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 책이야기

개벽, 주인으로 바로서기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9. 10. 13:00

하이(김민지)

이 글은 《개벽신문》 제87호(2019.08)에 게재되었습니다.

【편집실 주】이 글은 '개벽학당'(당장 이병한) 2019년 1학기 공부의 하나로 '개벽파선언'('다른백년' 연재분)을 읽은 소감을 벽청(개벽하는 청년들)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모두 10명의 글을 앞으로 차례로 소개합니다.

청년들이여, 사상을 품자!

개벽학당, 몸공부 시간

조성환 선생님과 이병한 선생님께서 몇 달간 주고받으신 <개벽파 서신>("개벽파 선언")을 읽었다. 개벽학당에서 한 학기동안 공부하고 깨달았던 것을 복습하고 보충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개벽학당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개벽파 서신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종강을 앞두고 다시 들춰보자, 지난날과 달리 술술 읽혔다. 그래서 공부를 잘 했구나 싶었다.

개강 첫날 아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요새 청년들이 빌빌대는 건 집도 돈도 없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사상이 없어서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전율이 올랐다. 격한 공감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커리큘럼의 중반부를 지날 즈음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최제우의 동학 창시로 시작해 개벽사상을 품은 삼일운동까지, 거기 담긴 우주적 비전과 전망에 대해 난생 처음 접하고 난 직후였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이 땅의 조상들이 말하고 기획하고 실천해 나가던 내용이었다. 소수의 엘리트 집단도 아니고, 한 시절 한반도 방방곡곡 동학에 입교한 자를 못 만나기 힘들 만큼 널리 성했다고도 했다. 이토록 웅숭깊고 융성했던 우리네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을 모른 채 사상적으로 방황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기막혔다.

우리 역사의 종지고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째 이 얘기만 쏙 빠지고 허울만 알려져 있을까? 지난 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국가적인 행사가 이어졌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3.1운동과 만세삼창의 감동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걸 실제로 이끈 것이 천도교 세력이라는 것, 그들의 사상적 뿌리는 동학에서 기인하며, 그날의 범국가적인 조직망이 실은 동학농민혁명과 같은 대사를 거치며 구축되어 왔다는 사실을 대다수가 모른다. 그래서 대통령 기념사에서도 ‘개벽’이라는 핵심 용어가 나오지 않는다. 3.1운동의 지도자였던 손병희 선생님도 언급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사실을 사실 그대로 말하지 못하고 전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다.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하는 정신

3.1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9명이 동학혁명에 (대)접주로 참여했던 분이다 (사진은 <한겨레신문>에서 인용)

진실을 생경해할 뿐만 아니라 거부감이 먼저 보이기도 한다. 이병한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상하이 국제학술회의> 조직을 거드셨을 때, 한국의 공화담론으로 이어지는 천도교(동학)의 정치사상을 언급하셨는데 다른 분들의 반응이 뜨악하고 뚱한 눈치였다고 하셨다. 그 일화를 접하고 씁쓸한 마음이 일었다. 다름 아니라 나랏일을 기획하고 이끄는 사람들이 그 정도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조성환 선생님께서 늘 하셨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는 자기인식이 안되어 있다.” 선생님께서 그 말씀을 하실 때마다 한숨을 쉬시고 냉소를 하시고 삐죽이시고 한탄하셔서 어쩐지 픽 웃음이 나왔는데 실은 가슴 아픈 대목이자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왜 눈 뜬 장님처럼 우리 역사와 그것이 내장하고 있는 엄청난 가치를 알지 못하는가? 다름 아닌 식민지화된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강대국의 수탈과 내부 분쟁을 겪으면서 상처로 얼룩진 근대의 연장인 것이다.

“이에 반해 19세기의 ‘개벽’은 우리 스스로가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일종의 태도 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처음으로 독자적인 경전도 만들어 본 것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개척정신은 <삼일독립선언서>의 첫머리에 ‘자가의 신운명을 개척한다’는 말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개벽학의 첫걸음은 100여 년 전의 미래지향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미래의 주인이라고 하는 ‘주인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가짐, 이런 의식이 개벽학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조성환, '개벽학,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한반도의 다음 수순은 개벽이다. 이것을 거치지 않으면 진정한 돌파구를 찾을 수 없다. 개벽의 길은 구겨진 주체의식을 바로 세우고, 자기 인식을 바로 잡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나아가 정신·물질개벽을 세계적으로 주도해나가는 허브이자 진원지도 발돋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개벽하고 또한 남을 개벽시키는 일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와 닿았다.

우리 8천만 한민족은 먼저 깨어나자

김봉준 화백의 만북울림 그림

“분단은 비극이었으나, 시대의 운세는 그것을 더 큰 기회와 힘으로 만들려고 한다. 남과 북의 두 형제가, 가장 성숙하고 합리적인 통합의 과정을 함께 걸어서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지 않겠는가! 남과 북의 화해는 인류에게 더 없이 큰 희망의 선물이며 양심과 연민의 새 시대를 여는 개벽의 신호탄이다. 남한과 북한이 각기 고난을 넘어 개척한 독보적인 길을 탁월한 차원에서 통일시킬 것이다. 우리 8천만 한민족은 먼저 깨어나자. 한 사람의 작은 소리도 귀 기울여 듣는 전인(全人) 화합의 정치를 실현하고, 권리의 민주주의를 넘어 도의(道義)의 민주주의를 완성하며, 정신의 개벽을 바탕으로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국경을 넘어서는 세계정치를선도하자.” (<만북으로 열어가는 새로운 100년 선언문>)

덧붙여 개벽에서는 인권이 아닌 ‘천권’을 말한다. 그것은 하늘과 하나로 합일된 사람이 천인으로서 부여받는 권리다. 따라서 개개인은 천성을 발현하기 위해 수련하고 수양하며 영성을 갈고 닦아야 한다. 자연히 머릿속에 늠름하고 건강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두발로 우뚝 선 사람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래서 개벽을 하고 싶다. 한반도에 사는 청년들과 내가 활짝 어깨를 펴고 시원한 미소를 짓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면 좋겠다. 우주생명을 헤아리고 인간 아닌 것들과 공생을 꾀하고 그것을 위해 새로운 정치경제문화를 창조해가는, 영성 밝은 개벽의 사람들이 되면 좋겠다. 그것만이 스스로 사는 길이기에.

2022 세종도서 선정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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