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과 논단

동학농민혁명120주년을 준비하는 출발점

소걸음 2014. 1. 14. 08:32

내가 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로, <동학농민혁명12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실무위원회 예비모임>이 어제 진행되었다.

돌고 돌아, 만 10개월 만에 다시 '실무위원회 예비모임'이다. 거의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그동안 진척된 것들이 없지는 않으나, 이제부터 가야 할 길이 멀고 멀다.

20년 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때(1994)는 80년대 들어 역사적(?)인 맥락에서 복권된 "동학농민혁명"을 그 자체로 기념하고, 형상화(공연, 전시), 조명(학술)하는 수많은 시도들이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각종의 시민운동적인 움직임이(예컨대 마당놀이패 또는 민중적 취향의 극단만 해도 무수히 많았고, 소위 민중미술도 활발했으며, 그러한 맥락의 운동단체들이 활활발발했다.)

10년전인 동학농민혁명 110주년 때는 "동학농민혁명명예회복"이 최대의 화두였다. 물론 국가기념일 제정문제 등도 있었으나, 국가 차원에서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는 것으로, 주변스러운 많은 잡음들이 묻혀질(?) 수 있었다.

천도교의 경우 동학혁명100주년 기념은 대교당 앞마당에 동학혁명기념관을 짓는 문제로 교단 내부에 크나큰 잡음이 일어나 (결국 기념관은 전주에 짓게 되었지만) 생각컨대, 탑골공원 내에서 진행한 천도교 주체의 기념식은 많은 천도교인들이 참석하기는 했지만, 대교당 안에서 하는 것만 같지 못할 정도로 고립되고 외로웠던 기억이 생생하다.(탑골공원 정문만 나서면 길을 오가는 시민들은 공원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도 없었다. 그때만 해도 탑골공원에는 '노인분'들조차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조차도 100주년 1년여 전부터 대대적인 모금운동과 각종 예비 행사들을 거치면서 진행하였으며, 예산 규모도 올해에 비해서 더 컸다. 다시 10년이 흘러, 이제 120년 전의 그날처럼 '갑오'라는 이름을 붙인 해가 도래한 이즈음,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동력은 그때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 

하나 다행스런 것은 그때에 비해 범동학 진영 속에서 천도교의 위상 내지 천도교에 대한 인심이 그때에 비해서는 대폭 개선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작년 한해 동안 기회가 닿는 대로, 동학혁명의 전국화, 세계화, 미래화를 외치면서 천도교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그리고 각 지역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연대하고 교류 협력하면서 의미 있는 동학혁명 120주년을 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을 해 왔으며, 그것이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켜 왔다고 생각한다.

이제, 늦은 출발점에 서 있다. 올 한 해만이 아니라 올해를 변곡점으로 해서, 동학농민혁명을 매개로 한 후천개벽의 새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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