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질환자는 더 이상 가족의 소관도 아니요, 기피나 혐오의 대상으로서 자신의 가정 내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위험요소도 아니게 되었다. 이들은 약자이자 치료의 대상으로서 동정과 연민을 통해 사회 내에 포용되어야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는 당시 막 자리 잡기 시작한 근대적인 의료 기술과 제도의 보호를 받음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고작 10여 년 사이의 짧은 시간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다. - 본문 54쪽
● 우울증은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 치료될 수 있는 의료적 행위의 대상이다. 정신의학의 발달은 독일인 정신과 의사인 에밀 크레펠린(Emil Kraepelin 1856-1926)이 환자별 증상을 기록해 정신질환을 13개로 분류하고 이에 따른 과학적인 연구와 치료법을 개발하면서 본격적으로 ‘의학’의 영역에 자리 잡아갔다. 정신의학의 비약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중산층 사회에서 크게 각광을 받고, 약물학, 유전학 등의 생물학이 발달하고, 마음과 감정이 신체에 영향을 준다는 심신의학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졌다. 특히 현대인들의 우울증이 정신의학에서 주요 치료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는 항우울제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제약회사들의 이권 개입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따라서,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정신의학에서 다루어야 하는 ‘정신과적 문제’임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상을 ‘자살의 의료화’라고 부를 수 있다. ‘의료화(medicalisation)’란 “전통적으로 비의료적 영역으로 인식되었던 삶의 여러 부분이 의료 용어로 정의되고 다루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Conrad&Schneider, 1980; 김재형&이향아, 2020:855)”. 자살이 사회병리적인 현상인 사건으로 분석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신적인 문제로 치환되어, 의료의 영역으로 대상화된 것이다. - 본문 90쪽
● 전염병의 시대에 병원체에 감염되어 증상이 나타나는, 다시 말해 ‘병이 든’ 환자의 경계는 무엇인가? 병원체에 노출되지 않아 증상을 보이지 않는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경계는 분명해 보인다. 반면 환자와 슈퍼면역, 무증상 감염, 증상 이전 단계의 감염자, 감염병의심자는 동일선상의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염되어 증상이 나타나는 한쪽 끝에 ‘환자’라는 존재가 있다면 나머지는 건강한 사람이라는 다른 끝으로 향하는 선상의 여러 지점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염병의 시대 병원체에 감염되어 증상을 보이는 환자(혹은 확진자)는 그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안전을 위해 격리되고 치료되어야 할 존재로 간주되었고, 코로나19 대유행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공중보건 지침에 대해 사회구성원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불편함과 희생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확실한 환자는 아니지만 건강한 사람보다는 환자의 범주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 사람들에 대한 여러 지침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의학적으로는 환자가 아닐 수도 있지만, 정책적으로 환자와 마찬가지로 전염병의 시대 공동체에 위해가 될 수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인데,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닐까? - 본문 111쪽
● 한센병은 고대로부터 수천 년 동안 서구 사회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던 질병이다. 서구 사회에서 한센병 환자의 격리는 20세기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 전역에 수천 개의 나환자수용시설(leprosarium)이 세워졌지만, 15세기에 이르면 한센병은 서구 세계에서 거의 잊힌 듯 했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는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으로의 식민 진출과 경영의 필요성, 세계 각지로부터 몰려든 이민자들을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한센병에 대한 두려움이 부활하였다. 이후 한센병 환자 격리 조치는 중요한 국가적 공중보건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 한센병과 한센인을 둘러싼 문제는 육체를 갉아먹는 한센종균을 억제하고 제거하는 치료법이 성공하면 모두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한센병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도려내고 치유하는 문제는 환자 공동체를 중심으로 사회 전반의 지속적인 인식 변화를 꾀해야 하는 과제로 남았다. - 본문 141~143쪽
● 병을 다스리기 위해 요양을 택한다는 접근법은 근대적인 의료에 의해서 생긴 사고방식은 아니다. 질병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내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생명에너지를 활용하여 스스로 병에 맞설 수 있게끔 하는 방식이란 결코 낯설지 않았다. 몸의 기력을 보충하고 병에 맞서기 위해 요양을 택하는 것은 그다지 특이하달 것도 없었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병을 다스리기 위해 요양을 하였다는 의미로 “養病(양병)”이라는 표현이 심심치않게 등장하는데, 보통 관직에서 물러나서 한가로이 지내면서 병을 다스린다는 맥락에서 사용되고는 하였다. 이런 접근법은 건강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도 연결된 것이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신체든 정신이든 막론하고 인간에게는 일정한 ‘에너지’가 있어서 그 과부족에 따라 건강해지기도, 혹은 병들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이것을 ‘기(氣)’라고 일컬었다. 위장장애나 불면증과 같은 일상적인 경미한 증상에서부터 결핵이나 신경쇠약과 같은 본격적인 질병에 이르기까지, 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바로 ‘기의 부족’이었다. 아예 이를 두고 기가 부족한 증상, 즉 기허증(氣虛症)이라는 별도의 병명처럼 부르는 경우조차도 적지 않았다. - 본문 149~150쪽
● 실제로 불교 출가승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병을 치료하려고 출가하는 경우를 경계하긴 했지만, 불교 승원의 의료는 재가자나 일반인에게도 베풀어졌다. 승원이라는 공간, 음식물, 의약품 등을 재가자의 시주에 의존하고 있는 불교로서는 그들에게 의료를 제공할 필요도 있었고, 또 의료의 시행은 포교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점차 불교에서 자비가 강조되면서 승원의 의료, 또 거기서 의료를 배운 의승(醫僧)들의 활약은 아프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자비 실천의 일환이 되었다. 본래 불교에서 의료는 출가해서 공동생활을 하는 승려들 자신의 몸을 돌보고 치료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수행에 적합한 몸을 만드는 수단이거나 공동의 수행 생활에서 부수적인 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서로를 돌보고 일반인까지 돌보는 과정에서 의료는 자비 실천의 일환으로서, 즉 그 자체로 수행의 일부가 되었다. - 본문 180쪽
● 입소된 장애인들의 탈시설은 녹록지 않다. 두 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우선, 앞서 인권위의 조사보고서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정신)장애인들의 시설화는 그들을 돌보는 가족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입소인들이 원하는 탈시설에 대해 그들에 대한 돌봄을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은 어떻게 응답할까. 시설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결심할 때 가장 먼저 마주치는 걸림돌은 ‘가족의 반대’이다. (정신)장애인의 탈시설에 (무연고자를 제외) 부양의무자의 동의는 필수이기 때문이다. ... 탈시설이 쉽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혼자가 된 장애인’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과연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탈시설했던 장애인이 지역 거주민들의 민원으로 다시 시설로 재입소했던 사례가 보여주듯, 탈시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견뎌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는 사실상 해결이 쉽지 않다.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돕기 위해 마련된 ‘체험홈’은 자립생활을 원하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의 일반주택에서 일정 기간 생활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주도해 나가는 방향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체험홈 또한 소규모 시설운영의 다른 이름이라는 반대 논의 또한 존재한다. - 본문 198~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