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과 지상 사이의 형상
김종삼 시의 내재적 신성
■ 이 책은…
이 책은 그동안 현실을 부정하고 초월을 지향한 시 또는 한국 전통과 거리를 두고 기독교 등 서구 전통에 뿌리를 내린 시라고 여겨져 온 김종삼의 시를 한국 전통의 동학(천도교) 사상과의 연관성을 통해 접근하고 해부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김종삼 정집(正集)(2018) 편찬에 깊이 관여하는 등 김종삼의 작품 전체를 섭렵하고 치열한 문헌 고증과 직접 발굴한 새 자료까지 망라하는 한편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이미지 이론에 근거하여 김종삼 시의 특징을 동학과 같은 한국 토착사상의 전통에서 재조명해 낸 것은 물론 시의 이미지와 한국 현대문학사를 새롭게 이해하는 지평을 개척하였다.
- 분야 : 문학
- 저자 : 홍승진
- 발행일 : 2021년 9월 20일
- 가격 : 20,000원
- 페이지 : 400쪽 (두께 20mm)
- 제책 : 무선
- 판형 : 152×225mm(신국판)
- ISBN : 979-11-6629-061-9 (93810)
탄생 100주년 맞은 시인 김종삼의 재조명
이미지와 동학을 잇대어 한국시의 가치 해명
■ 출판사 서평
김종삼은 1921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창작 활동을 펼친 시인이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그의 시 세계 전반을 참신하고 정밀하게 해석하여 문학 연구의 고정관념들에 도전하는 책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인 홍승진(34세)의 첫 번째 연구서 [천상과 지상 사이의 형상―김종삼 시의 내재적 신성]이다. 1921년생 김종삼은 1921년생 김수영과 1922년생 김춘수과 더불어 해방 이후 한국 시를 대표하는 ‘3김’ 시인으로 불렸다. 많은 이들이 김수영과 김춘수는 익숙한 데 비해 김종삼은 다소 낯설다고 여길 것이다. 그 이유는 김종삼의 시에 담긴 경이로움이 그동안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탓임을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필자가 지은 이 책의 제목 "천상과 지상 사이의 형상"에서 '천상'과 '지상'은 각각 신성(神性)과 인간성(人間性)을 뜻하고, '사이'는 그 양자가 서로 부딪치고 이어지는 과정을 의미하며, '형상'은 이미지를 뜻한다. 김종삼의 시 <물통>에서 "머나 먼 광야(曠野)의 한복판 / 야튼 / 하늘 밑으로 / 영롱한 날빛으로 / 하여금 따우에서"라든지 <소리>에서 "어떤 때엔 천상으로 / 어떤 때엔 지상으로"라는 구절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필자는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제목으로 다르게 염두에 두었던 "네 안의 하늘을 떠올리기"와 내용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이 책의 저본이 된 '박사논문' 집필 당시에 원문 자료를 철저히 검토하고 실체가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10여 편 넘게 찾아서 [김종삼 정집(正集)](2018)을 편찬하는 데 기여하였다. 이번 연구서에서는 그 치열한 문헌 고증과 자료 발굴의 성과를 전폭 반영하여 김종삼 시를 더 넓고 새롭게 해명한다. 김종삼이 죽기 전까지 자기 방에 붙여둔 월남화가 최영림과 장리석의 그림이 어떤 작품인지를 알아내어 책의 표지에 담은 것에서부터 저자의 치열함이 돋보인다. 다소 무리하다 싶을 만큼 참신한 이 책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 책은 프랑스 철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조르주 디디-위베르만의 이미지 이론에 근거하여 김종삼의 시에 나타나는 이미지와 동학(천도교) 사상의 연관성을 해부한다. 이에 따르면, 김종삼은 이미지를 자기 시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 이미지는 감각할 수 있는 것과 감각할 수 없는 것 사이를 넘나드는 운동과 같다. 이미지의 운동은 한국전쟁과 장기 독재체제 같은 폭력의 역사에서 죄 없이 죽은 민중의 신성한 영혼을 감각할 수 있게 한다. 특히 이 책은 김종삼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라이너 마리아 릴케, 헬렌 켈러,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앙드레 롤랑 드 르네빌 등의 공통점이 인간에게 신성이 내재한다고 보는 신비주의임을 실증적으로 밝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종삼 시의 이미지는 감각적인 현실의 삶 속에 비감각적인 신성이 들어 있다는 동학의 인내천(사람이 곧 하늘) 사상과 맞닿는다.
지금까지 김종삼의 시는 현실을 부정하고 초월을 지향한 시, 또는 한국 전통과 거리를 두고 기독교 등의 서구 전통에 뿌리를 내린 시로 여겨지고는 했다. 이는 해방 이후 한국문학을 순수문학과 참여문학의 이분법으로 재단하거나 서구 문학의 모방으로 간주하던 통념과 같은 궤를 이룬다. 그러나 김종삼의 시는 현실적 인간의 삶에 초월적 신성이 내재함을 이미지로써 떠올린다. 이와 같은 특징은 현실과 초월의 이분법, 또는 인간성과 신성의 단절을 전제하는 플라톤주의와 기독교 등의 서구적 세계관보다도 동학과 같은 한국 토착사상의 전통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이 책은 김종삼의 시에 관심 있는 독자뿐만 아니라, 시의 이미지와 한국 현대문학사를 새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권할 만하다.
■ 차례
서론┃현실과 초월의 이분법을 뛰어넘기
수직적 이원론의 내용과 형식 | 한국 현대문학사에 대한 통념과의 연관성 | 동서양 신비주의의 흔적들 | 조르주 디디-위베르만과 운동하는 이미지: 비가시적 가시성과 시간교란 | 내재적 신성의 살아남음(Nachleben) | 동학 미학에 근거한 문학 연구의 갱신
제1부┃전쟁의 폐허 속에서 희망을 가시화하기
제1장┃다시개벽
종말론의 폭력 극복과 순환론의 원천 회복 | 하늘의 신성에 근거하는 민족의 원천
제2장┃장소로서의 이미지
이미지는 운동이다: 이행과 전치를 일으키는 장소 | 이미지의 역동성에 주목한 에즈라 파운드 | 비유사적 유사성: 잔해 속에서 드러나는 신
제3장┃시간으로서의 이미지
이미지는 운동이다: 과거·현재·미래 사이의 시간교란 | 기억 속의 희망을 현재화하는 ‘오늘’ | 「원정」은 죄의식에 머무는 시가 아니다
제2부┃억압받는 민중의 신성을 상기하기
제1장┃오르페우스적 참여
말라르메와 사르트르를 넘어선 시적 참여의 모색 | 롤랑 드 르네빌의 신비주의적 오르페우스 개념 | 역사에 의하여 희생된 인간의 영혼을 가시화하는 음악
제2장┃여성의 시야(vision)
억압의 이분법을 넘는 제유법 | 새로운 세상을 새롭게 상상하는 영성 | 모퉁이일수록 잘 보이는 우주
제3장┃어린이의 생명력
참혹의 역사를 사랑의 시초로 바꾸는 동심 | 우주적 생명 원리에 근거한 어린이주의 | 역사의 죄를 씻으며 되살아나는 어린이-이미지
제4장┃약소민족의 성화(聖火)
중립과 동학을 둘러싼 신동엽·최인훈과의 연관성 | 폭력의 역사에도 신성을 보존하는 민족들 | 차별적 범주를 초극하는 인간 보편의 아름다움
제3부┃살아남는 이미지로 파시즘에 맞서기
제1장┃문명위기와 에고이즘
핵 위기 속에서 모색하는 우주와의 일체감 | 발레리의 배타적 정신 대(對) 릴케의 우주적 내면 | 계산적 이성을 내재적 신성으로 전환시키는 상-기
제2장┃죽음 이후의 시인
밤을 가로지르는 시적 마음의 파동 | 헬렌 켈러: 신성을 감각하기, 영혼과 교우하기 | 창조적 연대성: 임긍재와 꿈-나라, 박두진과 시인-학교
제3장┃삶은 본디 시적이다
네오파시즘 비판을 위한 반파시즘 예술가의 상-기 | 도스토옙스키·헤밍웨이와 연관된 대지적 삶의 긍정 |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인간성을 비추는 민중의 미광
맺음말 ┃ 자생적 문학이론, 자생적 평화통일론
■ 책 속으로
○ 민족적 원천으로서의 신성을 상기시키는 김종삼 시의 이미지들은 장소와 시간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시에서 이미지는 감각의 문제이며, 감각은 공간과 시간이라는 감성의 선험적 범주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김종삼의 1950년대 시편은 장소로서의 이미지를 통하여 인간의 내재적 신성을 상기시킨다. 김종삼의 시에서 특정한 의미를 지시하거나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장소로서의 이미지들은 실제로 다양한 의미들 사이의 이행(transition) 및 전치(displacement) 운동을 일으킨다. 그중에서도 특히 비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 사이의 운동은 삶에 내재하는 신성을 상기시킨다고 할 수 있다. 신성이 비가시적인 것이라면, 삶은 가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 89쪽>
○ 제1부에서는 1950년대 김종삼 시의 이미지가 전쟁으로 폐허화된 한국의 현실 속에도 인간의 본래적 신성이 내재함을 상기시킨다고 해석하였다. 이 시기의 김종삼 시편에 나타난 다시개벽의 이미지는 전쟁과 폭력을 되풀이해 온 기존 역사의 작동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하늘의 신성에 근거한 한국 민족의 원천을 상기시킨다. 현실 속의 신성을 떠올리는 이미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비가시적인 것과 가시적인 것 사이의 이행과 전치를 일으키는 장소로서의 이미지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잠재된 미래의 희망을 현재화하는 시간교란의 이미지이다. 특히 장소와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는 1950년대 시편뿐만 아니라 김종삼의 시 세계 전반을 관통하는 미학적 특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본문 146쪽>
○ 시적 화자는 온 세상에서 들려오는 관 속의 피리 소리를 꺼내기 위하여 칼을 휘두른다. 그렇게 칼을 휘두르는 행위는 곧 석공인 시적 화자가 돌을 조각하는 행위로 이행하고 전치될 수 있다. 시적 화자가 돌을 쪼는 행위로 제작한 산물은 아마도 죽은 아이의 석관(石棺)일 것이다. 이는 이미지 특유의 시간성, 즉 이미지의 시간교란(anachrony)을 보여준다. (…) 김종삼에게 진정한 시 쓰기는 죄 없이 상실되었던 인간의 원천적 상태를 이미지로 떠올리는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김종삼의 시는 말라르메 및 사르트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적 예술의 지향점과 실천적 참여의 지향점을 맞닿게 한다. 그의 시에서 제시하는 시의 본질은 오르페우스적인 것이며, 오르페우스적인 것은 역사의 지층을 뚫고 그 속에서 죄 없는 자의 내재적 신성을 캐내어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일부만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문제 삼으며, 정치적 또는 경제적 억압이 아니라 인간의 신성에 대한 억압을 문제 삼는다. <본문 181-183쪽>
○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은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자들이 김종삼의 시 세계를 현실 도피적 무의미의 순수시로 파악하는 근거가 되어 왔다. (…) 캐럴 가사에서 선물을 주는 쪽은 가난한 소년이고 선물을 받는 쪽은 아기 예수이다. 하지만 김종삼의 시에서 선물을 주는 쪽은 서양 나라이고 선물을 받는 쪽은 한국의 가난한 아이이다. (…) 표면적으로 보면, 「북치는 소년」은 가난한 한국 아이가 ‘서양 나라’ 문화를 일방적으로 동경하거나 서구 문화가 한국의 후진적 상황에 무조건적으로 전파되는 모습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심층적인 차원에서 가난한 한국의 아이가 지식과 계급과 국경의 차이를 초극하여 (“내용 없는”) 인간의 가장 보편적인 신성(“아름다움”)과 공명하는 상태를 표현한다. <본문 268-273쪽>
○ 헬렌 켈러에 따르면, “귀가 멀고 눈이 먼 사람에게 영적 세계가 어떠한 어려움도 주지 않는” 까닭도 신비적 감각 덕분이라고 한다. “내적 또는 신비적 감각은 비가시적인 것에 관한 시야(vision)를 준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죽은 인간의 영혼들도 이 감각 속에서 살아남아 가시화될 수 있다. (…) 죽은 친구들의 영혼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신비적 감각은 죽은 친구들과의 영적 접촉을 통해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다고 한다. 김종삼의 1970년대 이후 시편에서 제시하는 시적 마음의 파동은 그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혼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로 표현된다. <본문 325-326쪽>
■ 저자
홍승진 _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하였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간『다시개벽』편집위원,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사,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으로 일하고 있으며 임화연구회 연구기획위원, 사단법인 방정환연구소 학술이사, 신동엽학회 연구이사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가장자리에서 지금을─하종오 리얼리즘의 서정과 서사』,『김종삼 정집』(공편),『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공저),『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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