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이어간 동학의 역사, ‘걸어다니는 동학’
박맹수 | 원광대 교수·모심과살림연구소 이사장
1983년 3월에 한국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동학 공부를 막 시작하던 시절에 삼암 표영삼 선생님(1925-2008)을 처음으로 뵈었다. 그 당시는 일반 국민들은 말할 것 없고 학계에서조차도 동학의 사상과 역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동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려고 나선 신출내기 연구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나 자료도 별로 없었고, 동학사상과 동학의 역사 등에 대해 체계적으로 지도해 줄 수 있는 스승도 계시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의 동학 공부는 동학의 역사가 깃든 현장을 직접 발로 뛰어 자료를 찾아내고, 그렇게 해서 찾아낸 자료에 바탕하여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고증해 가는 수공업적 방식으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필자의 석사논문 주제였던 해월 선생의 행적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복원해 내는 작업은 초심자인 필자에게 아주 벅찬 과제였다. 그런 힘든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나시어 필자의 동학 공부의 길을 열어주신 분이 바로 삼암 선생님이셨다. 삼암 선생님을 뵌 이후, 필자는 선생님을 모시고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동학의 현장, 특히 해월 선생의 비밀 은거지를 약 10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답사할 수 있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대, 삼암 선생님으로부터 입은 학은(恩)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생각하면 그저 목이 메일 따름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생전의 삼암 선생님께는 여러 가지 별명이 붙어 다녔다. ‘살아 있는 동학’, ‘걸어 다니는 동학’, 그 외 ‘천도교 최고의 이론가’ 등의 수식어가 바로 그것이다. 그 별명 그대로 삼암 선생님은 천도교 교단 안에서 동학과 천도교 사상과 역사에 관한 한 최고의 이론가요 최고의 연구자이셨다. 선생님께서는 1960년대 후반부터 동학의 역사가 깃든 현장을 일일이 발로 답사하시어 그 답사기를 천도교 기관지『신인간』에 연재함으로써 후학들로 하여금 동학과 천도교 역사를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주셨다. 2008년 2월 13일에 83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별세하시기 전까지도 삼암 선생님께서는 팔십 노구를 이끄시고 동학의 역사가 깃든 현장을 직접 답사하시면서 후학들에게 귀중한 증언을 들려주셨으며, 시민을 위한 동학 강좌를 열어 한국 사회의 동학 이해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도 크게 기여하셨다. 또, 만년에는 40여년에 걸친 동학 연구를 집대성하는 역저 『동학』1과 2(도서출판 통나무, 2004년 및 2005년)를 내시어 한국 학계의 동학 연구 활성화에도 크게 이바지하신 바 있다.
삼암 선생님의 동학(천도교) 연구 자세에서 우리 모두 귀감을 삼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참으로 고독하고 가난한 여건 속에서 장장 40년 이상에 걸친 연구”였다는 사실이다. 삼암 선생님의 학력은 일제 강점기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으셨다고 알려져 있고, 대학이나 무슨무슨 연구소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을 만한 처지도 되지 못하셨다. 그렇다고 천도교 교단 측으로부터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자비와 자력으로, 그리고 선생님 나름으로 개척한 독자적인 연구방법론으로 40여년의 세월에 걸쳐 전국 각지를 누비시며 동학(천도교)의 역사와 사상을 복원해 내는 데 생애를 불사르셨던 것이다.
이번에 모시는사람들 출판사 박길수 대표께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삼암 표영삼 선생님 저작집을 간행하기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삼암 선생님께서 끼쳐 주신 은덕으로 동학 연구의 길에 들어선 필자로서는 남다른 깊은 감회에 젖지 않을 수 없다. 아무쪼록 이번에 나오는 삼암 선생님 저작집이 인연이 되어 동학 연구에 뜻을 두는 후학들이 줄을 잇기를 기대한다. 저 세상에 계신 삼암 선생님께서도 당신의 후학들이 마음을 모아 간행하는 저작집을 보시고 크게 한 번 웃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개벽신문 37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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