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들 책이야기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만남의 결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9. 14. 13:00

나무(문경미)

이 글은 《개벽신문》 88호(2019.9)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실 주】 이 글은 '개벽학당' 제1기 마지막 수업 시간(2019.6)에 '개벽파 선언'(원고)을 읽은 소감을 발표한 글입니다.

01. 개벽은 깨어 있는 자세

<개벽파선언>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계속 떠오른 말이 있었다.

"신기한 역설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할 때 비로소 변화한다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본 칼 로저스 아저씨의 말이다. 완전히 변화한다는 것. 개벽한다는 것. transform한다는 것은 기존의 것을 비판하고 좋은 대안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변화는 언제 일어나는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지내면서 하게 된 생각은 결국 근본적으로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음을 깊이 받아들일 때. 네가 겪고 있는 고통이 지금 너를 그러한 선택과 행동으로 가게 했구나, 나의 고통과 사실 근본적으로 하나이구나를 알아볼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하지 않나, 하는 어렴풋한 감이다.

그래서 단순히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회통하고 보듬고 품으면서 나아가는 개벽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개화좌파든 개화우파든 척사파든 개벽파든 그 '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할 때 비로소 새로운 차원의 창조로 나아가게 된다는 선생님들의 말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개벽은 깨어 있는 자세”라든지 작은 생물, 인공지능, 폐물을 가리지 않고 모시면서 하나의 기운으로 연결된 세상을 그리는 꿈이 인류세의 시대에 우리가 갈 길이구나, 생각했다.

좁은 시야에 갇혀 답답하게 지내던 개구리가 우물 밖에 크나큰 세상이 있음을 짧게나마 맛본 것 같다. 공부와 수양을 하면서 내가 옅어지는 경험, 비움의 경험, 무아의 경험을 체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느끼고 맛보며 통찰력. 꿰뚫어볼 수 있는 힘을 키워가고 싶다.

새별 조성환과 로샤 이병한

02. 충분히 깊어지면, 어느 순간 확 넓어지는가

로샤(이병한)의 글은 힘차게 생동하고 선동하는 대어(?) 같았다. 새별이 로샤에게 답신을 쓰면서 기개와 기상, 기운, 호연지기에 대해 언급하신 부분이 있었는데, 세계를 돌아보며 통찰하고 천하의 대세에 대한 감을 가지게 되면 이런 기운이 생기는 걸까, 신기했다.

"개혁을 하려면 먼저 천하의 대세를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시운에 따라 그 시대를 향도할 바른 법이 있어야 하며, 또한 그 법을 운전할 만한 개혁되고 혁신된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 새별(조성환)과 로샤가 이런 걸 하고 있는 거구나, 싶은 문장도 만났다. 천하의 대세를 보고 바른 법을 다시 세우고 사람을 키우려고 하시는 거구나.

<개벽학당>이 아니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인류세, 인공지능, 지혜도시, 블록체인 이야기를 짧게나마 맛보면서 세상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인식도 생동하며 변화하고 넓어져온 것 같다. 이런 물질개벽의 세상 속에서 물질과 정신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큰 원과 같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조금 자라났다.

문명론뿐만 아니라 정치, 국가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사고를 늘려보고 자극해본 시간이 되었다. 적당히 시크하고 적당히 무기력하게 살 수도 있지만, 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자극받았다.

새별의 강의를 듣지 못해서 정말 너무너무 아쉽지만, <개벽파선언>을 통해서 잠시나마 선생님과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었다. 나로서 잘 알지는 못해도, 보듬어 안으시는 품이 깊고 넓게 느껴졌고 학문적 내공과 깊이가 수직적으로 깊어지면 어느 시점엔 수평적으로 확 세계를 포괄하는 확장력이 생기는 것인가..!라는 놀라움도 느꼈다.

어쨌든 두 분의 대화와 만남이 역사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우주적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개벽은 밤을 새워… (개벽파선언 책에 서명을 하며)

03. 그런데, 왜 개벽인가요?

그런데 정말 로샤 말처럼 개벽이 싱싱하고 생생하고 팔팔하고 푸르른 개념일까? 정말로 그런지 더 탐구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한 학기 동안 <개벽학당>을 한 나로서도 아직 개벽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데, 일반 사람들한테는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최인아책방"의 최인아 대표님의 반응('그런데, 왜 '개벽'이에요?; 본문 중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대중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그전에 내게 그 싱싱한 개벽이 살아있는지,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아직 어렵다.

04. 청소년들의 상황에 와 닿는 울림은?

<개벽파선언>의 출판에 대하여

책 <개벽파선언>의 주된 대상을 누구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어필하고 싶다면 이미지와 영상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 내가 최근에 와디즈를 통해 펀딩한 제품만 해도 일단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나 영상 기반으로 설득력이 강하다.

그리고 특히 라이프쉐어, 문토, 오픈컬리지, 취향관 같은 취향/취미/라이프스타일 공유 커뮤니티가 청년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을 보면 #느슨한 연결 #커뮤니티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가벼운 #그러나 너무 가볍지는 않은 등의 키워드를 꼽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커뮤니티에서 사실 <개벽파선언>은 읽힐 만한 글은 아니다. 그럼 대상을 바꿔야 하나? 아님 <개벽파선언>이 이런 라이프스타일/청년 커뮤니티에서 반향을 일으킬 전략을 세워야하나? 물음표가 가득하다.

또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같은 독립출판 서적이 2018년 메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최근 2편이 출간됐다. 상담 내용을 잊어버릴까 봐 녹취를 풀어 쓴 것에서 시작된 글이 작년 한 해 가장 사랑받은 에세이가 된 것이다. 청년들이 우울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아픈데 도저히 어쩔 줄은 모르겠고... 이런 이야기가 많은 공감을 받은 것이다. 우리가 개벽을 이야기할 때 문명론, 국가론, 정치론도 중요하지만 이런 청년/청소년들의 상황에 와 닿는 울림이 없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당장 내 친구 내 동료 내 옆의 사람들에게 함께하자, 제안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2022 세종도서 선정 도서

모시는사람들의 뉴스레터를 받아 보세요

동학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추락하는 지구, 비상착륙 시나리오를 가동하라

동학의 천지마음

정동의 재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