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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파선언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9. 2. 17:56

개벽파선언

다른 백년 다시 개벽

■ 이 책은…

‘개화파 / 척사파’로 구분해 온 한국 근대사상사에 ‘개벽파’라고 하는 제3의 길과 사상과 운동이 있었음을 주목한다. 근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기반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를 전망하는 두 젊은 ‘개벽세대’ 사상가는 개벽파의 사상이 근대 100년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낸 21세기 한국의 첫 번째 사상이며,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한 사상독립 선언임을 설파한다. 개벽파의 사상은 동서고금의 대합장을 통해, 자유 너머 자연을, 민주주의 너머 삼경(三敬: 敬天 敬人 敬物)주의를, 공화정 너머 하늘정(天政)을 전망한다. 이로써 오늘 지구촌 인류가 직면한 기후붕괴, 생물 대멸종, 양극화의 위기 너머 지금 여기에서 미래의 생명평화 세계를 기약할 수 있음을 선언한다.

 

  • 분야 : 철학
  • 지은이 : 조성환, 이병한
  • 발행일 : 2019년 9월 20일
  • 가격 : 15,000원
  • 페이지 : 352쪽(두께 19mm)
  • 제책 : 무선
  • 판형 : 150mm ✕ 210mm
  • ISBN : 979-11-88765-57-7 (03100)

 

■ 출판사 서평

21세기 한국 사상계의 최전선! 한국어로 된 세계적 담론이 시작된다!!!
개화파와 척사파 – 세계 열강 사이-너머의 개벽파가 되살아 온다!!

최근 한국 사회의 요동은 19세기 중엽 - 20세기 중엽 1세기 동안 동아시아에 서세동점으로 다가온 자본주의의 세계화 과정(제국주의)에 한반도 차원에서 개화파와 척사파로 분열하여 대응하던 당시 상황과 대비된다. 다만, 지금은 인류가 지구적 규모의 대재앙을 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현실(인류세)이 더해지면서, 그 규모가 전 지구적으로 더욱 심화 확장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는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라는 지난 150년 역사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임계점에 도달해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개벽파선언>은 이미 150년 전부터 이미 한국 사회에 ‘개벽파’라고 하는, 개화-척사의 사이-너머에서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추진하던 세력이 있었음을 재발견하는 선언이다. 나아가 개벽파가 한국 근대사의 최심층의 기반이 되어, 불굴의 저항정신, 신문명 창조운동과 민족운동으로 실현되었다는 것,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의 실제 동력으로서 최근의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오래된 미래’와도 같은 <개벽파선언>은 대개 다음과 같은 거대한 인식의 흐름을 반영한다. 조성환과 이병한은 문명사의 빅히스토리를 담대하게 펼쳐 나간 유발 하라리보다 더 도발적으로, 서양 철학이 아닌 동양 철학과 사상의 가치와 가능성과 우수성을 피를 토하며 설파했던 도올 김용옥보다 파격적으로, 개벽파 시대의 시작을 선언한다!

첫째, 오늘날 전 세계적인 산업문명(1-2-3-4차)은 서구(유럽)에서 시발한 예외적인 근대화 방식이 폭력적 수단을 매개로 전 세계를 압도하는 독점적 ‘세계문명’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기후위기 – 6번째 대멸종 위기 등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 폐해와 한계는 뚜렷하다.

둘째, 서구(서유럽) 이외의 세계(유라시아-아프리카-남미-동유럽과 러시아) 지평에서 지난 2세기 동안의 서구중심 근대화에 밀려 도태되거나 유폐되었지만, 각 지역(민족.국가)에 공통적으로 전통사상을 기반으로 한 생명친화적, 상생상화적인 근대화의 움직임이 존재했다.

셋째, (서구 중심의) 근대화-산업화의 폐해가 각국/지역의 모순을 격화시키고, 인류공멸의 위기를 불러오자 대안적인 노력으로 전통사상 기반의 자생적/토착적 근대화 사상과 운동을 재조명-부활시켜 계승하려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점점 뚜렷한 흐름으로 포착된다.

넷째, 한국 근현대사에서 서구적 근대에 저항하고, 비서구적 근대의 비전을 제시한 ‘개벽파’가 있었다. 이들은 1860년 동학 창도 이래로 ‘개벽종교’의 방식이나 ‘개벽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자주적, 영성적, 자생적, 토착적, 생명적 근대의 비전을 온축하며 계승되어 왔다.

다섯째, 개벽파는 서구적 근대 – 개화파에 밀려 좌절과 굴절을 겪었으나, 그 정신과 에너지는 동학농민혁명, 3.1운동, 독립항쟁과 4.19혁명, 민주화운동과 촛불혁명 등으로 쉼 없이 이어져 왔으며, 이제, 그 진면목을 드러내어 민주화-산업화 이후를 전망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여섯째, ‘개벽파’의 눈으로 한국근대사를 다시 봄으로써 한국 사회에 대안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근대(산업/서구중심/물질)문명의 지평을 혁명적으로 초극하여 생명 중심의 근대-이후를 조명하여, 전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문명의 창조를 지향하고자 한다.

한국근대사 ‘삼세번째’ 선언, 개벽사(開闢史)를 새로 쓰자
개벽파, 개벽세대, 개벽학, 개벽운동, 개벽세상을 향하여

본래 ‘개벽’은 ‘천개지벽(天開地闢)’으로서, ‘백뱅’이나 ‘천지창조’ 같이 이 세계의 ‘물리적 최초의 탄생’, 즉 ‘선천개벽’을 의미한다. 그러나 1800년대 중엽 이래 한국 사회에서의 ‘개벽’은 선천개벽만큼의 위력과 의의를 갖는 새로운 개벽, 즉 ‘후천개벽’을 의미하는 ‘다시 개벽’의 준말이다. ‘다시개벽’은 ‘정신개벽’이며, ‘인문개벽’이며 ‘사회개벽’을 의미한다. 서구적 ‘개화’에 대응하여 한국적 ‘개벽’으로서 ‘중세’ 이후 시대를 준비하고자 했다는 말이다. 이러한 ‘개벽’이 하나의 ‘파(派)’를 형성하고 ‘학(學)’을 낳으며, 개벽대학, 개벽도시, 개벽국가, 개벽세상을 지향해 나간다는 것이 <개벽파선언>이다.

첫째, <개벽파선언>은 ‘기미독립선언서(1919)’ ‘한살림선언(1989)’에 이은 삼세번째 선언이다.

개벽파선언은 다시 개벽의 부활과 재건을 선언하고 선창하고 선포한다. 이때 ‘기미독립선언서’는 일본에 대한 독립 선언이 아니라, 침략주의, 강권주의로 점철된 근대세계의 지평을 넘어 ‘새 하늘 새 땅에 사람과 만물이 모두 새로워지는’ 삼재(三才)의 신문명 세계를 지향한 선언이다. 또 ‘한살림선언’은 근대문명을 대체하는 생명과 생활과 생존의 신문명을 지향하는 선언으로 올해 그 30주년이 된다.(*삼세번은 우리 전통에서 ‘완성’의 의미이다.)

둘째, <개벽파선언>은 동학 창도 이래 ‘다시 개벽’의 꿈을 현실화하는 ‘개벽 2.0’의 선언이다.

따라서 개벽파는 서구적 개화에 중독(中毒)된 한국(동아시아)을 치유하는 디톡스 운동, 그것을 포월(包越: 포함하며 초월함)하는 선언이다. 이런 맥락에서 18세기의 인권선언, 19세기 공산당 선언, 20세기 기미독립선언과 21세기 ‘사이보그선언’ 등은 개벽파선언의 전사(前史)이다. ‘식민지근대화론’를 넘어 ‘반일종족주의’ 운운하는 반동적 역사 인식도 대응해 나가야 할 문제지만, 오랫동안 그 대응논리로 개발해 왔던 ‘실학론’이라든지 ‘근대맹아론’ 같은 대응논리도 파탄에 이르렀다. 최근 사태로 일본은 여전히 한국을 ‘미개몽매(未開蒙昧)’한 국가/민족으로 바라본다는 점도 명백해지고, 미국에게 한국은 일본의 종속변수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바로 지금이야 말로, <개벽파선언>은 한국 근현대사를 ‘개벽사(開闢史)’로 다시 써야 한다고, 쓸 수 있다고, 쓰자고 제안한다.

셋째, <개벽파선언>은 한국이 ‘개화의 후진국’이 아니라 ‘개벽의 선진국’이었음을 선언한다.

오랫동안 한국인은 ‘근대화 실패 – 식민지 치하’라는 등식에 따른 콤플렉스에 시달려 왔지만, 개벽파선언의 관점에서는 “일본에는 왜 동학혁명이나 촛불혁명이 없는가?”를 묻고, 일본이야말로 ‘탈아입구(脫亞入歐)’와 ‘공미(恐美)’ 사이를 오가며 오늘에 이른 불완전/비정상국가라고 진단한다. 즉, 오늘의 일본 사회가 또 다른 의미의 ‘전체주의 국가’이며, 근현대사에 대한 반성을 할 줄 모르는 / 할 수 없는 ‘무지몽매(無知蒙昧)’한 ‘전근대국가’라는 것이다.

넷째, <개벽파선언>은 한반도의 통일이 개벽에 의한 개벽으로의 통일이라는 점을 선언한다.

개벽파의 눈으로 한반도 문제를 천착하면, 예컨대, 개성(開城)은 곧 ‘개벽도시’에 다름 아니다. 하여 ‘개성공단’이라는 ‘산업화시대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개성을 “국제적 개벽도시”로 만들고 ‘국제개벽대학’을 세워 개벽학(開闢學, 미래학, 지구학)을 연구하자는 제안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1세기 전 개화기에 잘못 꿰어진 역사의 단추를 새롭게, 바르게, 정당하게 다시 채워 나가는 새 출발점, 개벽기(開闢期)이다. 자주자립한 국가/민족으로서만, 우리는 세계와 함께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음을 새삼 재인식할 때다.

다섯째, <개벽파선언>은 ‘개벽사상’이 지구학이자 미래학으로 성장해 갈 것임을 선언한다.

지난 150여 년 동안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극빈국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정치적으로 식민지 경험과 분단, 군사독재 체제로 이어져 온 난관을 뚫고 민주화를 달성하였다. 최근 들어 BTS를 필두로 한 ‘제2기 한류’ 열풍으로 전 세계를 격동시키고 있다. ‘한류 2.0’은 대중문화 중심의 제1기 한류의 한계를 극복하며 한국의 심층문화와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지난 1500년 동안 중화문명의 변방에 있으면서도, 문화적 사상적 독자성을 견지해 온 저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섯째, <개벽파선언>은 ‘개벽사상’이 지구학이자 미래학으로 성장해 갈 것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우리가 서구문화의 폭격 속에서, 창조적인 재창조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해 온 성과이다. 동학 창도 이전까지 오랫동안 한반도의 제 국가는 ‘천하-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세계 체제’ 하에서 존속해 온 반면, 동학은 ‘개벽사상’은 물론 ‘동학(東學) - 우리(東邦, 東國) 학문(學文)’의 독자성과 세계성(天道)을 천명함으로써 한국적 사상과 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기틀을 조성하였고, 그것이 2000년대 이후 수차례의 문화적 들물-썰물을 거쳐 최근의 ‘한류 세계화’의 성과로 제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일곱째, <개벽파선언>은 ‘새로운 길 – 다시 개벽의 길’로 나아가는 징조라고 선언한다.

촛불혁명을 지나온 우리 정부/국민/시민이 한결같이 소재와 부품의 국산화에 관한 관심과 필요성을 공감하며 공통의 관심과 의지로 뒷받침하는 현실을 주시한다. 이는 단지 한일 간 경제 관계만이 아니라, 지난 70년 동안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힘입어 성장과 발전을 구가해 온 우리 사회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광기는 한국 사회가 이러한 구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금단증상’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덟째, <개벽파선언>은 개벽학이 전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21세기 최전선임을 선언한다.

개벽파선언자의 한 명인 이병한은 전작(前作) 『유라시아 견문 1,2,3』(서해문집)에서 보여준바 세계 100개 나라, 1000개의 도시를 편력한 결과이자 결론으로 ‘개벽파’요 ‘개벽학자’임을 자처하며 개벽파선언 집필에 임하였다. 또 다른 한 명인 조성환 역시 전작 『한국근대의 탄생: 개화에서 개벽으로』(모시는사람들)에서 이미 서구적 개화에서 한국적 개벽으로의 전환을 모색한 이력을 갖고, 이병한과 합을 맞추며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도달한 결론은 ‘개벽파’의 흐름은 한국이 선창하고, 세계가 후창할 수 있는 미래학, 지구학, 보편학으로서 가치와 의의와 파급력을 갖추고 있다.

아홉째, <개벽파선언>은 세대개벽으로 개벽세대를 길러 미래 세계로 나아가기를 선언한다.

두 사람의 합창에 화답하고, 메아리를 만들어 생생한 활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개벽학당’의 ‘벽청(개벽하는 청년들)’이다. 이들은 이미 ‘공청(공공하는 청년들)’로서 ‘평화하자(Let’s Peace)와 같은 생기발랄한 프로젝트를 가지고 동학공부와 한반도 편력을 한 것은 물론이고, 유라시아 철도를 타고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달려가며 평화와 생명의 메시지를 전한 ‘청년’들이다. 이들이 두 스승(이병한/조성환)을 만나 개벽하는 청년, ‘개벽 세대’를 자임하고, 세대 개벽을 기약함으로써 <개벽파선언>에 현실감과 입체감, 생동감과 장래성까지를 불어 넣어 주었다.

열째, <개벽파선언>은 역사적 배경, 철학적 구조, 현재적 실체, 미래적 지향을 선언한다.

책으로서의 <개벽파선언>이 자기 완결적인 매듭을 지으면서, 다시 ‘개벽포럼’ ‘개벽신문’ ‘개벽살롱’ ‘개벽연구회’ 등의 연계 프로그램과 상호 교류, 상생상화 작용을 통해 ‘개벽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우리 사회에 깊이 그 뿌리를 드리우는 한편, ‘벽청’이나 ‘자칭 개벽파’ ‘범개벽파’ 들을 아우르며 점점 그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즉, <개벽파선언>은 단지 선언으로 그치지 않고, 21세기의 “개벽(파)운동”으로서 한반도에서의 생명평화 통일, 동아시아의 상생상화 질서, 세계-지구촌의 생태지속 문명을 지향한다. 한편으로 개벽파선언과 운동은 이를 뒷받침할 ‘개벽학’의 정립에서도 성과를 보이는바, 이는 개벽학은 곧 미래학이요 지구학으로서 인류 역사의 대전환을 전망하는 미션을 감당한다.

열한째, <개벽파선언>은 ‘개벽정치’ 창조, ‘개벽경제’ 창안, ‘개벽문화’ 창달을 선언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가 이미 인류의 생존과 생활과 생명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사명과 수명 천명을 다했다는 인식을 근거로 합니다. 확실히 지금 한국 사회는 물론이요 ‘팍스아메리카나’의 나라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문명은 ‘6번째 대멸종’을 향해 질주하는 지구호를 구제할 뚜렷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모든 관심과 정력은 정권교체를 어처구니로 하여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이는 일찍이 동학(천도교)가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의 삼대개벽(三大開闢)으로 ‘민주정치, 민주경제, 민주문화’의 삼민주의를 지향했던 것과 비견된다.

하여, <개벽파선언>은 선언한다!
흩어진 개벽파를 세력화하고! 투박한 개벽론을 세련화하며! 수줍은 개벽학을 세계화한다!

■ 차례

여는 글 / 이병한
이병한 / 다른 백년, 다시 개벽
조성환 / 개벽의 힘 _ 한국 근대의 탄생
이병한 / 또 다시 개벽 - 인류세의 시대정신
조성환 / 바람이 분다, 다시 개벽의 신바람이
이병한 / 민주화를 넘어 ‘다시 개벽’으로
조성환 / 지금은 ‘ 개벽학’이 필요한 때
이병한 / 개벽학은 미래학이요 지구학이라
조성환 / 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이병한 / 삼일절은 개벽절이다
조성환 / 삼일절 200주년을 준비하며
이병한 / 세대개벽이 필요하다, 개벽세대를 양성하자
조성환 /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이병한 /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우자. 고려청우당을 재건하자
조성환 / 중도와 개벽
이병한 /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유교 3.0
조성환 / 유학과 개벽
이병한 / 개벽 좌우파의 대연정: 나라살림과 지구살림
조성환 / 좌우남북의 공통가치: 하늘살림
이병한 / 뜻으로 본 서학사
조성환 / 새로 쓰는 천학사
이병한 / 한살림선언 2.0: 궁궁(弓弓)의 그물망(www)
조성환 / 개벽세대를 기르자
이병한 / 선언 이후: 세대화, 세계화, 세력화
조성환 / 개벽하러 가는 길
다시 여는 글 / 조성환

 

■ 책 속으로

● 개벽파선언! 철학자와 사학자가 나누는 이 대화에 임하는 저의 기대부터 밝혀 두려 합니다. …제 선생님과 선배님들이 서술한 한국 근현대사는 한마디로 ‘개화사’입니다.…저는 지구사의 대반전을 맞춤하여 ‘개벽사(開闢史)’를 새로이 쓰고 싶습니다. 1860년 동학 창도 이래 150년사를 통으로 갈아엎고 싶습니다.…개벽사의 서술은 개벽학 수립으로 나아갈 것입니다.…개벽대학을 염원합니다. 그리고 새 학파의 등장은 새 정파 탄생의 마중물이 될 것입니다. <19쪽 / 다른 백년, 다시 개벽>

●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하고 직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29쪽 / 개벽의 힘 _ 한국 근대의 탄생>

● ‘다시 개벽’이 19세기의 자각이었다면, 21세기는 ‘또 다시 개벽’의 유레카를 외칠 만한 것입니다. 고로 개벽파는 코즈모폴리턴, 세련된 세계시민마저 돌파합니다.…개벽인이야말로 진정한 지구인이며, 하늘과 더불어 지구의 운명을 개척하는 ‘개벽꾼’이야말로 참말로 하늘사람입니다. 국민(國民)에서 천민(天民)으로, 민국에서 천국으로. 그런 기상과 기개가 있어야 기미년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기해년의 ‘선언’(Manifesto)에 값할 것입니다. <37쪽 / 또 다시 개벽- 인류세의 시대정신>

● 다시 왜 개벽사를 써야 하는가로 돌아갑니다.…술(述)이 아니라 작(作)이 필요합니다. 선도하는 쪽은 오히려 개화우파 같습니다.…그쪽에서는 ‘제3의 개항’이라는 말도 즐겨 씁니다. ‘또 다시 개화’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서둘러 1860년 동학 창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개벽기’라는 시대인식을 바로 세워야 하겠습니다. 개벽의 흥망성쇠를 개화의 물결과 견줌으로써 우리의 근대사 또한 한층 풍요롭고 더욱 온전하게 복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63쪽 / 민주화를 넘어 ‘ 다시 개벽’으로>

●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목하 21세기 동아시아의 변화를 추동하는 진원지는 한반도입니다.…지난 40년 중국의 개혁개방이 세계체제를 격변시켰다면, 앞으로 40년은 북조선의 개혁개방이 그 못지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입니다.…문명개화에서 신문명개벽으로의 대반전을 우리가 앞장서야 합니다. 개화학에서 개벽학으로의 대전환을 우리부터 솔선수범해야 합니다. 생명(生命)을 곧 혁명(革命)이자 천명(天命)으로 삼는 신문명을 창조하고 개창합시다. <90쪽 / 개벽학은 미래학이요 지구학이라>

● 중요한 것은 어느 분야에 있든 개벽의 정신과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무엇’을 개벽하느냐보다는 개벽을 ‘한다’는 의식이 중요한 거죠. 그리고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쉽게 좌절하지도 않고 자만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무엇’에 초점을 맞추면, 그 ‘무엇’을 얻는 순간 개벽은 멈추게 됩니다. 반대로 얻지 못하면 지쳐서 개벽을 포기하게 되고요.…“개벽에 일정한 대상을 두지 않는다”[開闢無常]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103쪽 / 근대의 성찰과 개벽의 귀환>

● 천도교의 근대를 ‘번역의 근대’가 아닌 ‘해석의 근대’라고 하였습니다. 서양 근대사상을 동학· 천도교의 틀로 재해석하여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천도교 이론가인 이돈화도 『신인철학』(1930)에서 서양의 ‘과학주의 진화론’과 대비되는 ‘수운주의 진화론’을 설파하였습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약육강식의 원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동학사상에 의탁해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해석의 근대’라고 볼 수 있겠지요. <126쪽 / 삼일절 200주년을 준비하며>

● 본디 저는 백년 전 《개벽》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개벽 2.1’ 미디어를 먼저 선보이고 싶었습니다.…학당을 열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 매체와 학당을 통하여 배출되는 미래인=개벽인들이 주역이 되는 창당도 멀리 내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21세기 새 정치의 주체들이 재건하는 신문명국가신문명 국가, 동학국가동학국가의 탄생을 염원했었습니다.…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돕는 것일까요? 겹겹의 인연과 우연이 포개져 조기에 개벽학당의 문을 열었습니다. <148~149쪽 / 세대개벽이 필요하다, 개벽세대를 양성하자>

● 기존의 동아시아담론은 유학 아니면 개화학 중심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근대는 개벽학이 만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도 이성적 근대가 아닌 영성적 근대였습니다. 동학에서 ‘하늘’을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삼일운동에서 기독교가 참여한 것도 ‘새 하늘 새 땅’을 건설하고자 하는 개벽정신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동서합작’인 셈입니다. 이것이 개벽의 길이자 개벽정신입니다. <155쪽 / 새로운 하늘이 열리고 있다>

● 개성을… 21세기형 문명도시로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14-15세기의 베니스, 17-18세기의 암스테르담, 20세기의 뉴욕을 참조해 볼 만합니다. 응당 북과 남으로는 성에 차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동북아연합의 국제개벽대학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웁시다. 그리고 ‘고려청우당’도 재건합시다. 그래서 그 개벽인과 미래인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 가는 통일된 동학국가의 대망과 대업도 완수합시다. <179쪽 / 개성에 개벽대학을 세우자. 고려청우당을 재건하자>

● 동학/천도 교·증산교·대종교·원불교 등등이 비록 종교의 형태는 달랐지만 모두 ‘개벽’이라는 공통가치를 100년 넘게 계승하고 상생해 왔습니다. 우리가 개벽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목적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 잃어버린 공통가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해방정국이 ‘좌’나 ‘우’라는 편도(偏道)를 고집했다면, 그리고 해방 이후가 ‘개화’라는 편도(偏道)로 치달았다면, 지금부터는 이들을 아우를 수 있는 중도(中道)를 ‘개벽학’이라는 이름으로 찾아보려는 것이지요. <191쪽 / 중도와 개벽>

● 실리콘밸리 절반이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계인바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대융합, 신대륙과 구대륙이 회통하는 창조적인 허브가 되었습니다.…캘리포니아 전체가 200년 전 토크빌과 2000년 전 순자를 융합하여 제도개벽(Renovating Democracy)을 실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북을 아우른 고려(코리아)가 캘리포니아만 못할쏘냐 싶습니다. 모던 군자들 또한 유교를 대학의 학술에만 가두지 말고 현실과 현장 속의 경세학으로 거듭나게 해야 할 것입니다. <206쪽 / 해방공간의 재재인식: 유교 3.0>

● 개벽좌파와 개벽우파의 대연정…좌/우의 갈등을 넘어서, 남/북의 분단을 넘어서 개벽과 개화의 대합장과 대합창을 견인할 수 있지 않을까 궁구해 보는 중입니다.…20세기의 최대 연합전선이었던 신간회는…끝내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21세기 최대 연합노선 ‘신간회 2.0’은 필히 개벽 좌/우파가 선창하는 편이 이롭지 않을까 싶습니다.…분단체제 극복 운동의 대들보로서, 리셋 코리아의 디딤돌로서 개벽 좌우파의 대연정부터 촉구하는 바입니다. <234쪽 / 개벽 좌우파의 대연정: 나라살림과 지구살림>

● 제가 특히 되살리고 싶은 용례는 …‘동사로서의 하늘’입니다. “내 마음을 하늘같이, 내 기운을 하늘 같이 한다”[天我心, 天我氣]는 말이 그것인데,…중국고전에서는 ‘天’(천)이 동사로 사용되는 용례는 보지 못했습니다.…한국의 ‘하늘’은, 특히 동학이나 천도교에 이르면, ‘하는님’(윤노빈)이나 ‘일하는 하늘님’(김지하)이라는 해석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의 ‘활동’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지금의 개벽학도 이렇게 하늘하는 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246쪽 / 좌우남북의 공통가치: 하늘살림>

● ‘원주학파’, 한살림운동은…문명의 대전환을 앞서 탐구했습니다. 천주교와 천도교의 창조적 회통을 통하여…우주적 민주주의를 숙고했던 것입니다.…‘하늘과 하나 되는 한울사람’으로의 승화에 천주교가 먼저 자리하여 천도교를 재발굴하고 재결합시켜 가는 신문명운동으로 도약했던 것입니다. 서학의 회심으로 말미암아 동학을 회생시키는 이 대반전의 계기가 온전히 해명되어야 ‘뜻으로 본 서학사’도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49~262쪽 / 뜻으로 본 서학사>

● 개벽종교의 개벽성은 성속합작과 천인공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에 있는데, 동학의 천인상여와 증산교의 신인합발이 그것입니다.…최시형이 “사람이 하늘이고[人是天] 하늘이 사람이다[天是人].”라고 한 것도 천인상여적 천인관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하늘과 인간이 함께 세상을 개벽한다.”는 의미에서의 천인개벽이라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종래의 천인관을 개벽했다는 의미에서의 천인개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268~269쪽 / 새로 쓰는 천학사>

● 제4차 산업혁명도…1차 디지털혁명이 합당합니다.…그에 부응하는 다른 100년과 새로운 500년을 준비하는 원대하고 웅대한 비전이 절실합니다.…우리가 2019년을 기점으로 개벽파를 선언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습니다. 경주의 동학도시와 원주의 하늘도시와 익산의 개벽도시와 영월의 신문명 도시와 여주의 한글도시, 전주의 동학도시 등등이 촘촘히 묶이고 엮여서 만들어 가는 네트워크 국가, 하늘나라 동학국가를 상상해 봅니다. <289쪽 / 한살림선언 2.0: 궁궁(弓弓)의 그물망(www)>

● Blockchain과 BTS. 기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개벽파선언>은 시중(時中)을 꿰뚫고 꿰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흐뭇합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선언이 실언과 망언이 아니라 씨앗과 밀알이 되는 관건 또한 시운(時運)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지인의 조화도 때가 맞아야 이루어집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 신도 우주도 공명합니다.…2019년, 하늘사람들의 집합적 커밍아웃 ‘개벽파선언’이 상서로운 까닭입니다. <307쪽 / 선언 이후: 세대화, 세계화, 세력화>
 

■ 저자 소개

조성환 _ 개벽학 연구자. 개벽학당 모시는 선생님. 하늘학회 창립 멤버.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 젊어서 중국철학을 공부하다, 불혹의 나이에 한국철학으로 전환하고, 지천명에 개벽을 알았다. “한국철학 어떻게 할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한국의 근대를 개화가 아닌 개벽의 관점에서 다시 읽고 있다. 『한국 근대의 탄생』을 썼고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번역하였다. 은퇴하기 전까지 《개벽사상사》와 《한국사상사》를 완성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장자와 최시형과 브룩 지포린의 철학을 좋아하고, 개벽학당 학생들과 고전 강독하는 것을 즐긴다

 

이병한 _ 2018년부터 원광대학교의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에서 개벽학을 연구하고 있다. 2019년 3월 출범한 ‘개벽학당’의 당장으로 벽청(개벽하는 청년)들과 더불어 동서고금을 회통한 신문명을 모색한다. 벽청들 사이에서는 방랑자(放浪者, 호로샤)의 약칭으로 ‘로샤’라고 통한다. 로샤를 음차한 “로사”(路思)를 호로 삼아도 무방하다고 여긴다. 길에서 생각하는 사람이자(Thinker on the Road), 생각의 새 길을 여는(New way of Thinking) 사람이라는 뜻을 담았다. 동아시아 냉전사가로 지나간 100년을 훑었고, 유라시아 문명사학자로 오래된 1,000년을 살폈다. 갈수록 역사학자로서의 정체성은 희미하고 흐릿해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탐구보다는 미래를 기획하고 기투하는 미래학자에 점점 더 근사해진다. 기왕이면 너무 늦지 않게 ‘학자’라는 꼬리표까지 훌훌 떼어내면 좋겠다. 다음 100년을 기획하고 다른 100년을 연출하는 미디어 창업자이자 교육 혁신가가 되고 싶다. 그 편이 본디 동아시아의 지식인, “士”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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