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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교개혁론과 유교의 정체성

소걸음 2016. 11. 3. 18:18

한국/근대/종교 총서 04

근대 유교개혁론과 유교의 정체성

 

이 책은 조선사회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지배 이념이던 유교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내적으로 자정 능력을 상실한 가운데 서양과 일본 세력의 동점이라는 외환에 직면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양상을 살펴보고 근대종교로서의 유교로 정립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한국근대종교총서(기독교, 불교, 유교, 신종교, 총론) 중 유교 편이다.

 

 

저 자 : 김순석

분 야 : 종교

발행일 : 20161031

페이지 : 288

가 격 : 15,000

ISBN : ISBN 979-11-86502-64-8 94200  

            세트 : 979-11-86502-63-1 94200 

판 형 : 152 225mm

발행처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문 의 : 02-735-7173

 

출판사 서평

왜 이렇게 됐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나라가 혼란에 처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를 캐묻곤 한다.

우선 떠오르는 것은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를 청산하고, 남북이 함께하는 통일정부를 세우지 못한 때를 떠올릴 수 있다. 분단의 틈바구니에서 기사회생한 친일파와 부역자의 무리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감추기 위하여 반공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가운데 악착같이 오늘날의 외화내빈(경제성장과 미개한 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빚어냈다.

그러나 친일파분단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보면, 다시 한 번 거슬러 올라가, 구한말이라는 시대를 전후한 시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당장의 국가 최고 지도 영역의 모습조차 민비와 진령군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내환(內患)에 치여 미처 살피지 못하고 있으나,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정세는 구한말 그때와 판박이로 닮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처음처럼 혹은 삼 세 번

 

그때,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후한 시기에, 지금과 같은 내우외환의 상황에 처하여 당시의 지식인들과 민중들은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 해야만 나라를 살리고, 민생을 도모할지를 다각도로 모색하였다. 그때의 시도들은 결과(國亡=韓日合倂)적으로 그 모든 것들은 실패로 돌아갔으나, 백가쟁명의 당시의 모색들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조선왕조의 몰락과 국망은 유학의 쇠락과 궤를 같이한다. 유교는 조선 시대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위로는 국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국가사회의 삶과 운명 전체를 좌우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는 통치 이념이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를 설명해 주는 우주관이기도 하였으며, 사회질서를 규율하는 예교(禮敎) 체계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유교는 19세기 후반 서양과 일본 세력의 등장으로 지금까지 쇄국으로 일관해 왔던 조선이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되는 거대한 조류 앞에서 극심한 변화의 압박에 내몰렸다. 당시 유교의 실질적인 사제(司祭)이자 국가사회 지도층이었던 유림은 위기에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유교 개혁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개혁의 주장은 여러 갈래로 분화하였다. 그리고 그 분화 양상은 오늘 우리에게,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크나큰 귀감이 되어 준다.

당시의 유교 세력이 국망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였으며, 그 귀결이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바로 오늘, 위기에 처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우리 삶의 공동체의 미래를 어떻게 조성하여 나갈지에 대한 더없이 좋은 지침을 준다.

 

유교의 근대 문명 수용과 변용, 대안 탐색

 

19세기 후반의 대전환기에 처한 유림의 대응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 서양의 문명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들은 윤리가 제대로 서있지 않은 금수와 같은 존재들이므로 결코 상종해서는 안 된다는 위정척사파가 있다.

둘째, 서양 사람들의 기술적 성취에 놀라는 한편으로 그 윤리 수준의 천박함을 보면서 서양 기술은 배우되 윤리는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고 한 동도서기파가 있다.

셋째, 세계의 큰 흐름은 이미 물질문명을 숭상하는 쪽으로 기울었으니, 서구화를 지향하는 것이 대세에 순응하는 길이라고 주장한 개화파가 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이러한 범주에 속하는 유림 세력이 20세기를 넘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진화/분화/퇴화해 갔는지를 추구(推究)해 나간다.

 

한국 근대종교의 탄생 - 유교

 

이 책은 한국근대종교의 탄생이라는 프로젝트 가운데 유교 부분이다. 이 프로젝트는 총 5명이 기독교, 불교, 유교, 신흥종교 그리고 총론이라는 주제로 3년에 걸쳐 근대종교 탄생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개별 연구는 각자 진행하되 한 달에 한 번 모여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점검하고 논의되었다.

 

차례

. 근대 유교계의 여러 모습과 연구 성과

1. 근대 유교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2. 지금 연구는 어디까지 왔나

3. 유교의 종교성을 둘러싼 담론들

 

. 근대 유교개혁론의 전개 배경과 과정

1. 근대 동아시아 사회의 변화

2. 유교계의 분화와 현실 인식

3. 유교계의 친일화 경향

4. 근대 유교개혁론의 전개

 

. 조선 총독부의 유교 정책과 경학원의 설치

1. 1910년대 조선 총독부의 유교 정책

2. 경학원의 설치 배경

3. 경학원의 조직과 주요 사업

4. <포교규칙>의 공포와 유교계의 위상 변화

 

. 3·1운동과 유교 정책의 변화

1. 3·1운동 이후 유교 정책의 변화와 유림의 동향

2. 1920년대 <향교재산관리규칙> 시행과 성격

 

. 친일 유림 육성책과 유교계의 분화

1. 항일독립운동의 분화

2. 친일 유림의 일본 인식과 협력

 

. 1920-1930년대 유교의 종교화운동

 

. 전시체제기 황도유학의 성격

1. 황도유학의 등장 배경

2. 내선일체 정책과 황도유학의 제창

3. 황도유학의 논리와 허구성

 

. 조선유도연합회의 결성과 유교계의 협력

1. ‘국민총력운동체제의 구축

2. 조선유도연합회의 결성

3. 유교계의 전쟁 협력

 

. 유교 교육의 변질

1. 명륜학원의 설립

2. 충량한 황국신민의 양성

 

. 근대 유교의 정체성

 

책 속에서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을 전후로 일본은 조선 침략을 노골화하였다. 이 시기 독립과 국권의 유지를 위하여 서구 문물의 수용이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유림이 증가하였다. 이들이 받아들인 문명개화론과 사회진화론은 근대국가를 지향하던 대한제국에 서구 문물의 도입을 정당화시켜 주는 이론이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일부 유림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국권 상실 이후 조선 총독부의 시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친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사실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로 지식인들 가운데는 우리 민족이 생존경쟁에서 패배하여 장차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 <본문 51>

 

조선에서 유교의 종교화운동은 20세기 초에 전개되었다. 박은식·장지연을 중심으로 한 대동교운동이 있었고, 이승희(李承熙)1908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한인 사회에서 공교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병헌(李炳憲송기식과 박장현의 공교운동은 제각기 조금씩 그 주장하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크게 보면 시대적 위기를 구할 수 있는 대안을 공자교운동에서 찾았다. 이들의 공자교운동은 1925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된다.<본문 163>

 

황도유학이란 일본의 신국사상, 즉 천황을 살아 있는 신으로 섬기는 신도를 유교의 왕도정치와 결합시켜 만들어 낸 충효일치(忠孝一致)의 일본화된 유학였다. 일제가 황도유학을 내세운 것은 조선 민중으로 하여금 일본의 침략 전쟁에 자진하여 인적·물적 자원을 바치도록 강요하는 침략 논리를 뒷받침 하려는 것이었다. 황도유학은 유학에서 이상적인 정치 형태인 왕도정치를 일본의 천황제와 결부시켜 황도유학이라고 변조한 것이었다.<본문 182>

 

총독부는 조선을 강제 병합하는 과정에서 유교계의 강한 저항을 경험하였다. 그런 까닭에 조선 지배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유림 세력을 회유할 필요가 있었다. 총독부는 유교 지식인 상층부에 이른바 상치은사금(尙齒恩賜金)’과 작위 수여라는 방식으로 유림을 회유하였다. 이 정책은 일정한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유교 지식인들은 그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자정순국(自靖殉國)의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 총독부는 19116월 조선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성균관을 폐지하고 경학원을 설치하였다. 경학원의 설립 목적은 경학 연구를 통해 풍속덕화를 비보하기 위하여라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경학원에는 경학을 연구하기 위한 아무런 제도적인 장치도, 인력도, 사업 방침도 없었다. 다만 성균관의 주된 두 가지 기능 즉 교육과 제향 기능 가운데 교육 기능을 없애고 선현에 제향하는 석전제를 봉행하고 총독부의 정책을 홍보하는 강연과 기관지인경학원잡지를 발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교육기관에서 교육과 연구 기능이 제거된 경학원은 석전제를 봉행하는 것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단순 기구로 전락하였다. 총독부가 성균관의 교육 기능을 제거한 것은 조선인들이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면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식민 통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본문 225>

 

저자 소개_ 김순석

경북 포항시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근대사를 전공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를 수료하고 독립기념관 연구원과 고려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의 불교정책과 불교계의 대응, 백년동안 한국 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불멸의 민족혼 되살려 낸 역사가 박은식등이 있으며 한국근현대불교사와 근현대유학사를 공부하고 있다.

 

한국/근대/종교 총서 04

 

01 한국 근대종교의 정체성은 어떻게 만들어졌나?(근간) _장석만

02 한국 근대 기독교의 자타인식(근간) _이진구

03 한국불교, 근대종교로 태어나다(근간) _송현주

04 근대 유교개혁론과 유교의 정체성_ 김순석

05 한국 근대 신종교 개벽사상의 탄생과 전개(근간) _윤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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