. 많은 물적 수탈을 당했지만 동학도들은 굴하지 않았고 이곳은 일본의 총을 무력화시키며 대항해 승리를 거둔 유일한 지역이 되었다”고 말했다.

동학도는 농민만이 아니었다. 천안 편 <세성산 달빛>을 쓴 변김경혜씨는 “충청도에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내로라하는 양반 유생들이 동학에 다수 결합했다”며 “책을 쓰면서 우리의 근대는 과연 무엇인지, 그 뿌리는 어디서 찾아야 할지 고민했다”고 말했다. 연산·대둔산 편 <은월이>를 쓴 한박준혜씨는 “의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끝내 반드시 승리하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날 축사도 했던 도종환 의원은 ‘운명’을 강조했다. “일생을 살다 보면 한 사람이, 한 사건이 운명처럼 올 때가 있습니다. 청산에서 고교 교사를 시작하며 발굴했던 정순철의 이야기가 결국 13권의 소설로 탄생한 것을 보니 이것이 후천개벽과도 같다 생각합니다. 이런 운명이 앞으로 또 하나의 역사가 되길 바랍니다.”

작가들을 든든히 떠받쳐준 박 교수 역시 가슴 벅찬 축하 인사를 보냈다. “121년 전, 동학농민혁명군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대동의 세상을 꿈꿨다가 좌절되었습니다. 동학농민군 영령들이시여, 이제는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잠드소서.”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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