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소개

한겨레 신문에 <일하는 한울님>이 소개되었습니다

소걸음 2014. 9. 16. 11:29

한겨레신문(2014년 9월 15일자) 21면에 도서 <일하는 한울님>이 소개되었습니다.

“동학은 끝나지 않았다”

■ 일하는 한울님-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
■ 윤석산 지음
■ 모시는사람들·18,000원


동학을 연 수운 최제우의 삶은 짧았다. 1860년 창시한 지 4년 만에 41살의 나이에 처형됐다. 동학이 종교로, 사상으로, 혁명운동으로 자리매김한 데는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에 기댄 바가 크다.

그는 동학에 입도한 뒤 36년을 이 산에서 저산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쫓겨다니며 교세를 키워 ‘최보따리’로 불렸다. 한울님의 일을 대행하는 머슴을 자처해 ‘머슴교주’라는 별명도 얻었다. <일하는 한울림─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은 천도교중앙총부 상주선도사인 윤석산 한양대 명예교수가 <동학교조 수운 최제우>(모시는사람들, 2004)에 이어 집필한 두번째 동학 인물사상서다. <일하는…>은 교과서에서나 스치던 동학 인물들의 사상과 행적을 잔잔하고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최시형은 182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거나 남의 집 머슴을 사는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다만 10살 때쯤 서원에서 공부한 적이 있어 완전 무학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61년 경북 포항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던 최시형은 34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경주 용담을 찾아 동학에 들었다. 그는 한달에 서너번씩 100리(40㎞) 길을 오가며 최제우의 가르침을 받았다. 스승처럼 ‘하늘의 소리’(천어)를 듣는 체험을 한 뒤 최제우의 도통을 받아 2세 교주가 된다.
최시형은 최제우가 동학의 기본 사상으로 제시한 ‘시천주’(세상의 모든 사람을 한울님같이 대하고 섬겨야 한다)를 ‘양천주’(한울님 뜻을 잘 받들어 모셔 그 마음을 키워나간다)라는 실천적 의미로 확대했다. 그는 ‘베짜는 한울님’ ‘일하는 한울님’이라며 ‘여성=주인’이라는 이념을 설파해 1920년대 천도교가 <부인> <신여성> 등 월간여성 잡지를 창간해 여성운동을 펴는 근간을 마련했다. 또한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이라며 어린이 존중 사상을 펼쳐 동학 3세 교주 의암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이 어린이 운동을 벌이는 노둣돌을 놓았다.

최시형은 제자들과 함께 <도원기서> <동경대전> <용담유사> 등 경전을 간행해 동학 교단을 종교적으로 공고히 하는 등 뒷날 손병희에 이르러 천도교라는 종교로 돋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최시형은 ‘용시용활’이라 하여 시운을 중시했다. 자신의 이름을 경상에서 시형으로 바꾸고 제자들도 ‘시’자를 넣어 개명하도록 했다. 전봉준이 고부에서 봉기했을 때 그는 시기상조임을 지적했지만 이후 본격적인 동학농민혁명 때는 70살의 고령에도 진두지휘를 했다. 1898년 관군에 잡혀 처형될 당시 그의 사상에 감복한 러시아공사 파블로프가 찍은 사진이 한 작가의 책에 ‘죄인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은 동방의 탁월한 혼인 최시형’으로 소개돼 오늘에까지 전해진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55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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