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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8. 9. 11. 12:14

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 조선 후기, 여성해방과 어린이 존중의 근대화 이야기

■ 이 책은…

대한민국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사상이 동학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뿌리는 조선사회 내내 성장하고 성숙하고 성취되어 온 아래로부터의 근대화 동력과 계몽군주로부터(위로부터)의 근대화동력이 발화된 결과라는 점, 우리 사회가 한때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의 어둠을 뚫고 자생적인 근대화의 길을 밝혀 왔음을 밝히고 있다.




  • 분야 : 역사
  • 지은이 : 김종욱
  • 발행일 : 2018년 9월 25일
  • 가격 : 18,000원
  • 페이지 : 496쪽(두께 25mm)
  • 제책 : 무선
  • 판형 : 152mm ✕ 225mm
  • ISBN : 979-11-88765-25-6 (93910)

■ 출판사 서평

1.
최근의 ‘미투(me too)-위드유(with you)’ 운동이나 디스토피아의 암울한 전조쯤으로 거론되는 ‘저출산’의 사회 분위기는 우리가 중대한 전환기에 서 있음을 웅변한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만연한 성폭력 문화’에 대한 대응일 뿐만 아니라 불합리/불평등/불건전한 인식을 전환하는 운동이며, 길게 보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혁명운동이기까지 하다. 그런 점에서 미투 운동이 최근 안팎으로 불거진 변수로 인하여 자칫 동력이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투 운동이 벌어지는 이 사회 판세에서 발등에 떨어진 또 하나의 불은 ‘저출산’에 관한 갑론을박이다. 극히 최근에 불거진 ‘출산주도성장’이라는 말/의식구조에 대한 전반적인 지탄 분위기는 사실은 그 말을 한 당사자에 대한 분노라기보다는 저출산에 내몰리는 여성/청년들의 상황과 마음에 대해 무지한 사회 분위기에 대한 ‘의례적인 분노’에 가깝다. 여기서 따옴표를 친 까닭은 ‘분노도 애정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는 말에 기대어, 지금의 분노는 그 애정이 탈각된, 분노 그 자체라는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2.
뚜렷한 진전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는 이 ‘미투 운동’이나 개선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저출산’의 사회분위기(-‘아이를 많이 낳도록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는 이 운동이나 상황이 바람직한 진로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이고 뿌리 깊은 원인의 규명과 해법의 모색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투 운동의 근거가 되는 우리 사회의 ‘남녀 차별’이나 ‘남존여비’의 행태를 전복하기 위한 노력은 최근만의 일이 아니라 길게는 수백 년, 짧게 보아도 지난 100년 내내 계속되어 온 운동이다. 또한 ‘저출산’의 근본적인 이유는 청년-여성/결혼 등 대증(對症)적인 접근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이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미투 운동과 저출산의 사회 구조는 우리 사회가 ‘근대’를 넘어서 오는 과정에서 겪었던, 혹은 충분히 겪어내지 못했던 경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즉, 미투 운동과 저출산의 사회구조는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대사회가 지난 100년-200년 사이에 잃어버린 것, 혹은 지체(遲滯)되어 있는 것의 재발견 내지 균형 찾아가기의 일환인 것이다. 아이 낳아 기르는 일은 이 ‘사회와 국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우리 몸속에 내장되어 있는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며, 희망이자, 라는 점은 쉽게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한 본능과 희망마저 거세당하고 대체당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 속에서 나/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지난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추구해 온 ‘근대화’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찾아내고 개정(改正)하고, 개선(改善)하고 새롭게 개척(開拓)해야만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3.
『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조선후기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의 근대화 이야기』는 대한민국의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사상의 뿌리를 찾는 과정이며, 그 뿌리라 할 수 있는 조선사회 근대화의 여정을 따라 걷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그러나 잘못 알고 있던, 오해하고 있던 그 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근대는 외부로부터 이식된 것”이며, “조선사회 내부에는 근대화의 힘이 없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주장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익숙함, 오인과 오해를 전복함으로써 지금 여기 ‘잘못된 현대사회’를 전복하는 길을 새롭게 발굴하고, 펼치며 걸어가는 그 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선은 역사 내내 사회적 약자로 존재했던 여성과 어린이의 해방 과정을 되살리고, 나아가 조선사회 내부에 이미 근대화로의 내재적 힘이 있었다는 점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지난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는 일이 아니다. 역사의 진실을 새롭게, 바르게, 정의롭게 이해하게 될 때, 오늘 우리 사회의 과제인 ‘미투 운동’은 근본에서부터 동력을 얻게 되고 ‘저출산’의 사회구조 또한 “사람 노릇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될 수 있다고 믿는다.

4.
동학은 조선사회의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사상을 제기한 중심 동력이었다. 인간은 평등하며, 따라서 신분적 차이도 없고, 여성도 동등한 인격체라는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사상, 어린이도 한울님같이 생각하라는 어린이존중사상이 동학과 동학교도들 속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서구와 비교해 보아도 시간적으로나 의식(意識) 면에서나 선진적이고 선구적이었다. 동학은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에 대한 혁명적 근대성을 만들어낸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단지 ‘동학의 창도’라는 사건에 의해 돌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동학 창도에 선행(先行)하는 조선시대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연동된 백성의 의식과 힘의 성장, 백성의 성장을 수용하여 소민을 보호하고 언로를 확대한 계몽군주(영조‧정조‧고종), 공자철학을 갱신한 동네유자들의 확산 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조선사회 여성들은 성리학적 규범과 질서에 맞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과 해방의 과제들을 실천해나갔다. 남녀 간 차별은 없으며, 여성도 군자가 될 수 있고, 부부는 동등하며, 여성도 인간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으로 퍼져나갔다. 여성을 억누르는 사상과 질서에 맞서 다양한 상상적 사유를 사회에 전파했다. 그 도구는 여성영웅소설이었는데, 그 소설 속에서 남성을 압도하는 여성영웅의 이야기, 남장 여성, 동성애 등을 통해 조선사회가 부과한 젠더 역할과 규범에 도전했다. 즉, 여성들이 ‘동일성에 근거한 평등의 추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어린이들은 가족 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라났고, 동아시아의 오래된 교육철학과 보통교육제도로 많은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았고, 부모 없는 아이와 굶는 어린이들은 법률을 통해 구제했다.
이처럼 조선사회의 내재적 힘이 집약된 동학은 인간평등‧신분해방‧여성해방의 가치 실현을 통해 ‘대동 평등’ 세상을 실현하려고 했으며, 궁극적으로 어머니의 사랑이 실천되는 ‘모정사회’를 지향했다. 동시에 동학의 거대한 족적은 어린이날의 제정과 어린이운동으로 나타났으며, 어린이를 한울님으로 존중하는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비로소 지난 100여 년 동안의 ‘세계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하위 구조로 강제 편입되는 식민 경험의 트라우마’와 ‘분단과 군사주의 그리고 일방적, 폭력적 서구화 트라우마’를 서서히 극복해 가는 / 갈 수 있는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 바로 이때 우리가 고쳐 매야 하는 신발끈, 아니 새롭게 갈아 신어야 하는 신발이 바로 우리 안으로부터 자라나고 있던 /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내재적 근대화 동력을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 전근대의 어둠을 뚫고 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사상의 기원과 힘을 밝히려는 것이며, 이 길을 걸어왔던 무명의 백성들의 역사에 바치는 헌정서이다.

5.
이 책을 기준으로 조선-대한제국의 근대를 재조명해 보면 다음과 같은 논쟁적인 주장들이 발췌된다.

  1. 서구적 근대화론, 식민지 근대화론을 대체할 내재적 근대화론은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의 면면한 역사를 통해 논증할 수 있다.
  2. 동학은 우리 사회의 여성해방과 어린이존중의 면면한 전통을 받아 안아 근대화의 경계를 넘어서는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3. 아래로부터의 내재적 근대화뿐만이 아니라 계몽군주(정조~고종)들의 위로부터의 근대화 추진, 그들의 근대적 성격과 민족/국가/백성 정책을 재조명해야 한다.
  4. 조선시대 내내 여성들은 유교(성리학)으로부터 억압받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를 다양하게 전유하고 전복함으로써, 여성해방의 동력을 만들어 왔다. 즉, 조선시대 여성들은 성리학적 가부장 질서에 동성애 옹호, 남성보다 뛰어난 여성, 여성(유학)선비, 여성문학, 남장여인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저항하였고,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 냈다.
  5. 조선시대에도 국가 차원에서 아동 구휼 및 복지정책이 시행되었다. 정부에서는 정기적으로 지방관의 ‘아동 구휼 정책’ 시행을 점검하고 이를 태만하거나 방관하는 관리는 엄히 처벌했다.
  6. 조선시대 후기에 창도된 동학의 인간평등사상으로부터 유래하는 우리나라의 어린이존중사상은 그 깊이나 실제운동의 성과 면에서 세계적으로 선구적인 위치에 있었다. 특히 방정환과 김기전의 어린이 존중 사상과 운동은 괄목할 만하다.

■ 책 속으로

조선시대의 여성해방의 진행은 서양과 비교해도 그리 늦은 것이 아니었다. 1860년 수운 최제우는 동학을 창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여종들을 며느리와 수양딸로 삼았으며,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은 인간존중과 남녀평등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서양은 1869년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1806~1873)의 『여성의 종속(The Subjection of Women)』이 발간되면서, 여성의 참정권과 남녀평등 문제가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다. 따라서 조선 사회의 여성해방 흐름은 서양에서 이식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 속에서 성리학적 질서와 규범을 전유했던 여성의 노력이 역사적으로 누적된 결과였다. <27쪽>

조선 사회는 공맹철학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어린이에 대한 교육제도와 시설을 갖추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실시했다. 어린이를 소중한 생명으로 생각하고 집안 가족 모두가 양육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양에서 ‘아동의 발견’을 근대의 징표로 이해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은 서양보다 더 이른 시점에 아동의 발견이 이루어졌다. 국가도 보통교육 제도를 통해 어린이를 보편적으로 가르쳤으며, 부모 없는 어린이와 굶는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법률을 통해 구제했다.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진다는 복지국가의 철학이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이다. <28쪽>

근대로의 이행은 다양한 단계와 경로를 거쳐 진행되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사회에서 여성해방과 어린이 존중을 통해 최종적으로 국민화와 국민국가의 형성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중략) 여성해방도 동학의 인간 평등사상에 의해 동학교도와 백성들에게 확산되었고, 어린이 존중은 동학의 인간 평등사상에 의해 움트기 시작해서 방정환의 어린이날 제정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의 신분해방과 여성해방·어린이 존중은 전 세계적 수준에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46-47쪽>

동아시아지역 차원의 근대는 서양에 의해 이식된 것이 아니다. ‘낮은 근대(low modernity)’ 또는 ‘초기 근대(early modernity)’에서 ‘높은 근대(high modernity)’로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중략) 따라서 ‘보편사적 근대’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이미 조선 사회에 송대(宋代)의 근대적 문명이 전파·적용·진행되었다. 이는 조선사회에도 이미 ‘낮은 근대’ 또는 ‘초기 근대’가 문명 간 패치워크를 통해 안착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55-56쪽>

영·정조 시대의 민국 이념은 고종에 의해 새롭게 부활했다. 고종은 민‘ 국상여(民國相與)’, 즉 “백성과 나라가 서로 함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중략) 백성과 국가는 서로 의지해야 나라가 평안하며, 백성과 국가는 서로 함께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제국은 외형상 황제의 전제정이었으나, 그 황제에 의해 백성의 국가임이 천명된 것이다. <84쪽>

1894년 일본의 경복궁 침공부터 1910년 일제의 한국병탄까지 우리 국민은 16년의 전쟁을 전개했다. 퇴위된 고종은 그 이후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망명을 통한 임시정부 수립 등 다양한 노력을 시도하다가 일제에 의해 독시(毒弑)당했다. 고종의 독시 이후 우리 국민은 공분했고 그 공분은 3·1운동으로 이어졌다. 3·1운동의 중심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이끌었던 동학의 후신 천도교였다. 그리고 1910년 병탄 이후부터 1945년까지 36년의 대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우리 국민은 5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쉼 없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118쪽>

서학과 개화사상 모두 남녀평등과 여성문제에 일정한 근대성을 보여주었지만, 그 한계도 명확했다. 이런 흐름은 서학과 개화파들이 서양의 여성관에 영향 받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선교사들에 의해 서양의 문화가 수용되었고, 박영효와 유길준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후쿠자와유키치(福澤諭吉)도 서양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모성담론의 지배적인 영향은 빅토리아조<1837~1901) 이후 백인 중산층 가정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시기는 ‘가정 중심성(domesticity)’이 탄생한 시기다. 이에 따라 당시 많은 작가들은 “여성의 기본 임무는 남편과 자녀들에게 평화·아름다움·정서적 안정이 있는 천국을 만들어주는 가정적 의무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여성의 역할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여성은 오히려 이 시기에 가정에 더욱 포박되었다. (221-222쪽>

모든 인간은 동등하며 따라서 남녀는 평등하다는 상식적 요구는 근대화의 여정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동서양 모두 여성의 정치 참여는 불가능했고, 각종 법·제도는 불평등을 구조화하는 기능으로 작동했으며, 일상생활은 남성 중심의 위계적 질서가 강력했다. 서양에서 여성은 이혼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조선사회도 이혼과 재혼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사회였다. 18~19세기를 거치며 남녀평등의 주장이 서서히 등장했으며 남성 중심 사회도 조금씩 변화했다. 그러나 지금의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의 문제는 실제로는 20세기적 현상이다. <282쪽>

1922년 5월 1일 경성에서 천도교소년회가 주최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고, 이듬해 1923년 5월 1일에는 천도교소년회를 비롯하여 불교소년회, 반도소년회가 주최하고 동아일보·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어린이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의 어린이날 시작은 1923년 5월 1일이다. (중략) 어린이 존중사상을 가능하게 했던 동학과 천도교의 종교철학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남녀평등, 인간존중사상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던 동학의 거대한 흐름이 그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294쪽>

조선사회는 국가와 민간이 분담하는 구휼정책을 추진했다. “민간에서 유기아·행걸아를 노비·고공·양자로 수양하는 것을 법제적으로 뒷받침하는 유기아수양법(遺棄兒收養法)과, 유기아·행걸아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조치로서 이들에게 급량(給糧)을 시행”했던 것이다. 국가의 구휼은 유기아는 풍흉(豐凶)을 가리지 않고 급량을 실시했고, 행걸아는 흉년에 보리 수확기까지 급량했다. 유기아·행걸아에 대한 구체적인 세부지침까지 만들어서 구휼을 진행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지침뿐만 아니라 급량의 절차와 사후 감독, 의료 대책, 그리고 이런 실무적 일을 지방 차원에서 진행할 절차와 재정 등도 상세히 규정을 해두었다. <305쪽>

조선사회는 유교와 과거의 영향으로 교육을 중시하였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인구 증가, 시장 성장, 국가의 장려 등에 힘입어 민간이 설립한 초·중등교육기관인 서당이 확산되었다. 『목민심서(牧民心書)』 「예전(禮典)」에 의하면, 19세기 초에 서당이 대개 4~5개 마을마다 존재하여 서당마다 선생이 ‘아동 수십 명’을 가르쳤다. 18세기 중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조선의 서당 수는 2만1천여 개소, 훈장은 2만1천여 명, 학동은 26만여 명에 달한다고 추산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헌창은 1794년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수록된 전국의 동리수(洞里數)는 39,456개이고 『조선총감부통계년보(朝鮮總督府統計年報)』에 의하면 1910년 말 동리수(洞里數)가 68,819개인 것으로 보아, 19세기 초에 서당은 1만개에 달한 것으로 보았다.『조선총독부통계년보』에 의하면, 1911년 전국의 서당 수는 16,540개, 수학(修學) 아동 수는 141,604명이었는데, 조선인이 설립한 각종 사립학교는 1910년 2,225개였다. 경제침체기인 19세기에 서당이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325쪽>

동학의 핵심인 내유신령, 외유기화, 수심정기는 어린이를 대하는 것이며,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시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 영세불망만사지(永世不忘萬事知)”의 13자 주문도 궁극적으로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해월은 1886년 「내수도문(內修道文)」에서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은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이를 치면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화순하기만 힘쓰옵소서”라며, 어린아이를 한울님과 같이 대하는 것이 도의 길임을 밝혔다. <327쪽>

천도교소년회는 “만 7세부터 만 16세까지의 소년으로 조직”되었으며, “소년들의 덕지체의 발육을 위한 실행방법을 강구”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했다. (중략) 천도교소년회는 새로운 인격의 향상을 기르는 것과 동시에 동학의 정신과 종교 활동을 바탕으로 소년 대중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는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운동은 이처럼 동학의 어린이 존중사상을 바탕으로 시작된 것이다. <353쪽>

지금과 같은 의미의 어린이의 의미로 대중에게 확산되고 정착된 것은 잡지 『어린이』의 창간부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어린이’란 용어가 보편화되고, 어린이를 중요한 존재로 확인하게 된 획기적 전환 지점에 잡지 『어린이』가 있고, 방정환의 어린이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정환 스스로도 (중략) “‘애 녀석’, ‘어린애’, ‘아해놈’이라 는 말을 없애 버리고 ‘늙은이’, ‘젊은이’란 말과 같이 어린이라는 새 말이 생긴 것도 그때부터의 일이요, 어린이의 보육, 어린이의 정신지도에 유의하여 여러 가지의 노력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의 일입니다.” 방정환은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는 과거의 용어를 폐기하고 모두가 동일하게 존중받는 의미에서 어린이란 단어를 제기한 것이다. <356쪽>

방정환의 종교적 실천과 조국의 독립과 미래를 위한 행동은 어린이운동으로 집약될 수 있다. 가장 깨끗한 ‘인내천의 천사’인 한울님으로서 어린이들을 위한 실천, 그리고 조국의 독립을 위한 미래의 일꾼으로서 어린이운동은 불가분 결합되어 있었다. 그의 종교적 신념과 식민지 조국의 현실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이 바로 어린이 존중사상이며 어린이운동이었다. <376쪽>

방정환은 동학과 천도교의 교리 속에서 어린이를 발견했고, 식민지 조국의 독립을 위한 3·1운동 과정에서 절망과 희망을 교차적으로 경험하면서, 어린이를 앞세워 희망을 조직해 나갔다. 그에게 식민지 조국의 어린이들은 일제의 강점에 의한 억압과 어른에 의한 억압을 동시에 받는 가장 순수한 존재였다. 어린이는 어른과 동일한 인간으로 대우 받고 존중받아야 하며, 동시에 독립된 인격으로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주역이었다. <393쪽>

서양의 근대화를 추격해 가면서 겨우 발전해 나간 저발전의 동아시아와 조선이었다는 우리의 통념은 우리의 실제 역사를 왜곡된 관점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중략) 방정환이 주동하여 시작된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날 제정은 우리 역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였으며, 세계사적으로도 터키 바로 다음으로 앞선 것이었다.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는 어린이운동은 동시에 짓밟히고 학대받는 조국의 미래와 독립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신분해방과 인간평등의 세상을 향한 동학의 거대한 족적은 어린이운동과 어린이날 제정으로 나타났으며, ‘어린이 존중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아동의 발견’을 넘어 인간평등의 한울님으로 어린이를 존중하는 사상이 조선의 후기에 잉태하여 사회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394-395쪽>

■ 차례

서론 : 조선의 근대를 만든 ‘무명’의 사람들을 찾아서

1. 근대의 여정: ‘민국(民國)’의 사람들
2. 근대의 경계(境界): 여성해방과 어린이 존중

2장 조선의 근대를 들여다보는 방법

1. 서구가 만들어 낸 근대와 조선의 민본(民本)
2. 있는 그대로의 삶의 역사: 공감해석학적 접근과 일상사적 접근

3장 ‘유동하는’ 조선 사회 : 신분제의 와해와 평등사회에 대한 갈망

1. 전쟁의 여파와 사회 변화: 국가 불신과 새 세상에 대한 갈망
2. 민국 이념의 확산: ‘왕과 사대부의 나라’에서 ‘백성의 나라’로
3. 민(民)의 저항과 새로운 주체의 성장 : 민압의 시대에서 민란의 시대로

4장 조선시대의 여성: ‘어둠’에서 ‘빛’으로

1. 동아시아의 여성관과 모정주의
2. 성리학적 질서와 조선시대 여성 : ‘성리학의 구렁’에 빠진 여성들
3. 성리학적 질서에 맞선 조선의 여성들
4. 조선 후기 여성해방의 흐름과 동학사상
5. 서양의 여성관과 여성의 지위
6. 근대화 과정에서의 동서양의 여성문제 비교 연구

5장 조선시대의 어린이 : 인내천의 천사

1. 조선사회의 어린이
2. 조선사회의 어린이교육
3. 고종의 교육개혁
4. 방정환의 교육사상과 어린이: 인내천의 천사
5. 서양의 아동문제
6. 조선사회의 어린이와 근대: 동학과 소파 방정환

6장 마치며: 근대의 경계를 넘은 사람들


■ 저자 및 역자 소개

김종욱:
동국대학교 사회과학연구(SSK) 패치워크문명연구팀 연구교수(전문연구원)
동국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행정관,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민주연구원 부원장,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거쳤다.
 『북한의 일상생활세계』(한울, 2010, 공저),『박근혜현상』(위즈덤하우스, 2010, 공저),
 『경제와 사회민주주의』(한울, 2012, 번역서),『북한의 권력과 일상생활』(한울, 2013, 공저), 『분단의 행위자-네트워크와 수행성』(한울, 2015, 공저) 등의 저서와「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시아 외교전략과 우리 정부의 정책방향」(2009),「북한의 인권실태 조사방법에 관한 새로운 모색」(2009),「한반도 평화공영체제 구성과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2011),「예외상태의 일상화와 통치술로서의 국방위원장 체제」(2013),「조선후기 동학의 여성해방사상과 근대성」(2018)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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